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ot for the moon_1
회사 입사 후 끊임없이 대학원 진학을 꿈꿨다. 직장인들이 다닐 수 있는 대학원은 어디인지, 지방에 있는 직장인들을 위해 주말에만 수업하는 서울의 대학원들은 어디인지 매 학기마다 검색을 해봤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MBA 진학을 결심하게 된 데는 아주 확고한 계기가 있었다. 너무나 확고해서 그동안 검색을 하며 보낸 시간들은 무의미해 보일 정도였다. 학사 때 전공과도 무관하고, 현재 맡은 업무와도 무관하며, 학문의 껍데기만 썼을 뿐 사실상 근본이 없는 분야라고 생각한 경영학을, 그래서 한때 ‘비싸고, 한물갔고, 인맥 쌓기용’이라고 치부했었던, 비하했었던 경영대학원을 내가 선택하다니. 그 확고한 이유는 ‘인간관계’였다.
나름 사회에서는 인간관계를 잘 유지해 왔고, 업무도 어느 정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2022년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감, 자존감, 융통성 등 모든 지표들이 떨어져 있었다. 쉽게 말해 일을 할 때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기분‘이었다. 꾸준히 하던 취미 생활로 좀 풀 수도 있었는데 취미 생활을 할,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 취미 생활을 하러 가서 오히려 그곳의 물을 흐리고 피해를 입힐 거 같았다. 그 과정에서 나의 자존감을 살린 게 공부였다. 운동과 공부. 나 자신만 제어하기만 하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들이다. 해결되지 않는 관계 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자격증 공부에 몰두했고, 합격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며 자신감도 회복했다.
그렇게 다시 나를 제어하기 시작하니 내가 어려움에 처한 이유에 대해 알고 싶었다. 왜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려울까, 그 관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회사에서 나의 위치는 어느 정도인데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인문학적으로 답을 찾자니 조금 돌아가는 기분이랄까? 빠른 길은 사회과학, 경영학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사 6년 차만 해도 ‘중견 직원’, ‘베테랑’이라는 말이 어색했는데, 7년 차에 접어들고, 이제 막 입사한 후배들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면서 이제 회사 내 나의 위치는 허리, 중간 역할을 해야 된다는 걸 완전히 받아들이게 됐다. 하지만 나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예쁨 받고 이해받았던 입장이 아니라, 홀로서기를 해서 일이나 인간관계에 있어 어느 정도 능숙함을 보여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걸 뒤늦게 자각하고 보니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인간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주지 않으려면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알아야겠다는 굳은 결심이 섰다. 그게 MBA를 결심하게 된 이유다.
이제 막 1학기가 지났다. 내가 내놓은 결과물에 비해 과분한, 수강한 세 과목 모두 A+라는 기분 좋은 성적표도 받았다. 학기 중에는 과연 졸업이나 할 수 있을까, 냉정하게 봤을 때 내 성적은 B+, B+, C+이라고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회사에서 대학원 학자금을 일부 지원해 주는데 지원 기준인 평균 B+도 안 되겠다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걱정이 너무 과했던 거 같다. 졸업을 걱정했는데 예상외의 성적표로 기분이 좋아져 논문 준비에 도전해보려고 한다. 만약 논문 준비가 어그러졌을 때의 대비책들도 마련해 두었다. 매 학기 3과목을 꽉 채워 들으면 혹시 논문 준비가 어그러지더라도 제때 졸업이 가능하더라. 1학기 성적표만 보고 즉흥적으로 논문에 도전하겠다고 결정한 건 결코 아니다. 학부 때 무수한 소논문과 졸업 논문을 써봤던 그 미미한 경험 덕분이기도 하고, 뭔가 딱 꽂혔을 때 깊이 파고드는 성격 상 딱 맞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어 일단 저질러보기로 했다. 논문을 준비하면서 교수님과 나누게 될 대화들도 기대가 되고 기다려진다. 어쨌든 지난 1학기는 기분 좋은 자극을 주었고, 더 높은 목표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자신감을 준 학기였다.
참, 내가 다니는 대학원은 국립 원격대학원이다. 단 1학기만 다녔을 뿐인데 8학기를 다닌 학부 때보다 학교에 대한 애정이 크다. 얼마나 애정이 크냐면 꿈에도 학교가 나올 정도다. 오프라인 행사 참석 차 딱 한 번 대학 본부에 가본 게 전부인데 말이다. ‘졸업이 쉽지 않다.’는 악명(?)으로 이름이 높은데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인 줄 알았다. 나 정도쯤은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시간과 노력 없이 그냥 되는 건 없다. 주중에 마무리 지어야 할 기말 과제가 있었는데 밤을 꼬박 새워서 완성하고, 2시간 잠깐 눈 붙인 뒤 출근해서 점심시간 때 한 번 더 검토하고 제출하기도 했다. 주말에 밀린 강의를 듣고, 강의를 들으며 시험에 대비한 강의록을 만들고, 과제를 했던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간단히 언급만 하겠다. 감사하게도 책상 앞에 앉으면 엉덩이 무게가 무거워 가능했던 일들이었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나고 나니 할 일이 갑자기 없어진 느낌,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어휴, 내가 그래서 계속 자격증 공부를 하고, 결국 대학원까지 오지 않았나 싶다. 얼른 새 학기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직장 생활 속에서 뭔가를 찾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다른 관점을 찾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너무나 강력 추천해드리고 싶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수업을 들을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전국 혹은 해외에 있는 원우들을 만나며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공부를 하면서 나와 회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물꼬가 생겨 참 좋다. 실제로 난 흔히 말하는 ‘회사의 노예’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과제 및 시험에서 내 생각을 피력할 때 ‘내가 정말 노예처럼 생각하고 살았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경영대학원이다 보니 생각의 관점을 경영자의 시각으로 바꾸어야 했는데 정말 생각, 관점이 무섭다는 걸 느꼈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대한 시시콜콜한 촌평을 하는 것보다, 어제 봤던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나는 조금은 철학적인(?), 거시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좋다. 나는 그런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