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의 글쓰기 06

서너 번 반복되는 얘기에 멈춰서 정확히 바로 잡았다

by 혜리영


https://brunch.co.kr/@riyoung/242




윤은 서너 번 반복되는 얘기에 멈춰서 정확히 바로 잡았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해서 써 줬으면 좋겠어. 같은 얘기 반복하는 거 싫어.”


정확하고 간결한 멈춤에, 나는 어영부영 알았다고 대답했다. 대답은 어영부영 했지만 그 후로 윤에게는 ‘다르다’와 ‘틀리다’를 한 번도 잘못 사용하지 않았다. 뜻에 확신이 가지 않는 단어는 되도록 쓰지 않아 버릇 했고, 한 단어를 쓸 때는 특히 윤과 카톡을 주고받을 때는 사전 검색은 필수가 되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쉽고 쉬운 단어만 사용했다. 그리고 우리의 관계도 정확함을 찾다가 쉽고 쉬운 사이가 되어갔던 것 같다. 윤의 번호를 지운 건 잘한 일이다.


“여자친구 너무해요. 그럼 작가님 차인 거예요?”

“응 차였어. 근데 되게 멋진 여자지?”

“네, 근데 솔직히 너무 차가워요. 감정이 없을 거 같아요. 연애는 어떻게 했어요? 싸울 일도 없을 거 같아요.”


호로록 컵에 든 음료를 호호 불며 마시는 커피양의 입술이 새 부리처럼 뾰족하게 나온다.


“그녀는 날 다독이고 격려해주고 떠났어. 넌 좋은 글을 쓸 거라고, 그러나 난 그런 사람을 만나진 않을 거라고. 그게 우리 이별의 이유야. 내가 그녀가 원하는 모습을 벗어버리니. 그녀는 날 더 만날 이유가 없어진거지. 그녀는 넉넉하진 않아도 모자람 없는 결혼생활을 하는 게 바람인데. 나와는 모자라는 데다 그녀가 많이 짊어져야 할 지도 모르는 미래였으니까. 커피양이라도 나같은 한량이랑 결혼하겠어?”


이미 그런 일은 다 지나간 일이라는 듯 한 팔을 의자 등받이에 걸쳤다. 한 다리도 올려 꼬고 싶었지만, 낮은 테이블에 끼어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 최대한 몸을 펼쳐 우쭐한 모습을 보였다.


“음...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작가님 책 몇 권 내셨어요?”


예상치 못한 훅이 들어왔다.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이며 셈하는 척 했다.


“책은 아직 없어. 몇 군데 투고 한 적은 있지만.”

“아~ 아직 책은 없으시구나. 언제 내실 거예요? 나중에 저 꼭 싸인해서 주세요오.”


여기까지 얘기하고 커피양은 바 안쪽으로 들어갔다. 짧지만 강력한 훅을 치고 빠지는 저 여유. 나는 순간이지만 나의 껍데기가 벗겨질까 겁에 질렸다. 무언가 되어본 적 없는 사람은, 그것을 이루려는 마음보다 허울이라도 얻으려는 욕망이 더 크다. 여기 이곳에서만큼은 나는 ‘작가님’이다. 형과 엄마, 윤이 바라던 나와는 다른. 그런데 이마저 없는 방에서 나는 무엇인거지? 나는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커피양의 전화번호를 알아낸 후로는 카페에 가기 보다, 메시지로 연락하는 일이 잦았다. 밤새 원고를 쓴다는 핑계로 늦은 밤 짧은 시를 보내기도 하고, 새벽 풍경을 찍어 보내기도 했다. 커피양은 한 시 전후에 늘 자는 듯 했다. 그 후에 보낸 메시지는 늘 다음 날 열한 시가 넘어 답이 왔다. 정확히는, 카페 오픈 시간 동안에는 답이 왔다. 그 전이나 그 후에는 묵묵부답이었다. 고객관리 차원인가 싶기도 하지만. 상관없다. 집에서도 ‘작가님’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 통화라도 하고 싶지만 그러면 한순간에 멀어질 것을 알기에. 적당한 시간을 두고 짧은 연락만 준다. 카페에 가는 횟수가 줄었다. 그래서인지 커피양은 찾아갈 때마다 더욱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다. 한두 번씩은 내가 보낸 메시지에 대한 얘길 해주기도 했다.


“작가님, 지난 번에 보내주신 시 너무 좋아요. 적어서 카페에 걸어두고 싶을 정도예요오.”

“커피양에게 보낸 건 시가 아니라, 내 글 속 문장들이야.”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https://brunch.co.kr/@riyoung/244



이전 05화작가님의 글쓰기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