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을 자책할 필요는 없었다,
이건 취미니까

자유형밖에 모릅니다 #2

by 리우

수영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절대절명의 위기가 찾아왔다. 귀차니즘이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수영 첫 달부터 호기롭게 주 5일 새벽반을 끊었는데 2주차부터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첫 일주일 중 며칠을 유아용 풀장에서 발로 물장구만 치다 이제 막 어른용 풀장에 입성했는데 벌써 질리다니. 빠져도 너무 빠졌다. 평소 누가 게으름 피우는 걸 못 보는 지랄 맞은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스스로 지랄맞은 게으름뱅이가 되어 버렸다.


어린 시절 나는 우등생보다는 모범생쪽에 가까웠다. 뭔가에 특출나다는 칭찬은 못 들어도 뭐든 열심히 한다는 소리는 꽤 듣는 편이었다. (칭찬이었겠지?) 한 번 시작하면 쉽게 지치는 타입은 아니었다. 생활기록부에서도 '성품이 바르고 끈기 있는 아이'라는 표현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지금 보니 왜 기분이 나쁘지?) 바야흐로 1990년대, 국딩 시절이었다.


그게 다 옛날 일이었다. 나이가 든 걸 깜빡했다, 젠장. 서른으로 시간을 돌리는 것보다 마흔이 넘어가는 게 더 가까운 나이가 된 2019년의 나는 재능도 끈기도 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아재였다. 수영은 물놀이가 아니라 진짜 운동이었다. 가라앉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쉼 없이 손발을 휘저어야 하는 건 물론 강한 지구력까지 요구되는 진짜 빡센 운동 말이다. 이걸 몰랐다니! 알아도 잘 할거라 자만했겠지.


첫 일주일은 끈기로 버텨지만 매일 아침을 수영으로 시작하려니 하루가 엉망이 됐다. 온 몸이 후들거리고 학창 시절 이후 끊었던 낮잠 생각이 간절했다.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점점 흥미를 잃어갔고, 흥미를 잃으니 결석이 잦아졌다. 물보다 침대가 더 아늑했다. 물침대라는 건 도대체 누가 왜 쓰는 것인가.


공교롭게도 수영을 시작하자마자 아내의 새벽 당직이 유난히 많이 몰리기도 했다. 솔직히 반가웠다.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했을지도)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불참에 동참했다. 혼자라도 가면 되지 않느냐는 말에는 "부부는 한 몸이야"라는 말로 응대하며 아내가 일하는 새벽에 꿀잠을 잤다. 당직이 없는 날에는 내가 아내를 꼬셨다. 회유가 크게 어렵지는 않았던 걸 보니 아내도 내심 원했던 게 분명하다. 그렇게 우리는 수영장의 노쇼 비즈니스에 일조했다. 우리의 불참으로 인해 다른 수강생들이 물속에서 쾌적했을 걸 생각하니 일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게으름을 자책할 필요는 없었다. 이건 취미니까. 우리 동네 문화센터 수영 1등을 목표를 스스로를 연마하고 채찍질해야 할 과업이 아니었다. 잘하면 좋겠지만 되게 잘 할 필요도, 빨리 잘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조삼모사 같지만 나와 아내는 다음 달 수영을 주 3일로 재등록하는 것으로 수영 작심삼일을 극복했다. 문제를 해결했다고 표현한 것은 주 3일로 바꾸자마자 바로 수영이 다시 재미있어졌기 때문이다.


일단 평일 수업에 부담이 없어졌다. 평일 중 이틀은 충분히 쉬며 체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 오늘이 쉬는 날이면 내일은 꼭 가겠다는 동기부여가 자동으로 따라붙었다. 3일이 짧게 느껴지기 시작하자 도리어 주말 자유 수영에 더 열심히 나가게 됐다. 100m 전력질주처럼 느껴졌던 자유형에 여유가 생겼다. 드디어 물침대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됐다.


나보다야 낫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간다. 주입식 수업으로 획일화되어 있는 우리나라 학교에서 우등생, 모범생 소리를 한껏 들으며 커봤자 사회에 나오면 다 비슷비슷한 이들이다. 다 똑같은 평가에, 똑같은 수능, 똑같은 이력서와 똑같은 취업을 거쳐 살아남은 이들이 바로 우리니까.


지금의 나는 우등생도 아니고 모범생도 아니다. 그러면 뭐 어떤가. 앞으로도 수영은 이렇게 하려고 한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무리하지 않고. 수영으로 천리길을 갈 것도 아니고 무리라고 해봤자 25m 자유형이지만 나한텐 아직 힘들다고. 즐겨보던 강식당 멘트가 계속 귓가에 맴돈다. "행복하자고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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