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의 글쓰기 09

그리고 한 줄을 쓴다

by 혜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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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줄을 쓴다.

‘나는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쓸 수 없는 글을 써내려 간다. 오래된 보일러는 반지하 방에 온기를 넣기 위해 마지막 힘을 다해 가동된다. 모니터 가득 문장이 이어가고, 나는 지금이라도 당장 버릴 것이라는 마음으로 문장을 이어간다. 휴지통으로 버려져도 좋을 문장은 쉼 없이 나왔다. 버려도 좋을 문장만 계속 나왔다. 나에게는 버려질 문장만 있었던 것인가. 글을 쓰겠다는 것이 나의 욕망인가. 그간의 삶에서 벗어난 것이 나의 욕망인가. 알 수 없는 것을 확신하며 버려도 좋을 문장을 써내려 갔다. 페이지는 쉼 없이 넘어가고, 글 속 인물들은 금방이라도 멈출 듯 부품도 찾기 힘든 엔진을 돌려댔다.


커피양에게 문자가 왔다. ‘작가님 주무세요?’ 며칠 간 써 내려간 글을 저장해두고 단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다. ‘응’ 커피양의 프로필 사진은 알맞게 볶은 커피콩이다. ‘글 쓰고 계시는데 방해된 거 아니예요?’ 웃음과 민망함이 섞인 이모티콘이 연이어 전달된다. ‘커피양 잠이 안 오나봐’


‘작가님 사실은 전 커피를 계속 만들고 싶어요. 솔직히 처음엔 알바로 그냥 시작한 일이었는데, 점점 빠져든달까? 이 카페가 아니라도 사람들에게 커피를 주고 응원을 주고 싶어요. 이런 게 직업이 될 수 있을까요?’

‘그건 커피양이 알 수 있지. 나에게 물어보면 어떡해.’

‘작가님 삐치셨어요? 카페 오시면 농담만 하시지만. 그래도 작가님이 전에, 살면서 한 순간만이라도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고 말씀하신 거 늘 기억하고 있어요. 잘 모르지만 지금 작가님은 하고 싶은 걸 하고 계신 거 아니예요? 그래서 저도 작가님 보며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걸 생각하며 지냈어요.’


이어서 할 말이 없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그 말을 하던 그 때에는 글을 쓰는 게 혹은 작가가 된 듯 우쭐대는 게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무엇도 되고 싶지 않다. 팽팽하던 공기인형은 바람이 빠지고 있다. 터트릴 압력조차 사라졌다. 되어야 할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커피양의 문자가 이어서 온다. ‘작가님’이라고 시작되는 문자들이 쌓일수록 바람은 더 빠진다. 그 사이 윤의 문자가 섞여 온다. ‘자니?’ 연달아 이어지던 커피양의 문자는 답이 없음을 알고 멈췄다. 그리고 윤의 문자가 한 번 더 왔다. ‘생각나서. 글은 잘 쓰고 있어?’ 커피양의 마지막 문자는 ‘저는 결심했어요. 맛있는 커피 내리는 사람이 되기로’ 이다. 구하기 힘든 부품을 단 하나 가지고 있던 수리공이 고쳐준 보일러는 끝내 그 밤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멈췄다. 그리고 나는 답문자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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