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파리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조용합니다, 코로나-19 때문이죠.
신종 바이러스로 중국과 홍콩, 한국이 들썩였을 때에도 크게 개의치 않으며 무던하고 고고히 흐르던 도시가 어느 하루, 마크롱 대통령의 "Nous sommes en guerre! (우리는 전쟁 속에 있다)"는 선언과 함께 깊은 휴면의 상태로 진입해 버린 느낌이에요.
먹을거리를 사러 가거나 병원을 가는 정도의 이동이 허용되고, 대부분의 상가와 회사 운영이 통제되고 있는 상황에서 저 또한 며칠 동안 집안에서 일상을 채워가고 있어요. 평소에도 움직임이 그리 큰 사람이 아니었던 편이라 개인적인 일들에 집중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이 저에겐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새삼, 실감을 해요. 세상의 혼돈과 위기가 두루 파도치던 20세기의 분위기가 다소 잠잠해지고 견고하게 경제적 성장을 성취해 가던 21세기 초.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 내고 풍요로운 영광을 내뿜던 지난 시대가 제게 값없이 주었던 것들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누리고만 살아왔다는 것을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혀 버린 이번 사태가 지나고 나면 좋든 나쁘든 세상은 한 꺼풀 벗겨지거나 덧입혀져 전과 다른 모습으로 돌아가겠구나 생각을 합니다. 그때엔 저도 전과 다른 방식의 적응력을 입고 세상을 살아가게 될까요?
저녁 8시가 되면 프랑스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베란다로 나오거나 창문을 열고 일제히 박수를 치며 휘파람을 불어요. 코로나-19와 맞대결을 벌이며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의료진들을 향한 환호와 격려를 보내는 건데 어둑한 유럽의 밤 8시에 이 순간에 함께 하다 보면 마음이 뭉클해져요.
감금된 듯한 삶이 답답해 서로를 위로하겠다는 의지로 베란다에 나와 춤을 추고, 의료진들을 위로하려는 마음으로 일정한 시간에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는 이 행위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먼저 시작을 했고, 라틴계 유럽인의 긍정적인 다정함은 프랑스로까지 전해지고 있나 봐요.
저는 파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라고는 하지만, 12년을 살아온 이곳 파리가 내겐 여전히 고맙고 멋지며, 좋은 도시이라는 생각에 변함없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