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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Sep 18. 2023

어른다운 어른

드라마 <나의 아저씨>, <일타 스캔들>, <더 글로리>

“그런 거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냐?”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청각장애가 있고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돌보는 소녀 가장 지안에게 직장 상사 동훈이 물었다. 지안은 자식이 없는 장애 노인이 받을 수 있는 복지혜택에 관해 알지 못했다. 동훈의 조언대로 할머니와 주소지를 분리하고 나서야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아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실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어두운 표정으로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던 지안이 점차 웃음을 찾게 됐다.


드라마가 시작되기도 전에 제목만 보고 직장 상사 아저씨와 어린 아가씨의 사랑 혹은 불륜을 다룬 이야기라고 지레짐작해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실 이 드라마는 사람이 사람을 돕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나의 아저씨>가 방영된 지 4년 후인 2022년 1월에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TV 뉴스에 소개됐다. 종로구 창신동의 한 동네 약사가 지적 장애가 있는 50대 노숙인이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일화였다. 서울역에서 노숙하다 그곳으로 오게 된 그는 9살 수준의 지능에 귀도 잘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약사는 그가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쪽방을 한 칸 얻어 전입신고를 해주고, 은행 통장을 만들어주고, 여러 달에 걸쳐 장애인 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신청해 주었다.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 자립해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예뻐서 돕고 싶었다고 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졌다고 해도 여전히 주변에 관심을 두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돌보는 선한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돈이나 물품을 기부하는 일회성 도움이 아니라 자립의 기반을 마련해 줄 방법을 찾아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 약사가 존경스러웠다. 그의 선행을 보고 진정한 사람다움, 어른다움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일타 스캔들>, <더 글로리>를 보고 나서도  머릿속에 가장 크게 떠오른 화두는 참된 어른의 역할이었다. 두 드라마의 주제는 달랐지만, 공통으로 어린 시절의 피해자가 미래의 가해자로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성장한 배경에는 어른답지 못한 어른인 엄마의 영향이 있었다. 가정 내에서의 학대 혹은 학교 폭력에 시달린 그들의 불우한 삶의 결과는 ‘죽거나 죽이거나’였다.


<일타 스캔들>에서 수현은 학교 성적에 집착하는 엄마의 학대와 압박을 견디다 못해 아파트 난간에서 뛰어내렸고, 누나 대신 학대의 대상이 된 성현은 그 난간에서 엄마를 밀쳐냈다. 어른이 된 성현은 누나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어른이라며 믿고 따르던 선생님 치열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살인도 서슴지 않는 가해자가 됐다. 그런 자신의 악행을 치열이 알아채자 건물에서 투신하고야 만다.


<더 글로리>에서 동은은 학교 폭력뿐만 아니라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고 외면한 엄마에게서도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 동은의 엄마는 학교 폭력 가해자 연진의 엄마와 합의해 돈을 받고 동은의 자퇴 사유를 ‘학교 폭력’에서 ‘부적응’이라 고쳐 써내고 야반도주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동은을 보듬어 줬어야 할 엄마는 곁에 없었다. 그로부터 18년 뒤, 동은의 엄마는 연진의 사주를 받고 교사가 된 동은 앞에 나타나 행패를 부리고 학부모에게 촌지를 요구해 동은이 학교에서 해임되도록 만들었다. 그런 엄마에게 동은은 엄마가 자신의 첫 가해자였다며 울부짖었다. 여기서 끝났다면 답답한 결말이었겠지만, 작가가 권선징악을 추구한 덕에 동은의 엄마는 후에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만약 수현과 성현의 엄마, 동은의 엄마가 어른다운 어른이었다면, 자녀를 사랑으로 감싸는 엄마였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수현과 성현의 엄마가 학교 성적보다 인성 교육에 더 가치를 두는 엄마였다면 그들은 죽거나 죽이는 선택을 하지 않고 어딘가에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 같다. 또, 동은의 엄마가 학교 폭력이 처음 발생한 시점에 즉각 대응해 동은을 보호했다면 동은은 몸과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지 않았을 것이고, 어둡고 긴 터널 같은 세월을 보내지 않았을 것 같다. 복수를 위해 선택한 교사라는 직업 대신 학창 시절에 꿈꾸던 건축가가 되어 자기가 살 집을 직접 설계했을는지도 모른다.


드라마 속 이야기에 ‘만약’이라는 가정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드라마는 현실을 고증하고 반영한다. <일타 스캔들>이 한국 교육의 현실을 제대로 묘사했다는 평이 있었고, <더 글로리> 방영 후 비슷한 학교 폭력을 겪었다는 제보가 속출했다. 때로는 창신동 약사의 선행처럼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일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실제 생활에도 도움이 된다.


부디 비극은 드라마로만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주변에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그런 거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냐?”는 말을 듣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이웃이자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2023년 3월 27일 작성


뉴스 출처: https://youtu.be/XunpaAWTKok?si=Wc-Q8GaxntcjIOq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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