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의 글쓰기 07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by 혜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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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어머 어쩜! 멋져요.”

“밤이 되면 글이 막 떠올라. 쓰지 않고는 못베기지. 그러다 이건 누군가에게 보내야 할 메시지다 싶은 문장이 있어. 그럴 때 주저하지 않고 보내는 거지.”

“작가님은 결단력 있는 삶을 사셨을 것 같아요. 저는 결정장애라 많이 망설여요.”


집을 나와 반지하 방에서의 첫 아침, 나는 무엇을 해야할 지 몰라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햇볕이 들지 않는 반지하 방이지만, 불을 켤 생각도 아침 식사를 준비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지침서가 없는 하루를 처음 맞이한 것이다.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잊은 듯 했다. 정오를 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일 처음 한 일은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한 일은 슈퍼에 가서 라면을 사와 끓여 먹었다. 세 번째로 한 일은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했다. 그리고 다시 누웠던 자리에 우두커니 앉았다. 회사에서는 한참 메일 발송과 통화, 회의 등으로 바빴을 시간이지만. 시계조차 없는 방은 우주에 뜬 까만 방인듯 저 혼자 흘러가고 있었다. 지침서가 있다고 해서 다를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해야 할 당연한 몫이 없어진 시간은, 그 시간조차 사라진 것 같았다. 근 이틀은 그렇게 싸고 먹고 자고 우두커니 앉아 보냈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하루의 일과는 자연스레 채워지고 흘러갔다. 당분간은 이렇게 살아도 되겠다 생각이 들 때, 윤에게 전화가 왔다. 윤은 방으로 찾아왔고, 우리는 헤어졌다.


윤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나도 평범한 학생이었다. 우리는 같은 교양수업에서 한 발표조가 되어 만났다. 무리를 짖지 않은 학생들이 한 조로 묶인 것이다. 다들 무던하게 맡은 몫을 했고, 발표도 무던하게 했다. 발표 이후 다른 학생들과는 다시 데면데면한 사이로 돌아갔고, 윤과는 연인이 되었다. 우리의 데이트는 학교 내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영화도 보고 멀리 데이트를 나가기도 했지만, 그건 드문 일이었다. 나도 윤도,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하는 생활이었다. 형의 학원비로 인해 나는 한 해 휴학하고 기숙형 공장에 가서 일을 했다. 윤은 그 때도 곁에 있어주었다. 윤은 쉬지 않고 일하는 내가 좋다고 했다. 윤의 아버지는 장사를 하셨다. 몇 차례 폐업과 개업을 반복했고, 그 당시 다시 장사할 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반복될 때마다 가게의 규모는 점점 작아졌다. 윤은 적당한 돈이 꾸준히 들어오는 삶을 원했다. 윤이 먼저 취직하고 나는 졸업준비와 취업준비로 바빠질 때에도 윤은 서둘지 않았다. 서둘러 거리를 두지도, 서둘러 뒷바라지를 하지 않았다. 윤마저 나에게 기대어 왔다면 나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윤은 서로의 관계가 틀어질 법 하면 거리를 두었다. 나는 그렇게 나를(사실은 윤 자신을) 제어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 거리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그러나 내가 글을 쓰겠다고 말했을 때에 윤은. 순식간에, 펼쳤던 설계도를 접어 보이지 않게 깊이 넣었다. 그리고 윤에게서 느끼던 거리가 사라졌다. 윤은 그날 밤 나와 나의 미래를 위로하고 지지해주며 떠났다.


글을 쓰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지만, 결국엔 빈 페이지만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형은 대뜸 전화하여 니가 무슨 글이냐,고 했다. 돈을 벌어야 할 니가 돈은 벌지 않고 무슨 글이냐,는 뜻이다. 내 자리는 돈을 버는 자리이다. 돈을 벌지 않는 나를 엄마와 형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글을 쓰려고 했다. 눈 뜨면 도서관으로 가 작법 책을 읽어댔으며, 해가 지면 컴퓨터 앞에 앉아 무엇이든 써보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자리에서 일어날 때에는 빈 페이지 뿐이었다. 내가 쓴 글에는 모두 엄마와 형 또는 윤, 부재한 아버지 등 내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있었다. 나는 그들을 쓰고 싶지 않고, 마주하고 싶지 않다. 그들에게 나는 늘 화수분처럼 돈과 안정을 주어야 할 사람이었다. 나를 소진하면서 그들의 삶을 영위할 영양분을 주고 있었다. 가르쳐준 삶을 따랐을 뿐인데. 그 길에서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하나의 미션을 해내면, 다음 미션이 주어졌다. 파이널이 없는 끝없는 미션은 나의 취향이나 선택 등은 고려하지 않았다. 주어졌다. 엄마의 바람이, 형의 욕심이, 윤의 미래가 나에게 미션을 내렸다. 나는 성실한 미션수행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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