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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Oct 06. 2023

나는 왜 쓰는가

소설 <동물 농장>, <1984>의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본명: Eric Arthur Blair, 1903-1950)은 “나는 왜 쓰는가 (Why I Write)”라는 수필에서 작가가 글을 쓰는 동기는 생계 목적을 제외하고 네 가지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작가가 처한 시대와 환경에 따라 어떤 동기가 더 두드러지는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네 가지 동기를 모두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오웰이 말한 글쓰기의 네 가지 동기를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첫 번째 동기는 ‘순전한 이기심(Sheer egoism)’입니다. 똑똑해 보이고,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죽은 뒤에 기억되고, 어릴 때 자기를 무시했던 어른들에게 보복하고 싶은 욕망 등을 가리킵니다. 진지한 작가는 끝까지 자기 고집대로 살고자 하며 허영심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이지만, 돈에는 관심이 덜합니다. 두 번째 동기는 ‘미학적 열정(Aesthetic enthusiasm)’입니다. 외부 세계에서, 말 자체와 단어의 적절한 배열에서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것. 한 소리가 다른 소리에 주는 영향, 좋은 산문의 단단함, 좋은 이야기의 리듬을 인지하는 즐거움을 말합니다. 작가가 가치 있다고 여기고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험을 공유하려는 욕망입니다. 세 번째 동기는 ‘역사적 충동(Historical impulse)’입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규명하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하려는 욕망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목적(Political purpose)’이 있습니다.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어붙이고자 하는, 어떤 사회를 추구해야 하는가에 관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오웰은 ‘정치적’이라는 말을 가능한 한 가장 넓은 의미로 확장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을 설득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목적으로 쓴 글은 모두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정치적인 글쓰기가 예술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랐습니다. 오웰의 글쓰기는 항상 불의에 대한 의식에서 시작됐고, 폭로하고 싶은 거짓말과 사람들을 주목하게 하고 싶은 진실이 있었기 때문에 책을 썼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작품이 정치 풍자 소설 <동물 농장>과 디스토피아 소설 <1984>입니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오웰이 말한 것처럼 세월의 흐름에 따라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현재까지 변화해 온 글쓰기의 이유를 반추해 봅니다.


아동기, 청소년기: 역사적 충동


방에 홀로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어린아이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는 생각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호기심이 많았고, 읽고 쓰기를 좋아했습니다. 국민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일기를 썼습니다. 매일 쓰던 일기의 빈도가 며칠에 한 번, 몇 주에 한 번으로 줄었지만 꾸준히 썼습니다. 일기에는 주로 그날 있었던 일을 기록했고, 다짐의 글도 썼습니다. 종종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좋은 생각>이라는 월간지를 매일 봤습니다. 아침마다 그 날짜에 해당하는 글을 읽고, 같은 페이지에 마련된 공간에 몇 문장을 적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가끔, 시도 썼습니다. 글을 쓰면 마음이 평화로워졌습니다. 이 시기에는 때때로 ‘순전한 이기심’과 ‘미학적 열정’으로 글을 쓰기도 했지만, 스쳐 지나가는 시간의 흔적을 기록하려는 ‘역사적 충동’ 욕구가 가장 강했습니다.


대학, 대학원 시절: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기자가 되기를 꿈꿨습니다. 전공수업을 들으며 기사 쓰는 법을 익혔습니다. '역사적 충동'에 충실한 글을 썼습니다. 남들 이야기만 쓰다 보니 제 생각을 담은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해 언론학을 공부했고, 그 길이 이어져 미국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석, 박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대학원 이후 학업을 마칠 때까지의 글쓰기란 주로 논문 쓰기였습니다. 논문이란 사실을 근거로 특정한 주장을 하는 글이니 이 시기에는 ‘역사적 충동’과 ‘정치적 목적’ 동기로 글을 썼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논문을 여러 편 출판했고 전공서 두 권에 제 글을 실었지만, ‘나는 작가가 됐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그건 제가 작가로서 쓰고 싶었던 성격의 글이 아니어서일 것입니다. 제가 쓰고 싶었던 글은 ‘미학적 열정’을 담은 문학적인 글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 미학적 열정


수년간 막연히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만 하다가 작년 10월 말에 수필 창작 수업을 듣게 됐습니다. 재미 시인, 수필가 선생님과 미국 전역에서 모인 수강생이 매주 줌 미팅으로 합평 위주의 수업을 했습니다. 수강생 중에는 글을 쓰기 위한 동기가 필요해서 참여한 등단 작가도 여럿 있었습니다. 함께 좋은 수필을 읽고, 다양한 소재로 650~700 단어 분량의 글을 쓰고, 글을 소리 내 읽고 고치는 훈련을 했습니다. 이 수업을 계기로 매일 읽고 쓰게 됐고 매주 한 편의 글을 완성하며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됐습니다.


제가 수필이라고 쓴 글은 칼럼에 가까운 건조한 문체의 글이었습니다. 칼럼도 넓은 의미에서 수필에 해당하긴 합니다만. 전문 수필가처럼 유려한 문장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글을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그것을 저의 한계로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지난여름 한국에서 만난 시인 선생님이 제게 르포를 써보면 좋겠다고 조언해 주셨는데, 그 말씀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제 글쓰기의 바탕이 저널리즘이었는데 그걸 잊고 지냈다는 것을요. 특유의 문체와 개성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웰을 떠올렸습니다. 그처럼 대단한 소설은 못 쓰더라도,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글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저널리즘에 문학성을 겸비한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문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간결한 문장에 깊은 뜻이 담긴 시에 매력을 느끼고 좋은 시를 쓰기 위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학 공부를 할수록 자신을 성찰하게 되고, 감동과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은 열망이 커집니다. 여러 작가의 삶과 작품을 들여다보며 창작을 위한 영감을 받습니다.


글쓰기의 목적이 쾌락이라고 이야기한 한 시인의 발언에서 오웰이 말한 ‘순전한 이기심’, 즉 자기만족의 욕망을 발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의 고통과 글쓰기의 지옥에 대해 말하지만, 이건 말짱 거짓말이다. 글쓰기는 쾌락이다. 쓰는 사람은 세상의 구원 따위는 염두에도 없고 독자조차도 안중에 없다. 쓰는 사람은 오직 쾌락 때문에 쓴다. 그리고 이 쾌락은 돈으로도 살 수 없고 공부로도 이를 수 없고, 권력으로도 손에 넣지 못하는 희열이자 그 속에서 죽기를 바라마지 않는 희열이기도 하다. 이 희열 없이 쓰여진 글은 진정한 글이 아니고 이 희열 없이 쓰는 작가는 진정한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김언희 시인 (출처: 오마이뉴스)


작가가 쾌락의 희열 속에서 쓴 글이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이 문학이 가진 힘이 아닐까요. 다른 시인의 글에서는 순수한 ‘미학적 열정’을 읽습니다.

“이제 어떤 부귀와 영광을 얻지 못할지라도 쓰는 그 자체의 행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고통을 녹여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 그것이 자신에 대한 원망이든 사랑과 이해이든, 그것이 시의 근본이고 그 근본 속에서 시의 씨앗은 언제나 작은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 김성규 시인, <자살충>, 아시아 (2021), p. 68


“쓰는 그 자체의 행위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곱씹어 봅니다. 지금은 수수께끼 같은 시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 언어로 감동을 주는 작품을 생산하는 시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다음에는 어떤 목표를 추구하게 될까요. 무슨 목적으로 어떤 형태의 글쓰기를 하든지 쓰는 그 자체의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오래 쓰고 싶습니다.


1903년에 태어난 오웰은 1950년에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정치적 목적'의 글쓰기에서 진화한 다른 차원의 글쓰기를 시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를테면,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장하게 하는 '자기 변화'의 글쓰기처럼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자신을 변화시키기가 더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니까요. 그가 살아보지 못한 40대 후반 이후의 삶을 앞으로 살아가며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야겠습니다.


오웰재단이 제공하는 “Why I Write” 원문: Why I Write | The Orwell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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