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 재외선거가 3월 27일부터 4월 1일까지 전 세계 115개국 220개 재외투표소에서 실시됐다. 등록 유권자의 62.8%인 9만 2천923명이 참여해 역대 총선 최고 투표율을 기록했다. 그 숫자에 남편과 내가 포함되어 있다.
투표소는 우리집에서 28마일, 약 45킬로미터 거리에 있었다. 대략 서울에서 수원까지의 거리다. 왕복 한 시간이 소요됐다.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대도시 근교에 살아서 투표소가 가까운 편이었다.
4월 5일 자 지역 신문 기사에 따르면 텍사스주 휴스턴총영사관 관할 지역 투표율은 53.7%다. 투표자 중에는 멕시코 접경지역에서 6시간 운전해서 온 사람과 미시시피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이 있었다. 그들이 왕복 12시간을 운전하고 비행기표 값 수백 불을 들이면서까지 투표하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2년 전을 되짚어 보았다.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 재외국민 투표를 하러 남편과 미시간주에서 일리노이주 시카고까지 왕복 7시간을 운전해서 다녀왔다.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독립운동가 같은 절박한 마음이 있었다. 그땐 그랬다.
사실 나는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공대 출신 남편이 내게 언론학 전공자가 어쩌면 그렇게 정치에 관심이 없냐고 면박을 주기도 했었다. 2002년,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 첫 대통령 선거 투표를 했다. 내가 뽑은 대통령에 관한 악성 기사가 연일 쏟아져 나오자 실망했고 피로감을 느꼈다. 몇 년 뒤 미국에 유학 나와 한국 정치에 신경 쓸 겨를 없이 바쁘게 지냈다.
얼마 후 정권이 바뀌었다. 언론 보도를 통해 한국 소식을 접할 때면 답답함과 무력감을 느꼈다.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은 별 불만 없이 잘 지내는 듯했다. 불만이 없었다기보다 정치에 관심을 끊고 지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외국에 살면 다 애국자가 된다더니 나라 걱정은 내가 다 하는 것 같았다.
충청도 소읍에 거주하는 부모님과 나는 같은 정당을 지지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2012년 대선 때만 해도 서로 다른 정당을 지지했었다. 어쩌면 2017년 대선까지 그랬을 수도 있다.
부모님이 변화한 계기가 있었다. 아버지가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서 정부 지원을 받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정부는 보훈정책을 중요시해서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사업을 실시했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외조부님이 독립운동가였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다. 그렇게 정치가 실생활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체감했다.
미국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고 영주권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 투표하고 싶어서다. 누군가는 왕복 12시간을 운전해서 해야 했던,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꼭 해야 했던 그 투표 말이다.
오는 4월 10일, 국내 유권자들이 재외국민 투표율 62.8%를 가뿐히 넘겨주기를 바란다.
꼭 이겨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