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상징, 바르소비.
폴란드와 나는 별다른 연결 고리가 없다. 굳이 꼽는다 하면 한국과 비슷한 역사적 설움과 아픔을 지니고 있는 국가라는 것, 개인적 음악 취향이 단단하고 자부심 깊었던 시기에 가장 사랑했던 음악가, '쇼팽'이 폴란드 출신이었으며 '로만 폴란스키' 캄독의 영화 중에 마음 저리게 보았던 영화 '피아니스트'의 배경지가 폴란드의 '바르소비' 였다는 정도.
하지만 그러한 이유가 이번 여행지를 결정하도록 영향을 준건 아니었다. 쇼팽에 대한 동경도,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라는 영화에 대한 아픈 여운도 바래져 버린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 지금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실 속의 부딛침들과 투쟁하느라 여념이 없다. 기억은 붙잡고 있어야 할 것들과 내게 붙어 있는 것으로 제들 스스로 분류되기 시작했고 이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딱 달라 붙어 있는 것들만 데리고 살아갈 뿐이다.
2019년을 시작하며 첫 여행지를 '바르소비'로 선택한 이유는 여행 일자가 다가올수록 궁금해졌어도 내면은 무덤덤하게 흘러갈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 해를 시작하는 의미처럼 2019년의 첫 여행이었는데, 작은 의지도 기대로 느껴지지 않는 스스로가 답답하고 불안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무언지 모를 체념 상태에 빠져 있는 듯한 나를 꺼내어 줄.
이유도 모르고 목적도 불분명한 채 계획을 해 두었던 밑 그림을 따라 나아가는 게 당연하다 생각을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면 여행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 만큼은 없었다는 것, 혼자가 아니었기에 덩치 큰 여행 가방을 들고 집 밖을 나설 용기가 있었다는 것.
혹시라도 그곳에 서면 찾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여전히 나는 모른다. 2019년의 겨울의 끝 지점에 서서 봄을 맞이하며 내가 만났어야 할 대상이 왜, 폴란드의 '바르소비'였었는지.
여행을 떠나는 몇 시간 전의 늦은 밤에, 노란색 표지의 'fabriano' 여행 노트 속에 써 놓은 다섯 개의 단어들 속에 활자 하나가 두드러지게 느껴지고 있었다. '소생' 이라고 써 놓은.
Mars 2019 à Wars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