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경 Feb 06. 2024

"오늘도 OO이 보고 싶으면"

패러디와 디카시

패러디(parody)란?
"특정 작품의 소재나 작가의 문체를 흉내 내어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수법 또는 그런 작품."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브런치 북 <시 짓는 마음>을 연재 중입니다. 연재 글을 읽으신 분께는 친숙한 구성과 말투일 것 같습니다. 예시를 통해 "패러디란 무엇인가"에 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도 OO이 보고 싶으면"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완성해 보실까요?


문장을 완성했다면 시의 첫 행을 쓰신 겁니다.


첫 번째 작품 <오늘도 딸이 보고 싶으면>을 사진과 함께 감상하시죠.

<오늘도 딸이 보고 싶으면> by 강경 아버지

미국에 사는 딸, 강경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작품입니다. 아버지는 딸이 작년 여름에 문학 수업을 들었던 강경산 소금문학관에 방문했습니다. 딸이 앉았을 것 같은 자리에 앉아 딸을 생각했습니다. 시인병에 걸린 딸을 생각해서였을까요. 아버지는 시내림을 받은 듯 시를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작품 하나를 완성했습니다.


오늘도 딸이 보고 싶으면

딸이 앉아있던

그 자리에 앉아

딸의 체온을 느껴본다


아버지는 카톡을 열고 시를 사진에 적어 딸에게 보냈습니다. 딸은 이 작품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감동도 잠시. T 중에 상 T인 딸은 거기가 아니라 다른 강의실에서 수업받았다고 곧이곧대로 말합니다. 그리고 궁금해합니다. 아버지가 느낀 것은 누구의 체온이었을까.


걸어서 십여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땡볕이라고 매번 차로 태워다 주시고 데리러 오셨던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아버지에게는 딸이 또 있습니다. 작은딸은 가까이 살아 자주 만나서일까요. 아버지는 작은딸을 그리워하는 시를 쓰지 않았습니다. 큰딸은 이것 좀 보라며 작은딸에게 아버지의 작품을 전송했습니다.


이걸 본 작은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 마음을 담은 작품 <오늘도 아버지가 보고 싶으면>을 감상하시겠습니다.

<오늘도 아버지가 보고 싶으면> by 강경 동생

작은딸은 아버지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아 단시간에 이 시를 완성했습니다. 언니에게 시집을 조달하며 여러 시집을 들춰본 영향일까요. 시어가 세심하게 선택되고 배치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작품입니다. 고기 색깔과 맞춘 듯한 정육점 불빛 색의 글씨가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핏물기 쫙 빼고 다시 감상해 보시죠.


오늘도 아버지가 보고 싶으면

아버지와 먹었던

그 고기를 찾아

그때의 공복을 느껴본다


고기를 좋아하는 가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정말 공복에 고기를 먹은 것인지는 의심스럽습니다. 이 작품에는 두 가지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효심을 어필함과 동시에 언니에게 아버지와의 친분을 강조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저 생목살에 곧 소금이 뿌려질 거라는 걸 예상할 수 있습니다. 공복이 아니어도 그럴 것 같습니다.




"오늘도 OO이 보고 싶으면"


여러분의 문장은 무엇인가요? 어떤 마음을 담으셨나요?


저는 문장을 이렇게 완성했습니다.


오늘도 가족이 보고 싶으면

함께 구웠던

그 불판을 찾아

고기의 육즙을 느껴본다


가족과 함께 고기를 굽고 싶은 제 마음을 담았습니다. 미국산 소고기보다 고향에 있는 가족과 함께하는 국내산 생목살이 더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기는 서로 나눠 먹는 것이니까요.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가족이 없는 고향은 어떨까요. 그곳에 가족이 없어도 같은 마음일까요. 아마도 아닐 것 같습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일 테니까요.

<오늘도 가족이 보고 싶으면> by 강경

오늘도 가족이 보고 싶으면

함께 거닐었던

그 강변 사진을 찾아

고향의 온기를 느껴본다


패러디, 참 쉽죠?




이제껏 발행한 글에는 본문에 사진을 넣지 않았습니다. 때에 따라 커버 이미지로 쓰거나 글을 마친 뒤에 배치했습니다. 되도록이면 글로 표현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동생이 보내 준 사진을 보고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을 새삼 실감했고, '디카시(Digital Camera )' 고유의 영역이 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디카시는 사진과 5행 이내의 문장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로 배우지 않아도 이렇게 재미 삼아 적어볼 수 있습니다. 디카시는 숏폼 콘텐츠(Short Form Contents)가 대세인 시대에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문예 장르로 남을 것 같습니다.


보고 싶은 대상을 떠올리며 "오늘도 OO이 보고 싶으면"을 완성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압니까? 열심히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시인이 되어있을지도요.


매거진의 이전글 모두 너와 함께하고 싶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