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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ya Aug 21. 2019

벚꽃이 만발한 3월의 경주

사진과 여행_5

  겨우내 나뭇잎을 다 떨어뜨리고 가만히 서 있는 줄 알았는데, 언제 그렇게 준비를 한 것일까? 가만 보자, 벚꽃이 피는 걸 보니 새해가 된 지 벌써 3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 난 그동안 뭐했지?



  벚꽃은 잔인하게 아름답다. 나무에 맺힌 붉은 꽃망울을 보면 나는 아직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아 조금만 멈췄으면 하는데, 막상 몽글몽글 피어 있는 벚꽃을 보면 참 예쁘다. 그런 벚꽃을 시샘하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 벚꽃은 순식간에 땅에 떨어지고, 벚꽃나무는 사랑스러운 연두색 나뭇잎을 틔워낸다. 바닥에 보라색 버찌들이 떨어지면 얼마 전까지 벚꽃이 피었던 때가 생각나며 또 한 번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야속하게 흐르는 시간을 느낄 수 있게끔 해줘서 잔인하고, 남몰래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준비해 놓고는 너무나 짧게 보여줘 또 잔인하다.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벚꽃을 보며 설렜다. 향도 없는 녀석인데. 아무래도 난 벚꽃에 질투를 하나 보다.


  전국 각지에 벚꽃 명소들이 있다. 가장 오래된 벚꽃 축제는 ‘진해군항제’다. 올해로 57회를 맞이했다. 진해뿐만이 아니라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3~4월이면 각 지역마다 나름의 역사를 가진 저마다의 벚꽃 축제를 열어 상춘객들을 맞이한다.



  3월의 경주에도 벚꽃이 활짝 피었다. 학창 시절 대표 수학여행지였던 경주는 2010년 KTX 역이 생기며 서울과 2시간 거리가 됐고, 당일치기 여행도 충분히 가능한 곳이 됐다. 여기에 SNS의 발달로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전통의 강호’ 신라시대 유적지뿐만이 아니라 황리단길 등 ‘신흥 강호’들까지 널리 소개되면서 몇 년 전부터 정말 뜨거운 여행지 중 하나다.



  경주의 벚꽃은 그래서 아름답다. 시대를 넘나드는 풍경들을 하나로 안으며 피어나는 벚꽃들. 앞서 언급한 진해의 벚꽃은 마치 도시에 녹아든 오래된 건축물을 보는 느낌이라면 경주의 벚꽃은 마치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냥 흘러 보내기 아쉬운 봄을 보내고 나면 버스 정류장에 서 있기도 힘들었던 지난겨울의 추위 한 줄기를 가져다 놓고 싶은 무더운 여름, 괜히 싱숭생숭해지는 가을, 그리고 언제 끝나나 싶은 지루한 추위가 찾아오겠지. 그러다 곧 봄이 움틀 때쯤 나는 또다시 봄을, 정확히는 때맞춰 피어나는 꽃과 솟아나는 나뭇잎을 경외할 것이다. 좀 야속하긴 해도 나와는 달리 약속을 지켜주는 나무와 꽃들에 감사하며, 봄을 기록하고 아껴줄 것이다.



추신: 3월 30일 경주의 밤은 매우 추웠다. 나는 일행과 함께 동궁과 월지 야경을 보려고 일찌감치 표를 끊었다. (참고로 동궁과 월지 야경을 보려면 낮에 미리 표를 사두는 것이 좋다. 어두워지면 훤한 대낮에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긴 대기줄이 생긴다. 기다리기 딱 질색이라면 낮에 미리 동궁과 월지 입장권을 구매한 다음 인근에 있는 경주 국립박물관, 첨성대 등을 구경하는 것이 좋다.) 포근한 낮 기온만 생각하고 한껏 멋을 부린 차림새로 나섰다가 패딩이 생각나는 맹추위를 겪고는 결국 야경 사진을 찍던 중간에 되돌아 나왔다. 계절이 바뀌는 간절기임을 잊지 말고 따뜻한 옷차림을 꼭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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