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여행_4
5월의 밀양 위양못은 이른 아침부터 이팝나무를 보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나 역시 꽤 일찍 집을 나섰지만 일찌감치 좁은 길을 따라 줄지어 세워져 있는 차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위양못은 인공 못이다. 못의 둘레는 이팝나무를 비롯한 나무들이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운치를 더하는 정자도 하나 있다. 1900년에 만들어진 안동 권 씨 집안의 재실(齋室)로 이름은 완재정(望楸亭)이라고 한다. 정자가 못을 품고 있는 건가, 못이 정자를 품고 있는 건가? 위양못을 돌던 중 저 먼 곳에 있는 정자를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팝나무’라는 존재는 이날 처음 알게 됐다. ‘이팝나무’의 ‘이팝’은 ‘이밥’에서 비롯됐다. ‘이밥’은 입쌀밥이라는 뜻인데, 쉽게 말하면 ‘흰밥’이다. ‘이밥’의 뿌리는 1632년 가례언해에 나오는 ‘니밥’에서 찾을 수 있으며, 북한에서 이 단어를 주로 쓴다고 한다. 그 이름처럼 이팝나무는 흰 쌀알 같이 생긴 꽃이 피는 나무라고 하겠다.
위양못에는 생각보다 이팝나무가 많지는 않다. 물론 이팝나무가 아직 다 피어있지 않아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나는 마치 흔히 떠올리는 벚꽃 길처럼 위양못 전체가 하얀 이팝나무로 둘러싸여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풍경은 아니었다.
그런데 위양못 둘레를 걷다 보면 이팝나무에 집착했던 걸 잊게 된다. 포근히 감싸 안는 나무 그늘, 촉촉하게 젖은 흙,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못, 물에 담긴 산과 나무들 풍경, 나뭇잎 커튼을 뚫고 비치는 햇빛까지. 나에게 너무나 큰 낭만을 선물해준다.
거의 절반 가까이 돌 때쯤 어디선가 하얀 솜털들이 눈에 보인다. ‘바닥에 떨어진 먼지는 뭐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바람이 불더니 솜털들이 후두둑 날린다. 때 아닌 함박눈 같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이 공간을 어지럽힌다. 겨우 바람이 멎어 자세히 들여다봤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버드나무의 씨앗이라고 한다. 평화로운 산책을 방해해 밉기도 했고, 생전 처음 봐서 신기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꿋꿋하게 한 자리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들이지만 종족 번식을 위해 솜털을 달아 씨앗을 퍼뜨리는 지혜가 놀라웠다. 한편으로는 땅과 물에 떨어진 솜털들이 어떻게 사라질지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버드나무 씨앗이 가져다준 ‘5월의 눈’에 놀라다 보면 어느덧 위양못 산책이 마무리된다. 위양못의 옆에는 푸릇한 벼들이 바람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벼, 보리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마음이 편해진다.
이팝나무 하나만 보겠다고 위양못에 온 내 마음이 너무나 옹졸하게 느껴진다. 위양못이 그려내는 정취에 푹 빠지다 보면 유유자적, 물아일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옛 선조들이 위양못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길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다. 물론 현대의 위양못 주변은 이른 아침부터 주차 전쟁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위양못은 자연을 벗 삼아 즐길 수 있는 곳임에 분명하다.
※ 촬영 일자: 2017년 5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