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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ya Mar 15. 2020

피부 트러블의 원인을 찾다!

어쩌다 보니 건강하게 살기_7

  작년부터 나를 괴롭혀왔던 피부 트러블의 원인을 드디어 찾았다.


  그동안 피부과 세 곳을 전전했고, 국소 면역조절제(프로토픽, 엘리델)와 스테로이드제(라벨리아, 베이드) 연고를 처방받았으며, 증상이 있는 부위에는 리놀라페트를 발랐고, 샤워 후 쳐다도 보지 않았던 바디로션도 건조함이 느껴질 때마다 수시로 발랐다. 답답한 마음에 피부 질환에 용하다는 한의원에도 가서 약도 복용하고 침도 맞았는데 사정상 한 달 만에 그만뒀다.


  물도 많이 마시려고 노력했다. 업무 시간 중에만 텀블러 기준 세 통을 마셨다. 텀블러의 용량이 약 500ml이므로 1.5리터 정도 된다. 식사 전후 1시간에 소위 말하는 물배를 채우면 음식물 소화에 무리가 가므로 물은 마시지 않았다.


  음식은 또 얼마나 가렸는지 모른다. 회식 때나 사람들과 어울릴 때 한 번씩 마셨던 술은 아예 끊었고, 밀가루 음식도 끊었으며, 커피도 끊었다. 니켈 알레르기가 의심돼 니켈이 들어 있는 식품을 피하기 위함이었는데, 니켈 제한 식이표를 생애 두 번째로 받아 들고 얼마나 우울했는지 모른다. 의사 선생님은 할 말을 잃은 나에게 한 가지 희망을 주려고 하셨는데, 반드시 피해야 할 음식이지만 워낙 먹을 게 없다 보니 김치는 조금씩 먹으라고 ‘김치’에 가위표를 그린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평소에 김치를 거의 먹지 않아 그리 기쁘진 않았다.


  알레르기 테스트도 다시 진행했다. 꽤 오래전 피부 반응 검사(등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을 떨어뜨리고 바늘로 살짝 찔러 피부 반응이 일어나는지 검사하는 것)를 받았었는데 이번에는 혈액을 뽑아 시행하는 MAST 검사를 의뢰했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새로운 물질이 있나 싶었는데 기존에 알고 있던, 그래서 기피했던 물질들이 결과지에 나와서 결국 트러블의 원인을 계속 찾아야만 했다.


  이렇게 갖은 고생 끝에 찾은 피부 트러블의 원인! 바로 메밀베개였다.


  방문했던 세 군데 피부과들에서의 진단이 큰 도움이 됐다. 처음 방문했던 A 피부과에서는 아토피로 진단을 받았다. 당시에는 팔꿈치 안쪽 등 일반적으로 아토피 피부염이 나타나는 곳에 트러블이 심했었기 때문에 충분히 아토피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머리카락과 얼굴, 귀 등 피부와의 경계선, 목 부근에서의 트러블이 심해졌다. 따라서 두 번째로 방문한 B 피부과, 마지막으로 방문한 C 피부과에서는 접촉성 피부염을 의심했었다. 과거 진료 이력이 있었던 B 피부과에서는 식품에 의한 니켈 알레르기를 언급했었고, C 피부과에서는 샴푸나 화장품 등을 최근에 바꾼 적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해당 사항은 없었다. 하지만 그때 의사 선생님의 질문이 아무래도 찝찝했다. 샴푸나 화장품 등을 바꾼 적은 없지만 얼굴, 귀, 목 등 부근에 접촉성 피부염이 나타난다? 그렇다. 베개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베개피를 청결하게 관리하고, 그마저도 찝찝해서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광목천을 베개 위에 깔고 벴다. 하지만 피부 트러블은 계속됐다.


  그러다 우연히 본가에서 사용하는 베갯속 성분이 메밀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 없이 메밀베개를 검색해봤는데! 세상에! 메밀베개 근처에만 가도 호흡곤란을 일으켰다는 등 메밀베개가 알레르기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 그렇구나!’ 정도였다. 하지만 본가에 올 때마다 알레르기가 유독 심해진다는 걸 인지하게 됐고 그 즉시 집에 있는 모든 메밀베개를 버렸다.


  놀랍게도, 또 감사하게도 메밀베개를 처분한 이후 피부과에서 처방받은 연고들을 바를 일이 아예 없어졌다. 사실 메밀은 식품으로 먹을 때에도 약하게 구강 알레르기를 일으켰던 물질이었다. 살짝 기분이 나쁜 정도의 약한 반응이어서 메밀이 들어 있는 음식을 아주 가끔씩 먹어 왔었다. 게다가 본가에서 메밀베개를 쓰기 시작하자마자 피부 반응이 일어난 것도 아니어서 메밀을, 구체적으로 메밀베개를 피부 트러블의 원인으로 전혀 의심할 수가 없었다.


  약 1년간의 고생 끝에 피부 알레르기를 극복한 걸 자축하기 위해 맥주 세 캔을 샀고, 삼일에 걸쳐 한 캔씩 축배를 들었다. 인생 첫 혼술이었다. 여기에 정말 꾹꾹 참았던 파스타도 봉인 해제했다. 외식을 하면 파스타와 피자를 1순위로 먹었기 때문에 밀가루를 끊으면서도 제일 걱정됐던 메뉴들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반갑지는 않았다. 파스타, 피자 등 밀가루 음식들을 멀리하면서 한식의 맛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입맛만 더욱 까다로워졌다.


  알레르기의 원인을 찾으려면 꽤 오랫동안의 숨바꼭질이 필요하다. 피부 반응 검사, 혈액 검사 등 각종 검사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참고용이다. 나의 경우 혈액으로 하는 MAST 검사에서는 복숭아와 자작나무에서 뚜렷한 반응이 나왔다. 반면 등에 시행했던 피부 반응 검사에서는 복숭아, 자작나무와 같은 봄철 꽃가루 유발물질 외에 달걀, 게 등에도 반응이 있었다. 실제 알레르기 반응이 있지만 검사 결과에서 나오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복숭아와 교차반응을 일으키는, 다시 말해 우리 몸에서 복숭아와 유사한 물질로 인식된다고 알려진 사과, 자두, 체리, 또한 앞서 언급했던 메밀이 그렇다. 심지어 메밀은 알레르기 무반응으로 나왔다.


  이런 현실 탓에 피부과 선생님들은 피부 병변을 확인한 뒤 생활 습관, 식습관 등을 물어보며 원인을 추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환자는 ‘원인은 이거예요!’라는 속 시원한 해결책 대신 언제 끝날지 모를 숙제를 안고 병원 밖을 나서게 되는 것이다. 비용이 얼마가 됐든 검사를 했을 때 정확도 높은 결과가 나온다면 곧바로 검사부터 하지 않았을까.


  피부 트러블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했고, 하필 알레르기가 나타난 부위가 얼굴과 목이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꺼려졌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삶의 질을 위해 여러 곳의 병원을 방문하며 힌트를 얻었고, 알레르기 검사로 퍼즐 조각도 맞춰보고, 논문도 뒤져보고 하면서 마침내 큰 숙제를 끝낼 수 있었다. 혹시 모를 남은 숙제가 있을까 봐 지금도 조심, 또 조심하고 있다. 알레르기는 언제든 갑자기 생길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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