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05_레온
이렇게 푹 자고, 여유롭게 눈을 뜬 날은 처음이다. 에밀리아 언니의 대모님 부부 덕분에 평화롭고 개운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에어비엔비 퇴실시간까지 정말 끝까지 숙소에서 버텼다. 그리고 레온. 드디어 레온이다. 이곳에서 예약해둔 알베르게는 오후에나 입실 할 수 있어서 잠시 도시를 둘러봤다. 다행히 전날 푹 자서 그런지 이정도 걷기는 할 수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맑은 공기 모든 게 상쾌하기만한 레온의 첫인상이었다.
다음 날 오비에도를 갈 예정이기에 먼저 레온 기차역에 답사를 갔다. 그리고 내가 예약해둔 알베르게가 있는 곳, 가우디가 만든 주택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길을 익히는 셈치고 알베르게까지 갔다. 체크인 시간은 아니었지만 배낭은 맡아준다고 해서 배낭을 맡겨두고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다시 길을 나섰다.
몸이 아프면 쉬어야 하는데, 나는 쉬지 않고 충전되었으니 돌아다녀야지 하는 맘으로 보티네스 주택과 레온대성당을 구경하러 길을 나섰다. 잘 충전을 해서인지 한결 발걸음도 가볍고 모든 것이 산뜻하고 좋았다. 그리고 레온대성당에서는 앞서 느릿느릿 멤버였던 금발의 아주머니를 다시 만났다. 우리는 서로 너무 반가워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의 무릎이 생각나서 괜찮냐고 물으니, 지금 무릎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서 어쩌면 레온까지만 하고 길을 멈춰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울컥했다. 나는 그녀에게 기도해주겠다고 말했고, 그녀도 나의 길을 위해 기도해주겠다고 말했다. 이제 길을 중단해야하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밝고 힘있게 웃었다.
체크인 시간이 되어 알베르게에 들어갔다. 짐정리를 하고 빨래하고 뒹굴거리다가 못참고 또 나가봐야지 하고 일어났다. 나가려던 참에, 길 초반에 벨로라도에서 만났던 두 사람을 다시 만났다. 일명 가이드와 냉장고 바지 아저씨! 서로 반가움에 깜짝 놀랐다. 나는 나가던 참이고 그들은 들어오던 참이어서 일단 와츠앱 연락처를 교환하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저녁에 미사 같이 드리고 밥 먹으러 가자고 연락이 와서 미사 때 만나기로 했다.
레온대성당 앞에서 다시 만났다. 숙소에서 먼저 인사를 나눴던 여성분도 같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가이드와 냉장고바지와 바욘부터 만났던 인연이라고 했다. 이렇게 넷이 같이 미사를 드리러 갔다. 평소 레온 대성당의 평일 미사는 소성당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날은 분위기가 달랐다.뭐지, 무슨 일이지. 주교님과 신부님도 여러 명이고 신자석 맨 앞줄은 양복과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열맞춰 앉아 있었다. 시장님이라는 것 같았다. 아마도 시장님, 경찰서장 등등 관공서 높은 분들은 다 온 것 같았다. 미사 끝에 성인의 유해가 모셔진 함에 경배까지 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성당을 나오며 경호원(?)처럼 서 있는 분에게 다가갔다. 처음에는 관광객인 줄 알고 단호하게 입장 안 된다고 단호박이었다. 나는 그게 아니라, 하며 번역기 돌린 질문을 보여줬다. 오늘 미사 때 경배드린 성인의 유해가 누구의 것인지. 그는 나의 질문을 보더니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산 프로일란’이라고 알려줬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성인이라 누구지? 싶었다. 알고보니 레온 도시의 수호성인이었고, 그날은 목요일, 산 프로일란 축일 기념인 레온 축제의 시작이었다.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은 시작된 축제로 시끌벅적했다. 공원 곳곳에 음악과 술이 있었다. 나는 좀더 이 분위기를 즐기며 맥주 한 잔 정도 더 하고 싶었는데, 이들은 알베르게가 목적지인 듯 빠르게 걸었다. 레온에서는 며칠 머물 생각이었기에, 나도 서둘러 그들을 따라갔다.
알베르게에서는 잠을 거의 못잤다. 내가 묵은 방 창문이 중정으로 나 있는데, 누군가 밤새도록 중정에서 담배를 펴댔다. 담배연기는 그대로 도미토리 숙소까지 들어왔다. 옆자리 배드의 아저씨 코고는 소리에도 잘 수 있었는데, 담배 연기에는 잠들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