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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ya Aug 09. 2020

‘선을 넘는 것’에 대한 불쾌함

  “이것도 함께 등록하면 딱 VIP가 되시는 거죠.”  

  게릴라성 폭우로 하루 종일 흐렸던 휴가 이튿날, 고민이었던 피부 색소침착을 치료하고자 피부과를 찾았다. 금요일 오후 9시까지 피부과 전문의 4명이 진료를 보는 곳이다 보니, 근무지 합천에서 본가가 있는 창원으로 넘어오는 길에 종종 찾았던 곳이다.  

  건물 지하에 위치한 주차장 진입부터 만만치 않았다. 출입구가 하나다 보니 정체가 벌어진 것이다. 이 건물에는 내가 가는 피부과를 포함, 각종 병원들이 층마다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간 주차와 관련한 불편한 기다림을 못 느꼈던 이유가 나는 항상 다른 병원들이 진료를 보지 않는 야간 진료 시간 때 피부과를 찾았기 때문이었다는 걸, 한참 기다리면서야 깨닫게 됐다.  

  접수를 하고 약 30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진료실에 들어갔다. 늘 그렇듯 피부과 선생님과의 상담은 그간 쌓인 괴로움과 짜증에 대한 심리 상담에 가깝다. 알레르기가 난 모양을 보고 “원인은 이거예요!”라고 딱 진단이 내려지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 특히 나처럼 각종 알레르기가 많고 교차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알레르기가 난 걸 찍은 사진들과 함께 그간 얼마나 힘들었는지 토로하고 나면, 피부과 선생님은 인자하게 이제 괜찮아질 거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만 들어도 나은 것 같다.  

  의사와의 상담이 끝나고 나면 코디네이터와의 상담이 기다리고 있다. 나 역시 서비스 및 마케팅 업무를 하고 있는지라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전략을 파악하고 괜히 머리를 쓰며 신경전을 벌이는 곳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에 만난 코디네이터는 다소 선을 넘었다. “색소침착 치료를 위해 이런 레이저를 쓸 거고, 몇 회에 가격은 얼마입니다.” 정도의 이야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대뜸 나에게 환부를 보여줄 수 있냐고 물어본 것이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옛말이 있긴 하지만 피부과 전문의와 비전공자인 코디네이터는 분명 다르다. 순간 ‘이건 월권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디네이터에게 진단받을 생각도 없었고, 환부를 보고 나서 “어휴~ 심하네요!”라는 악플 같은 말도,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어요.”라는 위로도 듣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말 뒤에 “10회로는 힘들고 20회는 하셔야겠어요.”라고 말한다면 더욱 짜증 날 것 같았다. 과연 어떻게 하나 싶어 환부를 보여줬는데 안타깝게도 내 예상과 똑같이 흘러가고 말았다.  

  레이저 종류를 언급하며 피부과에 많이 가본 것처럼 말했더니 추가 상품을 권유한다. 애초에 할 생각도 없었지만 고민하는 시늉을 하니 오늘 바로 470만 원을 결제하면 VIP가 된다며, VIP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을 말해줬다. “고객님이 싫어하실 수도 있는데~”라는 그녀의 말마따나 구미를 확 당기는 혜택들은 아니었다. 약 15~20분의 실랑이 같은 상담 끝에 나는 피부과를 오기 전부터 생각했던 색소침착 레이저 치료만 딱 결제하고 나왔다.

  ‘선을 넘는다.’, ‘선이 없다.’라는 표현들을 자주 보게 되는 요즘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이 소위 말하는 꼰대들의 기준일수도, 우리 모두가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지켜왔던 규범일 수도 있다. 그 선을 어떻게 넘느냐에 따라 재미있게 보일 수도, 새로운 파격으로 보일 수도, 때론 파문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실생활은 물론이고 서비스나 마케팅에서도 그 선을 잘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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