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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Nov 14. 2023

라디오 세대

90년대의 추억, <Yesterday Once More>

어떤 노래는 그 노래를 듣던 시절을 추억하게 한다. 내 청소년기를 온전히 품은 1990년대, 그 시절 내 삶의 배경음악이었던 1970~90년대 올드팝과 가요를 들을 때면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90년대 초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 더블데크 카세트 CD 플레이어를 선물로 받았다. 그 후로는 항상 라디오를 들었다. 아침에 <오성식의 굿모닝팝스>을 들으며 잠에서 깼고, 한가한 저녁 시간에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었다. 밤에는 <윤상의 밤의 디스크쇼>나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을 들으며 잠들었다. 


그 시절에는 유튜브로 듣고 싶은 음악을 찾아서 듣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감성이 있었다. 카펜터스(The Carpenters)의 <Yesterday Once More> 노랫말처럼 매일 같은 시간에 라디오를 켜고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던 그 노래가 나오면 깜짝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 방송을 테이프에 녹음하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만 모아 나만의 노래 테이프를 만들기도 했다. 인기 가수의 테이프와 CD를 사 모았다. 처음 샀던 CD가 신승훈이었던가, 윤상이었던가. 노란색 피스 악보를 모아서 악보 철도 만들었다. 그 많던 테이프와 CD, 악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좋아했던 노래는 유행 따라 바뀌었어도 가장 좋아했던 라디오 방송은 늘 같았다. MBC FM <밤의 디스크쇼>. 1981년에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로 시작해 1999년에 막을 내린 방송이다. 내가 그 방송을 들었던 90년대 초중반에는 밤 11시에서 새벽 1시까지 방송을 했고, 가수 신해철, 윤상, 신성우, 김현철이 DJ를 맡았다. 적적한 공간을 채워주던 DJ의 목소리와 음악은 내 10대의 밤을 함께 해준 가장 좋은 친구였다.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나눌 얘깃거리가 되기도 했다. 1993년에 치러진 대입 수능 시험 날, <윤상의 밤의 디스크쇼>의 오프닝 멘트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 이야기가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그려져 마치 내가 직접 본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아이들이 교실 청소를 말끔하게 마치고 담임선생님께 검사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다. 기대에 찬 얼굴들. 선생님은 교실을 찬찬히 둘러보고 나서 아이들에게 말한다. “자, 이제 집에 가도 좋아.” 아이들이 만족스럽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교실 밖으로 달려 나간다. 

할 일 다 마친 아이들을 해방하듯, DJ는 수험생들에게 한마디 말을 건넸다.


“자, 이제 쉬어도 좋아.”


쉬지 않고 달려온 수험생들의 지난 시간을 이해하고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한 그 말이 참 따듯하게 느껴졌다. 몇 년 뒤 고3 수험생이 되어 수능 시험을 치를 내 모습을 상상했다. 시험을 마치고 나서 마음 편히 쉴 수 있도록 티끌만큼도 아쉬움이 남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이상은의 <언젠가는>을 불렀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그 노랫말의 의미를 곱씹으며, 젊은 날을 맘껏 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젊다기보다는 어렸던 그때, 어른의 삶이 고단하다는 것을 알았고, 학생일 때가 가장 좋은 때라는 어른들의 말에 담긴 뜻을 헤아렸다. 방과 후 모두 떠난 교실에 남아 창밖으로 운동장을 내려다볼 때면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내 모습을 사진처럼 기억 속에 저장하려 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순간이 애틋했고, 그리웠다.


90년대 말,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쯤 본격적으로 디지털 시대가 열렸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이용했고, 카세트테이프와 CD 대신 MP3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었다. 아날로그 감성 충만하게 10대를 보내고, 20대에 디지털 문화를 습득한 X세대의 끝자락. 아날로그가 선택이 아닌 필수였던 시대를 지나온 X세대가 아마도 마지막 라디오 세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날로그 감성이란 이제 캔 음료처럼 간편하게 골라 마실 수 있는 취향이 된 듯도 하다. 아날로그 시대를 산 3, 40대 이상뿐만 아니라 더 어린 세대도 그 시대의 감성을 누리고 있다. 2014년에 데뷔한 그룹사운드 <잔나비>는 1992년생 잔나비띠 멤버들로 당시 20대였음에도 7, 80년대 감성의 노래를 발표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같은 해 겨울, 주말 예능의 대명사였던 <무한도전>은 90년대에 활동했던 가수들을 모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무대에 올려 크게 화제가 됐다. 2019년에는 SBS를 시작으로 방송사마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1990년대와 2000년대 가요를 24시간 틀어주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온라인 탑골공원>이라 부르며 즐겨 찾았다.


90년대에 활동했던 가수가 요즘 방송에 나오는 걸 보면 반갑고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같은 시대를 살아오고 있다는 동질감을 느껴서일 거다. 지난여름에 방송한 <댄스가스 유랑단>의 가수 엄정화, 김완선의 무대에서 변함없는 열정을 봤다. 50대에 댄스가수로 활동하는 그들의 모습은 멋짐 그 자체다. <성시경의 먹을텐데>로 노래 잘하는 먹방 유튜버란 별명이 생긴 성시경, 최근 후디에 반바지 입고 복귀한 이효리는 친구 같아서 더 관심을 두고 응원하게 된다.


눈을 쉬게 해주는 라디오와 귀를 쉬게 해주는 글 사이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아날로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상의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이미 저문 아날로그 시대처럼 힘이 없어서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낭만일까, 그래서 오히려 더 힘이 실리는 도전이고 야망일까. 아니면, 그저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일까. 낭만에 집착하는 라디오 세대인 나는 궁금하다. 유튜브 세대는 어떤 낭만을 누리고 있을까.


유튜브와 같은 해에 태어난 2005년생들이 내일모레 수능 시험을 친다. 모든 수험생이 노력한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를 거두기를 바란다. 시험 마치고 마음 편히 쉴 수 있기를.


그리고 오는 20일 밤 10시, <김현철의 디스크쇼>가 26년 만에 돌아와 첫 방송을 한다. 외국에서도 한국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며, 오랜만에 시간 맞춰 라디오 방송을 켜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기를 기다려야겠다. 이를테면 <Yesterday Once More> 같은.


https://youtu.be/wawbhXQX2TQ?si=Jy0cc2Y2PLhi23TU

Yesterday Once More
by The Carpenters

When I was young
I'd listen to the radio
Waitin' for my favorite songs
When they played I'd sing along
It made me smile.

Those were such happy times
And not so long ago
How I wondered where they'd gone
But they're back again
Just like a long-lost friend
All the songs I loved so well.

(*) Every Sha-la-la-la
Every Wo-o-wo-o
Still shines
Every shing-a-ling-a-ling
That they're startin' to sing's
So fine.

When they get to the part
Where he's brakin' her heart
It can really make me cry
Just like before
It's yesterday once more.

Lookin' back on how it was
In years gone by
And the good times that I had
Makes today seem rather sad
So much has changed.

It was songs of love that
I would sing to then
And I'd memorize each word
Those old melodies
Still sound so good to me
As they melt the years away.

(*) Repeat

All my best memories
Come back clearly to me
Some can even make me cry
Just like before
It's yesterday once more.

(*) Rep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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