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다시보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iya Mar 19. 2019

여행, 나를 만나다

다시보기_2 JTBC 『트래블러』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꼭 해외여행을 가. 나도 30대 땐 그게 무슨 말인지 와 닿지 않았는데 40대가 되고 보니 알겠더라.”


  해외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나에게 같이 일하던 동료 언니가 나에게 누누이 했던 말이었다. ‘나중에 후회한다.’는 말에는 꽤 굳건했다. 후회하지 않으면 되지 뭐. 그런데 ‘나도 그때는 여행 가라는 말이 와 닿지 않았었다.’는 말에는 흔들렸다. 정말 그럴까?


  난 국내 여행은 꽤 잘 다녔었다. 어렸을 때부터 방학 때마다 가족끼리 국내 여행을 많이 다니기도 했었고, ‘혼여(혼자 여행)’라는 말이 등장하기 전부터 근거리 당일치기 여행을 즐겼다. 난 비교적 매우 늦은 2015년에 생애 첫 스마트폰을 가졌었는데, 당시 아이폰6를 들고 출사랍시고 맑은 날, 비 오는 날 가리지 않고 밖에를 나갔었다. 여행이 여행이지, 국내와 해외를 굳이 가릴 필요가 있는가? 내가 늘 가졌던 의문이었다. 국내에서 지도와 대중교통에 의지해 낯선 길을 찾아가는 것도 나에겐 충분히 새로운 도전이었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왜 꼭 해외여행을 가라고 할까? 우선 이러한 의문이 들었던 이유부터 생각해봤다. 첫 번째 이유는 외국에 대한 큰 관심이 없었다. 특별히 가보고 싶다는 곳도, 딱히 관심이 가는 나라도 없었다. 나는 평소에 고관여 제품을 구입할 때 실컷 검색해보고 결국 구매하지 않았던 편인데, 해외여행도 그랬다. 편하게 글, 사진,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효용에 대한 불확실성’이었다. 어찌어찌 해외여행을 가게 됐을 경우 아무래도 사용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국내보다는 많다. 그렇게 투자했는데 국내 여행을 했을 때와 느끼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앞선 것이다. 세 번째 이유도 대보면 학창 시절 너무나 쉽게 ‘해외 맛보기’를 했던 영향도 있었다. 고3을 앞두고 정말 좋은 기회를 만나 약 일주일간 미국에 다녀왔었다. 동부에 위치한 유수 대학을 탐방하는 일정이었는데, 주최 측의 바람(?)과 달리 안타깝게도 수능만 바라봤던 내게 그곳의 학교들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냉정하게 돌아보면 나에게 꼭 맞지 않은 여행이었던 것이다. 멀리 미국까지 온 만큼 주어진 시간 안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담아가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욱여넣기에 바빴었다. 마지막으로 여행, 특히 해외여행은 그 자체로 호사스러운 것이라는 편견도 있었다.


  다행히(?) 나는 첫 외국물을 먹은 후 약 10년이 지난 2017년 3박 4일간의 첫 해외 자유 여행에 성공했고, 2018년 2박 3일간의 두 번째 해외 자유 여행에도 성공했다. 두 번의 여행 모두 해외 자유 여행 첫 도전지로 손꼽히는 일본이었다. 해외여행에 대한 의문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첫 해외 자유 여행은 그야말로 충동적이었다. 그 해 여름은 정말 더웠었다. 너무 더운 나머지 생존(?)을 위해 한국보다 시원한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비행기 안에 비치된 잡지를 읽다가 무심코 찍었던 보라색 라벤더 꽃 사진이 떠올랐다. 다시 보니 그곳은 홋카이도에 위치해 있었는데 한국보다 위도가 높아 시원하단다. 그 말만 보고 정말 홀린 듯이 표를 끊었다. 여행을 결심하기까지가 힘들었지, 그에 비하면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은 수월했다. 잘 정리된 블로그 글들을 여러 번 읽어보며 큰 일정과 세부 여행지를 정했고, 숙소도 블로그를 보고 비교적 수월하게 정했다.


  첫 해외 자유 여행의 최대 목표는 ‘한국에 무사히 돌아오기’였다. 모든 게 낯설고 어설펐다. 발과 종아리가 화끈거려 처음으로 파스를 붙일 정도로 많이 걸을 줄도 몰랐고, 버스와 지하철은 언감생심 엄두도 내지 못하다가 한국 출발 전날에야 겨우 타봤다. 특히 이동 시간 때문에 저녁 식사는 빨라야 밤 9~10시였고, 늦은 저녁을 해결하려다가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맞나 결국 쫄딱 젖어야 했고, 야심 차게 예약한 하루 일정의 버스 투어를 놓칠 뻔도 했다. 정말이지 그때는 너무나 아찔했다. 아침 일찍 나서 있는 여유를 다 부리다가 딱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투어 담당자와 연락할 수단도 없었고, 경찰을 포함해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어느 누구도 길을 알지 못했다. 그 아찔한 경험 덕분에 지도를 볼 때는 ‘내 위치’가 아닌 눈에 띄는 지형지물들을 중심으로 보고 찾아가야 한다는 걸 배웠다.


https://youtu.be/pUWn_3rU_Ts


  요 근래 꼭 챙겨보는 JTBC 『트래블러』(2019)는 이렇게 나의 결코 짧지 않은 여행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매주 목요일 밤 11시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배우 류준열과 이제훈이 쿠바에서 2주간 자유 여행을 하는 내용이 그려진다. 류준열이 먼저 출발해 홀로 여행을 시작하고, 이제훈은 연말 시상식 일정 상 여행 7일 차에 합류해 함께 여행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매력은 ‘마치 내가 여행하는 것 같은 기분’을 담아낸다는 것이다. 여행자들의 마음의 소리를 고스란히 담아낸 것 같은 감각적인 내레이션, 여행지 곳곳을 눈에 담겠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듯 머무는 시선을 흉내 낸 카메라 워크가 그렇다. 출연자들 손에는 여행 가이드북과 와이파이존이 등장하기만을 기다리는 휴대전화, 목에는 카메라, 등에는 커다란 배낭이 있다. 그들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배고프면 먹는다. 모든 게 정해져 있지 않다. ‘주어진 시간 안에 어디에 들르고 어느 가게에 가서 무엇을 먹어야 한다.’는 강박이 없다.


  다른 여행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여기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나도 여행을 가서 헤매 봐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나는 해외에서 세 차례의 패키지여행, 두 차례의 자유 여행을 했다. 짜여 있는 여행, 즉 패키지여행도 그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진정한 여행은 헤매는 여행, 즉 자유 여행인 것 같다. 헤매는 과정에서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어설펐나? 내가 이렇게나 겁먹었었나? 내가 이처럼 화를 냈었나? 무엇에 집착했기에 화를 내는 걸까? 무엇이 잘못된 걸까? 헤매는 순간, 그리고 몇 시간 뒤 침대에 누워 하루를 마무리할 때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분명하고 확실한 건 여행에는 평소에 느끼고 표출할 수 없었던 감정들이 있다는 것이다. 여행은 나를 그렇게 만나는 과정인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이 프로그램의 작가님 두 분(김멋지, 위선임)이 꽤 유명한 트래블러란다. 기자간담회 영상을 보니 출연자들의 여행을 숨죽이며 지켜만 봤다고 한다. 출연자들에 대한 집요한 관찰, 여행자로서의 경험이 어우러져 멋진 여행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것 같다.


  여행의 헤맴과 기다림, 성공과 실패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트래블러』. 류준열처럼 언젠가 자유 여행 내공이 많이 쌓이기를, 이제훈처럼 현지어를 익혀 써먹어 보는 용기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에라 모르겠다. 다음 해외여행을 준비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에서 가장 쉬운 '남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