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작가 북콘서트
일 년을 기다렸다.
작년 6월 강경에서 박범신 작가의 등단 5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서 참석하지 못했다. 올해 드디어 박범신 작가를 만났다.
지난 15일 강경산 소금문학관에서 박범신 작가의 북콘서트가 열렸다. 박아르마 건양대 교수의 사회로 박범신 작가와 진연주 작가가 소설가로서의 삶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시간 예정이었던 북콘서트는 이십 분 정도 넘겨 진행됐다. 박범신 작가의 이야기 대부분은 여러 인터뷰(2021, 2023)를 통해 알려진 내용이었다. 그 외 기억에 남는 몇 문장을 옮긴다.
현역이 아닌 예술가는 부끄러운 것.
독자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 첫 문장, 첫 문단에서 독자를 붙들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들어야 한다. 논리와 감성으로 독자를 지배하려는 전투적 욕망을 가져야 한다.
문학은 세상의 부족한 곳에 반응하는 것. 문학은 가난한 사람, 상처받은 사람, 우는 사람 편에 선다.
그리움이 많은 사람이 글을 쓴다.
세상에 지지 않는 삶, 자신을 믿고 희망과 사랑에 의지해서 살아가라.
진연주 작가는 박범신 작가의 대학 제자로 200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방(房)』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자신을 처음 알게 된 독자에게 추천할 소설로 『코케인 cocaine』을 꼽았다.
"강경산 소금문학관과 박범신 작가"
강경산 소금문학관은 2021년 12월에 개관했다. '강경산'은 지역 주민들이 옥녀봉이라고 부르는 곳의 조선시대 명칭이다. 정상까지 오르는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야트막한 언덕이라 강경산보다는 옥녀봉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린다. 옥녀봉 중턱에 자리 잡은 소금문학관 테라스에서는 황산대교를 지나 유유히 흐르는 금강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해 질 녘 풍경이 빼어나게 아름답다. 붉게 물든 하늘과 강을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문학관 이름 '소금'은 박범신 작가가 등단 40주년에 발표한 소설 『소금』에서 가져왔다. 소설의 배경이 된 집이 옥녀봉에 자리 잡고 있다.
논산시는 처음에 소금문학관을 강경이 아닌 논산 탑정호 부근에 지으려 했다. 지역 관광명소에 문학관을 더하려는 계획이었다. 박범신 작가가 반대하고 나섰다. 자신의 이름을 건 문학관은 반드시 강경에 지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그는 강경이 자신의 문학적 자궁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강경에 대한 애정이 깊다.
박범신 작가는 1946년 충남 논산시 연무읍 봉동리에서 태어났다. 강경읍 채산리에 어린 시절을 보내며 강경중학교에 다녔고, 고등학교는 기차를 타고 익산으로 다녔다. 학교에 가지 않고 강변 갈대숲에서 종일 책을 읽은 날이 많았다. 대학 졸업 후 강경여중과 강경여고에서 교사 생활을 했는데, 내 어머니가 강경여고에 다닐 당시 박범신 작가가 국어 선생님이었고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박범신 작가는 그 시기에 집필한 단편소설 <여름의 잔해>로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해 데뷔했다. 작가로 성장하는 동안 그의 배경에는 강경이 있었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강경을 배경으로 『더러운 책상』, 『읍내 떡빙이』, 『시진읍』, 『소금』 등 여러 작품을 썼다. 그리고 강경에 소금문학관을 선사했다.
내가 강경에 돌아와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된 데에는 소금문학관이 큰 역할을 했다. 작년 여름 소금문학관에서 시 창작 수업을 듣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고향에 문학관이 세워지고 그곳에서 수준 높은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그곳에서 책 읽고 글 쓰는 미래를 꿈꾸게 됐다. 북콘서트 후 이어진 북사인회에서 박범신 작가를 만나 감사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었다. 이번 한국 방문 중에 꼭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를 이뤘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북콘서트에 혼자 오신 분과 대화하다가 짝꿍처럼 같이 다니게 됐다. 그분은 강경이 고향이고 안양에 사신다는 Y 님이다. 박범신 작가가 북사인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저녁 모임에 초대했다. 내가 낄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Y 님이 이런 기회가 또 오겠냐며 같이 가자고 권해서 따라갔다. 덕분에 '소사모'를 만날 수 있었다.
'소사모'는 '소금문학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다른 지역에 사는 회원들도 박범신 작가가 소금문학관에 방문할 때마다 찾아와 모임을 한다. 소사모가 마련한 자리에서 박범신 작가의 음성으로 나훈아의 노래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과 시 낭송을 들었다. Y 님 말처럼 정말 다시없을 기회였다. 역시, 갈까 말까 할 때는 가야 한다.
박범신 작가가 낭송한 시를 옮기며 글을 마친다.
당신의 남은 매일매일
빨래 널기 좋은 날이면 좋겠다
그럼 참 좋겠다
박범신, 『구시렁구시렁 일흔』, 문학동네, 2021.
*박범신 작가의 아버지는 강경 구시가지에서 포목상을 하며 명주와 삼베 등을 팔았다. '명주(明紬)'는 비단(silk), '명주바람'은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을 뜻한다. 박범신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명주바람은 5월의 따듯한 봄밤에 피부를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이자, 춥지도 덥지도 않은 5월의 한낮에 빨래를 잘 마르게 하는 바람이다. 그는 명주바람으로 인간의 가장 좋은 때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의 소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