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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ya Nov 10. 2019

꼭꼭 씹어 먹기

어쩌다 보니 '건강하게 살기'_5

  혹시 ‘아이유 병’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2017년 JTBC 『효리네 민박』에 출연한 아이유의 행동을 따라 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아이유 병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가 입을 꼭 다물고 음식을 꼭꼭 씹어 먹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방송을 보면서 ‘저렇게 꼭꼭 씹어 먹으면 언제 음식을 다 먹지?’라는 생각과 함께 ‘아이유가 저래서 말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약하자면 ‘나는 살이 찌더라도 절대 천천히 오래 꼭꼭 씹어 먹지는 못하겠다.’ 정도로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세상에 절대 안 된다는 말은 없다고 했었지. 나는 원인 모를 피부 알레르기를 근본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음식을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는 생활 습관 개선 진단을 받았고, 『효리네 민박』 방송이 종영된 지 2년이 지난 뒤 다시금 아이유가 음식을 꼭꼭 씹어 먹었던 장면을 검색해보게 됐다.


  나는 음식을 빨리 먹고, 먹자마자 바로 눕고 잠들기까지 하는 굉장히 안 좋은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이런 식습관이 몸에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고수하고 있었다. 잘못된 식습관은 정확히 회사에서 점심을 먹기 시작하면서 생겼다. 그러니까 정확히 4년째 나쁜 습관을 길러온 것이다.


  직장인에게 근로기준법에서 보장된 점심시간 1시간은 정말이지 소중하다. 대충 때운 아침 때문에 주린 배를 채워야 하고, 쉬기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온 타협이 ‘빠른 식사 후 긴 휴식(눕기 혹은 잠자기)’인 것이다. 식당 이동, 식사, 사무실 도착, 양치질까지 30분 만에 마치면 황금 같은 30분의 휴식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휴식시간이 20분, 10분밖에 되지 않으면 아무리 식사가 맛있어도 한숨이 먼저 나온다. 30분 중 몇 분이라도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면 그만큼 개운한 것이 없다. 매일 밤 이렇게 깊은 잠을 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이 ‘식사 후 깊은 잠’이라는 맛을 점심때만 느끼면 그나마 다행인데 나의 경우 매일 저녁, 주말 아침에도 습관으로 얻게 된 것이다.


  병원에서는 50번 이상 씹어 먹으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실제로 50번을 씹어보려고 세어보았는데 정말 힘들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대충 음식을 씹었구나.’라는 반성과 동시에 20~30번 정도 음식을 씹고 삼키는 걸로 타협을 봤다. 하지만 음식을 먹으면서 매번 씹는 횟수를 세는 건 쉽지가 않았다. 따라서 횟수에 집착하지 않는 대신 ‘내 입안에 있는 모든 음식물들에게 아밀라아제가 든 침을 고루고루 코팅해 위로 보내자.’라는 생각으로 씹고 있다. 확실히 전보다 많이 씹게 됐고, 의식적으로 씹는 횟수를 세어 봤더니 30번 이상은 족히 씹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꼭꼭 씹어 먹기’를 실행한 뒤 확실히 입맛이 예민해졌다. 쌀을 오래 씹으면 쌀에 들어 있는 녹말이 침 속의 소화효소 아밀라아제에 의해 단맛이 나는 엿당으로 분해된다는, 학창 시절 과학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가 ‘꼭꼭 씹어 먹기’ 효과의 가장 적확한 예다. 비단 쌀뿐만이 아니라 모든 음식들을 오래 씹으면서 자연스럽게 맛을 음미하게 됐다. 입맛이 예민해지면서 이왕이면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들을 찾게 되고,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보다는 재료의 참맛이 느껴지는 음식들을 찾게 됐다. 이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한 것 같다. 뭐가 됐든 배만 채우면 된다는 생각으로 식사를 ‘때웠던’ 적이 많았는데 이제부터라도 식사를 ‘챙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막상 주변을 둘러보면 재료의 참맛을 살리는 식당이 잘 없어 외식할 때마다 고민이 늘게 된 건 단점 중 하나다.


  ‘꼭꼭 씹어 먹기’의 또 다른 효과는 식욕이 확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음식을 천천히 먹기 시작한 초반에는 시간에 쫓겨 어쩔 수 없이 수저를 놓는 일이 많았다. 평소라면 벌써 다 먹었을 음식을 남기게 돼 짜증도 났었다. 밀가루 음식을 끊어서 가뜩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줄어들었는데 양껏 먹지도 못하니 짜증은 배가 됐다. 음식을 보면 ‘이걸 또 언제 다 씹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때쯤 입맛이 예민해지고 어떤 양념을 썼는지 맞춰 보는 혼자만의 ‘셰프 놀이’를 하다 보니 적게 먹는 것에 대한 불만이 묻히기 시작했다. 실제로 음식을 오래 씹으면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하는데, 약 30년 가까이 꼼짝도 안 한 이 호르몬이 최근 들어 제대로 작동을 하는지 밀가루를 먹지 않아도, 적게 먹어도 짜증이 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됐다!


  ‘꼭꼭 씹어 먹기’는 벌이 아니다. 나처럼 꼭꼭 씹어 먹어야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혹 다이어트를 위해 음식을 꼭꼭 씹는 방법을 택했다면 또 다른 즐거움이 생긴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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