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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ya Apr 03. 2019

돈이 뭐기에?

다시보기_3 영화 『돈』

*글 속에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처님도 예수님도 현 사회에서 살아가시려면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다.” 대학교 경제 수업 시간에 모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두 분이 마치 타임슬립(time slip) 작품 속 주인공들이라고 생각하고 다소 발칙한 상상을 해봤다. 나 또한 두 분 모두 법 없이 사실 수는 있으시지만, 돈 없이는 사실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조금 껄끄러웠다. ‘돈 이야기’는 그저 속물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돈에 대한 개념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돈에 대한 무지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가 하나 있다. 최종 면접장에서 “몇 년 안에 1억을 모으겠냐?”는 질문에 “2년 만에 1억을 모으겠다.”라고 답한 것이다. 응시생은 말이 안 되는 말을 던지고 당당하게 앉아 있는데, 정작 질문을 던졌던 면접관 분이 몹시 당황하시며 한 마디 덧붙이셨다. “2년은 힘들고 한 푼도 안 쓰면 3년 안에는 가능하겠다.” 나는 뭣도 모르고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다행히 그 면접에서 합격은 했지만 지금도 한 번씩 그때 그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면접관 분이 말씀하셨던 입사 후 3년이 지났을 무렵, 나는 월급을 한 푼도 안 쓰지 않았기에 1억을 모으지는 못했다. 덧붙이면 3년간 1억을 모을 수 있는 월급도 아니었다.


  현 사회를 살아가려면 돈에 대해 꼭 알아야 한다. 돈을 버는 방법, 돈을 아끼는 방법, 돈을 모으는 방법, 돈을 잘 쓰는 방법, 돈을 잘 빌리는 방법 등 돈과 관련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러한 돈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면 직접 검색 등을 통해 알아보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돈에 대한 정보 격차가 현격히 벌어지게 된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금융 실무 교육을 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https://youtu.be/jc1XfBOE--c


  삶에 있어 필수이지만 왠지 속 시원히 이야기하기 힘든 돈. 이래저래 참 민감한 ‘돈’을 전면에 떡하니 내세운 영화가 있다. 박누리 감독, 류준열, 유지태 주연의 『돈』(2019)은 신입 주식 브로커 조일현(류준열)이 주식 시장을 주무르는 비밀스러운 설계자 번호표(유지태)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다른 직원들과 비교해 뒤처지는 실적만으로 모자라 매수·매도 실수로 회사에 손실을 끼치는 사고까지 치는 신규직원 조일현은 선배의 은밀한 제안으로 번호표를 만나고, 순식간에 회사에서 실적 1위 직원이 됨과 동시에 보수도 두둑하게 챙기게 된다. 금융감독원 한지철(조우진)의 감시가 영 거슬리는데 번호표의 제안은 점점 더 위험해지고 대가성 보수도 덩달아 올라간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번호표와 계속 거래를 했던 조일현. 감사가 와도 어느덧 배짱이 두둑해졌고 번호표를 소개해준 선배 유민준(김민재)도 냉정하게 대하게 된다. 그러던 중 번호표의 제안을 받았던 인물들이 위험에 빠지고, 그가 제안한 거래의 판도 너무나 위험해지면서 조일현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장현도 작가의 『돈』(2013)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의 결말은 다소 뜨뜻미지근하다. 썩 통쾌하지도, 썩 교훈적이지도 않다.


  우선 조일현은 번호표와 달리 체포되지 않고 검거 현장을 유유히 떠난다. 외부 감사가 찾아와도, 수사 기관 사람들이 바로 앞에 있어도 조일현에게는 처음 번호표와 거래한 뒤 한지철이 찾아왔을 때 느꼈던 두려움이 전혀 없다. ‘선(善)’의 위치에 있는 한지철이 번호표와 조일현 모두를 잡아들였다면 전형적인 권선징악 구조의 통쾌한 결말이 완성됐을 것이다. 하지만 조일현은 결코 선(善)이 아니기에 번호표만 수사 기관에 찔러 넣고 본인은 쏙 빠진 결말이 찝찝함을 남긴 것이다.


  게다가 영화 포스터에 이런 문구가 있다. “평범하게 벌어서 부자 되겠어?” 그럼 어떻게 돈을 벌어야 부자가 된다는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상업영화이니 만큼 “평범하게, 바꿔 말해 적법하고 투명하게 돈을 벌면 부자가 되기 어려우니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하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방법으로 돈을 벌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투명하지 않게 돈을 버는 세상도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한 것도 같고, 한 번 돈의 맛을 보게 되면 죄의식도 느끼지 않고 그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려고 한 것도 같다. 하지만 돈의 어두운 세계를 그리고자 했다면 번호표에 대한 설명이 조금 더 친절했어야 했다. 번호표는 늘 비밀스럽게 접선 장소를 잡고, 자신의 업무를 대행할 직원들에게 지시하고,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인물들을 처리한다. 그런데 왜 영화 말미 CCTV도 많고 보는 눈도 많은 지하철 승강장에서 조일현을 만난 것인지, 자신을 오랫동안 추적해왔던 한지철은 왜 빨리 처리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영화를 보며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이라면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는 절대적 약자라는 정도랄까. ‘돈’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영화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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