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 오늘 저녁 금요 포차 하나요 ?
큰딸 : 네 해요~.
아빠 : 메뉴는 뭐니 ?
큰딸 : 뭐 드시고 싶으세요 ?
엄마 : 레드 와인이 좋을 것 같은데. 집에 새우랑 마늘 있으니 감바스 해 먹으면 될 것 같은데. 치즈도 좀 있으니 ?
작은딸 : ㅋㅋㅋ 좋아요~
금요일 오후 가족 단톡방이 잠시나마 시끄럽다. 우리 집에는 우리 부부와 성인이 된 두 딸이 같이 살고 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같은 집에서 살고는 있지만, 각자의 생활이 바빠서 주중에는 얼굴 한 번 제대로 보기 어렵다. 주말 또한 주중에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늦잠을 자기 일쑤이다. 그리고 친구와의 약속이 있는 날에는 슬그머니 외출을 하기에 어떨 때는 주말에도 같이 밥 한 끼 먹기가 힘들다. 덕분에 남편과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나 혼자 산다의 나래 바'처럼 금요일 저녁 10시에 각자 볼일 다 보고 집에서 만나서 가볍게 술 한잔하자고 제안을 했다. 일명 와인을 먹는 날은 '금요 바' , 소주에 어울리는 안주가 준비되면 '금요 포차'로 명명하고.
다행히도 우리 가족은 모두 술을 마실 줄 알고, 술자리를 좋아한다. 술 센 남편의 유전자를 받았는지 두 딸 모두 술이 약하지는 않다. 다만 나는 남초 대학, 남초 직장생활을 하면서 쌓인 노하우 덕에 술이 센 것처럼 보이는 것에 능숙하다.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리면서 한 주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둘씩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회사 동료들과 힘들었던 이야기, 진로에 대한 고민, 친구와의 갈등, 등 다양한 고민거리와 걱정거리를 나누다 보면 새벽 1시를 넘기기가 일쑤다. 다음날이 토요일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스무 살이 훌쩍 넘은 우리 딸들은 지금도 부모와의 여행에 기꺼이 동행해 준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같이 가는 여행이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면 열이면 열 명 모두 요즘 시대에 그런 아이들이 어디 있냐고, 부모의 착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딸들이 고맙고,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겠지만, 둘이 잠자는 모습만 봐도 가슴이 벅차다.
30년을 워킹맘으로 살아와서 그런지,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해 주지 못해서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시간을 쓸지 많이 고민해 왔던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안방에 이불을 여러 채 쭉 깔아 놓고 아버지, 동생들과 같이 씨름하면서 놀았던 때가 정말 좋았던 기억이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 삼 남매를 위해 놀아주셨던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과 서로 웃다가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던 시간.
그래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퇴근 후 30분이라도 남편과 같이 이불에 아이를 올려놓고 그네를 태워 주거나, 이불 위에서 씨름도 하면서 격하게 놀아 주었다. 주말에는 집 근처 공원이나 대학 캠퍼스에 가서 같이 달리기도 하고, 공놀이도 하고, 자전거, 인라인, 보드도 같이 타면서 가능하면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기보다는 같이 놀아 주려고 많이 노력했다.
남편과도 부모의 역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가능하면 상의하고 의견을 맞추려고 노력해 왔다. 아이들이 엄마와 아빠의 교육관이 달라서 혼란스럽지 않게.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의 재능을 발견해 주고,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바르고 잘 자라주는 것이 선생님이나 부모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는 선생님과 두세 달에 한 번씩은 따로 시간을 잡아서 우리 아이가 어떤 활동을 할 때 좋아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물어보고, 내가 관찰한 내용이나 생각과 공유하면서 아이의 재능을 찾으려고 했다. 초등학교 선생님께도 1년에 최소 한 번 이상은 찾아가서 아이의 재능과 장점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치원 3년,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을 하다 보니 아이들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어느 정도 범위 내에서는 찾게 되었다. 어떤 선생님은 나의 이런 취지를 이야기하면 불쾌하게 생각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선생님도 있었다. 부모가 왜 선생한테 그런 것을 요구하냐는 듯이. 그런 경우에는 아이한테도 솔직히 이야기하고, 그 학년은 가능하면 선생님 눈에 너무 띄지 않게 생활하라고 했다. 다음 해가 되면 선생님이 바뀌니까. 아이들 키우는 것은 장기 프로젝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가능하면 우리 아이들을 남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비교 대상은 자기 자신이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 작년보다 나은 올해의 나를 만들어 가야 무한히 성장이 가능하니까. 어렸을 때 동갑인 사촌과 명절 때나 방학 때 만나면 어른들이 과목별 성적, 반 등수, 전교 등수를 비교하고, 받아쓰기 시합도 했던 안 좋은 기억도 있었다.
반면에 큰 딸에게 미안한 부분도 있다. 큰 딸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동생을 바라볼 때는 그윽한 눈빛으로 보는 것 같아요. 나를 볼 때와는 다르게’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무슨 의미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큰 딸은 늘 어른의 눈높이에서 아이를 바라보니 늘 부족한 것만 보였다. 반면 작은 딸은 큰 딸을 키워본 경험이 있으니,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를 대했던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작은 딸은 거의 혼낸 적이 없는데, 큰 딸은 상대적으로 혼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큰 딸은 내가 혼내면 억울한 부분이 있는데도 대꾸를 안 하고 눈물을 흘린다. 나중에 안 사실은 엄마한테 미안해서 그랬다고 했다. 작은 딸은 혼내면 일단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잽싸게 잘못했다고 하고, 다시 그 잘못을 반복하는데.
그래서 큰 딸한테는 미안한 마음이 지금도 든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어서 너를 상대적으로 더 혼냈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지금도 오늘까지 브런치에 글을 올려야 한다고 하니, 작은 딸은 엄마가 글 쓰기에 전념하라고 점심으로 양송이 크림 파스타를 만들어 주고 있다. 큰 딸도 일요일이라 쉬고 싶을 텐데 알아서 강아지 산책도 시키고, 세탁기도 돌려주고 있다. 창밖의 날씨는 잔뜩 흐리고 추워지고 있는데, 남편과 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평온하고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