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의 작은 저수지 마을, 바주(Bages)에서 사흘 밤을 보내고 나흘째 아침을 맞이하던 날에는 나르본(Narbonne) 끝에 있는 바다 마을, 그뤼썽스(Gruissance)에 가기로 했다. 그곳에 가기 위해선 시내로 나가 한번 더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요즘에도 사용하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골 마을에서 '읍내'를 거쳐 이웃 큰 마을로 나들이 가는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그날도 아침 사진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고 아침과 오후, 하루에 두 차례 운행이 되는 버스를 놓칠까 서둘러서 마을 아래의 간이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다.
일방통행만이 가능한 좁은 도로변. 자연의 풍광을 담느라 정작 우리의 사진에는 소홀했었던 서로를 찍어주며 길지 않은 시간을 보내었고, 첫 버스가 지나는 아침 8시 30분 무렵이 되니 우리 외에 네다섯 명의 마을 사람들이 알음알음 나타났다.
시골 마을에서 타는 버스의 느낌은 참 묘하다. 나르본(Narbonne) 시내에서 닿았고, 그뤼썽스(Gruissance)로 들어가기 위해 버스를 갈아탔다. 낯선 지역의 정류장을 한번 지날 때마다 그는 우리의 목적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을 하느라, 창 밖 풍경들을 감상하는 여행의 호사는 누리질 못한다.
여행지에서 길을 잃어도 나는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는 타입이 아니지만 지도를 잘 보고 방향 감각이 좋은 그로 인해 여행의 시간을 늘려서 활용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기는 하다.
그뤼썽스(Gruissance) 마을 입구에 도착을 했고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아침 식사를 할만한 곳을 가장 먼저 찾았는데 정류장 맞은편에 있는 베이커리에서 짭조름한 빵과 카페오레로 아침 식사를 챙겨 먹은 후, 마을 시내로 들어갔다.
그뤼썽스(Grussance) 마을 중심에는 카페테리아와 레스토랑, 아이스크림 가게와 베이커리들이 모여있는 커다란 시장이 있었는데 지도 없이 큰길을 따라 걸으며, 장 안의 풍경들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걷다가 몇 갈래의 길들로 나누어지면 마음이 가는 대로 걸었고 길이 끝나는 골목에 갇히거든 다시 돌아 나와 다른 길을 걸으며 그뤼썽스 마을 구경을 했다.
시장 거리를 걷다가 그 지방 특유의 전통 빵과 과자를 파는 베이커리에서 디저트 거리 몇 가지를 사서 배낭 속에 넣은 후, 11세기에 축조된 마을의 성벽 (Chateau de Grussance)에 올라갔다. 시가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걸어온 시장길이 손가락처럼 가늘고 길게 펼쳐져있었다. 사람들이 세운 마을의 모습은 하나의 체계로 조립된 블록처럼 눈에 들어오고, 꼬물꼬물 개미의 움직임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존재는 작은데도 참 경이롭다. 작고 작은 존재들이 모여 하나씩 둘씩 마을을 이루어가고 특유의 사회와 문화를 형성해 가며 도시를 세우고 유지해 간다는 게.
한눈에 내려다보는 세상은 언제나 조그맣고 장난감 같다.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땐 보지 못하는 것들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도시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어떠한 이야기들을 지니고 있을지, 개인 개인들의 이야기들이 이도시 속에도 무궁무진 다양하게 쌓여 있겠다 싶었다.
도시 형성의 근원과 성립의 과정이 어떻게 쌓여 왔을지 막연하게 떠오르던 궁금함은 머릿속에서 퍼져가고, 나는 지금 내가 소속된 도시 속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건지 의문이 생겼다. 생각하는 것처럼 나의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삶과 인생을 늘 허덕이며 살아오고 있었던 것 같다고 내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아 문득 무거워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