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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 Oct 27. 2024

고생하셨어요, 앞으로는 행복하기만 해요~

직장생활 30년 만에 어렵게 결심한 휴직. 휴직한 지 한 달 남짓 지난 시점에 왼쪽 어깨를 크게 다쳤다. 어깨 관절와순 봉합 수술을 하고 두 달 정도 지나니, 통증도 많이 없어지고, 아직은 빠르게 운전대를 왼쪽으로 돌리면 아프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운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휴직하면서 부모님과 여행도 자주 가려고 했는데 다치는 바람에 그렇게 하지 못해서 이내 마음이 안 좋았다. 


요즘 아버지의 어지럼증이 심해지셔서, 여동생이 병원을 모시고 다니면서 원인을 찾고는 있는 중이다. 그리고 팔순 중반이 되니, 주위 친구분들의 연이은 부고 소식에 더 기운이 없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 다닐 떄는 시간이 없어서 자주 찾아뵙지 못했지만, 휴직하는 동안에는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화요일 저녁 약속이 취소되면서 그날 부모님 댁에 가기로 했다. 첫 번째 실행의 날. 4월 중순 화요일 아침,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과 따스한 햇살이 좋은 날은 왠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외출을 하고 싶어진다. 가족들의 아침을 챙겨주고, 가족들이 먹을 반찬과 찌개를 준비해 놓고는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부모님 댁에 도착하니, 엄마는 텃밭에 떨어진 사철나무 잎사귀를 빗자루로 쓸고 계셨다. 아버지는 일요일에 침을 맞으시고는 조금은 어지럼증이 괜찮아지셨다고 하시면서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셨다. 


날씨가 너무 좋으니 인천대공원 근처에서 식사하고, 대공원 한 바퀴 돌고 오자고 했다. 여동생도 오전에 가게 일을 빨리 마치고 오라고 해서 같이 갔다. 인천 대공원은 우리 큰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가 차를 운전해서 자주 왔었다고 하면서 벌써 15년도 넘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좋아하시는 엄마. 아직은 기력이 없으셔서 집에 있고 싶지만, 자식들 중에 어려워하는 자식인 내가 제안을 해서 그런지 아무 소리 안 하시고 옷을 갈아입으시는 아버지. 

늦은 점심으로 인천대공원 근처 묵밥 집에서 자연식으로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고, 대공원 후문 입구에서 30분 정도 산책을 했다. 집에 돌아가자고 하시는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이내 부모님 댁으로 돌아왔다. 식사 시간을 포함해서 2~3시간 남짓 갔다 왔는데도 엄마는 바람 쐬니까 좋다고 하시면서 환히 웃으신다. 아버지도 식사도 맛있게 하셔서 그런지 안색이 조금 좋아지시고 밝아지셨다. 그런 두 분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따스해지면서, 이런 시간이 이젠 얼마나 남았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전에는 가족들과 같이 와서 이른 저녁을 먹고 우리 집으로 가기에 바빴는데, 이번에는 혼자 오고 내일 간다고 생각하니 여유가 생겼다. 외식을 하기보다는 집에는 부모님과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없을까 생각해 봤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결혼한 이후로 한 번도 부모님 댁에 혼자 와서 하룻밤을 자고 간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남편과 같이 오거나,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에는 가족이 같이 왔었네 하는 생각이. 태어나서 결혼하기 전까지 27년을 부모님과 같이 살았는데...


부모님과 같이 할 거리를 생각해 보다가, 손이 많이 가는 밑반찬을 같이 만들고, 아버지 책상에 놓여있던 치매 예방을 위한 책자라고 되어 있는 틀린 그림 찾기를 같이 해 보기로 했다. 

밑반찬으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추리알 조림과 점심을 먹은 식당에서 반찬으로 내어준 북어와 마늘종 무침을 같이 만들어서 나누자고 했다. 우리 아이들은 까놓은 메추리알을 사서 조림을 하면 겉이 딱딱하다가 잘 안 먹는다. 그래서 생메추리알을 사서, 삶아서, 껍질을 까서 조려야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성가셔서 자주 못 해주는 반찬이다. 지금도 사시사철 여러 가지 김치와 밑반찬을 해서 우리 삼 남매에게 나누어 주시는 엄마는 냉큼 장바구니와 걸을 때 사용하기는 우리 작은 아이가 탔던 유모차를 주섬주섬 챙기신다. 유모차는 엄마가 무릎관절 수술로 거동이 불편하셔시 이동하실 때는 자주 이용하시는 듯 했다. 


메추리알을 삶아서 아버지, 엄마와 식탁에 앉아서 한 알, 한 알 까면서 두런두런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 이야기도 하고, 내가 어렸을 때 주로 뭐 하고 놀았는지 물어보기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메추리알을 백 개가 넘게 껍질을 깠다. 북어채와 마늘종 무침도 북어채를 연하게 하기 위해 조그마한 절구 방망이로 두드리면 아버지가 가위로 자르셔서 무칠 준비를 했다. 

반찬 준비를 하면서 내가 어렸을 때 주로 무엇을 하면서 지냈냐는 질문에 엄마는 '너는 책을 좋아해서 늘 책을 읽고 있었는데' 하시면서 생각이 안 나냐고 물으셨다. 나는 어렸을 때는 책을 읽으면서 조용히 지내는 아이였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외향적인 성격이 좀 더 강한 어른으로 자랐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는 줄곧 반장이나 부반장을 했고, 어쩔 수 없이 나서서 이야기도 하고, 리딩을 해야 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후천적으로 외향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저녁에 돌아갈 거지?' 하고 물으시는 아버지께 '아니요,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 먹고 갈 건데요.' 라고 대답을 했더니 '어두운데 차 운전하면서 집에 가는 모습이 안쓰러웠는데.'라고 말씀하신다. 아버지는 밥 그룻에 반도 안되는 양을 반찬 두 세 가지로 식사를 하시고, 엄마는 삼분의 이 정도의 양으로 꺼내 놓은 일곱 여덟 가지의 반찬을 골고루 드시면서 복스럽게 드신다. 손 떨림 없이 젓가락은 잘 사용하시는지, 혹시 씹는 데 문제는 없는지 등을 이렇게 온전히 살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엄마 집에 오면 해 주시는 식사를 먹기만 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미안함도 들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는 두 분이 드시는 처방 약과 영양제도 살펴보고, 혹시 떨어진 영양제는 없는지, 어떤 약을 들고 계시는지도 확인해 보았다.


아버지와 식탁에 나란히 앉아서 틀린 그림 찾기를 해 본다. 화투 그림으로 되어 있고 틀린 10곳을 찾는 게임이다. 늘 TV를 보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기 싫을 때도 있고, 혼자 보고 계시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해서 이 게임을 하자고 했는데, 잘 찾으시는 모습을 보고 아직 치매는 아니구나! 하면서 안도하게 된다. 같이 찾으면서 내가 어렸을 때 이불을 깔아 놓고 같이 레슬링도 하고 놀아 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났다. 다음은 엄마 차례, 아버지가 5개를 했으니, 엄마도 5개는 해야 한다고 승부욕을 발동시켜 놓았다. 열심히 찾으시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고 있자니, 정말 해맑은 표정으로 집중하는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이런 시간을 정말 많이 가져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엄마 옆에 누웠는데, '결혼한 이후에 너 혼자 와서 같이 잔 적이 처음이네. 좋네'라고 하신다. 애교 없는 딸이기에 엄마 손을 꼭 잡았다. 거칠어지기는 했지만, 엄마의 작지만, 따스한 손의 느낌이 내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이었다.




친구나 지인들 부모님의 부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연세를 확인하게 된다. 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가끔은 섬뜩하고, 내가 최선을 다해 잘해 드리고 있는 건가 하고 자문하게 된다.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핑계로 부모님과의 같이 하는 시간을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엄마는 잠을 깊게 주무시는 것 같은데, 아버지는 새벽 1시까지도 TV를 보거나 거실을 왔다 갔다 하시다가 잠이 드시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슬리퍼를 신고 텃밭도 둘러보고, 모란과 겹벚꽃도 보고, 작년에 사다 놓은 작은 소나무에 아버지가 지지대를 잘해 놓으셔서 잘 자라고 있는 것도 확인하면서 어슬렁거려 보았다.

아침 식사를 하고는 대중목욕탕에 가신다는 아버지를 태워 드리고, 집에 와서는 빨래, 청소를 분주히 하시는 엄마와 쉬면서 하라고 하면서 차도 마시고, 과일도 먹었다. 이젠 집안일도 적당히 하시고, 여유롭게 산책도 하시고, 아버지랑 카페도 가서 차도 마시라고 당부의 말을 건넸다. 


오후에 필라테스와 병원 예약이 되어 있어서 오전에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부모님과 같이 반찬도 만들고, 틀린 그림 찾기도 하고, 아버지와의 산책, 엄마와의 담소를 나누었던 순간의 시간이 너무 편안하고 행복했다. 특히 활기를 되찾으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소소하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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