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팀장의 눈물 (1)

by 리유


"감사합니다. 모두 우리 팀원 분들과, 무엇보다 우리 팀장님이 계셨기에 받을 수 있는 상입니다."


까만색 정장 바지에 갈색 재킷을 입은 여자분이 빨간 단상 한가운데에 서 있다. 어여쁜 파스텔 색의 꽃다발을 한가득 안고서. 자신을 향해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백여 명의 사람들을 주욱 둘러보며 환한 웃음을 짓는다. 그러다 오른쪽 끝에 서 있는 키 큰 남자에게 시선이 고정된다. 자신의 팀장이다. 김팀장.


김팀장은 나의 동기다.

15년 전 인턴 시절부터 지금까지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고 있다. 공채 연수 4주, 현장 인턴 3개월, 이후 본사 근무까지 주욱 함께 했다. 단 한 가지 다른 점은 그가 잠시 다른 회사에 발을 담갔다 돌아왔다는 점이다.

아주 비참한 모습으로.





김팀장은 당시 상품부서 바이어로 근무했었다. 일을 즐겼다. 좋아했다. 아니. 사랑하는 듯했다. 그게 문제였다. 너무 몰입했기에 본인과 일체화를 시켜버렸다. 매출이 잘 나오면 말 그대로 미친 듯이 기뻐했고 하락하면 모두 본인 탓인 마냥 괴로워했다.

회사가 성장세를 탈 때는 괜찮았다. 몸은 좀 힘들어도 노력 한 만큼, 공을 들인 만큼 결과가 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장의 규제와 치열한 경쟁환경 탓에 회사의 숫자들이 하락하기 시작할 때 그의 낯빛에는 늘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무너지는 매출을 어떻게든 살려보려 아둥바둥 애썼다. 새벽 6시에 출근해서 밤 11시까지 근무하기를 반복해도,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었다. 게다가 바잉 경험이 없는 팀장 밑에서 일을 하다 보니, 혼자만 발악하는 느낌만 강해졌다. 그러다 탈진해 버린 것이다.


결국 김팀장은 회사와 이별하기로 했다. 단 하루라도 더 있다가는 속에 있는 폭탄이 터져버릴 것 같았기에.

그는 12년 간의 바잉 경력을 포기하고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해버리고 말았다. 연봉 30프로 인상이라는 당근과 이 회사를 떠난다는 이유, 딱 두 가지만 보고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1년, 2년이 흘렀다.

종종 친한 입사 동기 카톡방에서 잘 지내는지 물어보면, 늘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만 남겼었다. 바빠서 그러려니, 잘 지내려니, 싶었다. 그런데, 두 해가 막 지났을 때 즈음 연락이 왔다.



"OO아, 잘 지냈어?"

"응, 잘 지냈어? 단톡방에서 연락도 없고~ 궁금했잖아."


"뭐, 그냥.. 좀 물어볼 게 있는데. 요즘 재입사 돼?"

"엥? 왜.."

"요즘 좀 힘들어. 꽤 됐어. 다른 계열사로 발령 났는데, 원래 일도 아니고, 이러다 잘릴 것 같아. 그리고 여기 분위기도 더 이상 못 견디겠어. 근무시간에는 서로 말도 못 하고, 핸드폰 보는 것도 눈치 보여. 삭막해."

"에구. 그랬었구나. 힘들었겠구나."


"그리고, 나 요새 약 먹어.. 잠도 잘 못 자고, 회사에서는 한 번씩 숨도 잘 안 쉬어져....."

"......"



2년 사이, 그는 달라진 문화와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새로운 사람들을 익히고, 눈치 싸움에 치이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 버렸던 것이다.


다음 날, 회사로 출근하여 김팀장이 물어본 것부터 알아보았다. 인사발령 부서에 확인해 보니 내부 추천이 있고, 해당 부서에 공석이 있을 경우에는 재입사가 가능한 것으로 확인하였다. 그에게 기쁜 마음으로 이 사실을 알렸다. 그는 알아봐 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한동안 다시 연락이 끊겼다.



두어 달가량 되었을까. 핸드폰에 그의 번호가 떴다.

상품 상무로부터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연봉은 원복. 즉, 지금 받는 만큼의 30프로 삭감 조건이었다. 그는 두 딸아이와 와이프를 부양하는 외벌이 아빠다. 연봉 30프로 삭감은 학원 한 두 개를 끊어야 할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 힘들어도 지금 회사에서 조금 더 버티다 보면 자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친구의 조언이 있었다고 한다. 반면, 자신의 와이프는 재입사를 하라고 말했단다. 매일 창문 밖을 바라보며 무표정으로 깊은 한숨만 내쉬는 남편을 더는 못 보겠다고 했단다.

나도 와이프의 말에 동조했다. 돈이고 경력이고 일단은 건강이 우선이라며, 아무것도 따지지 말고 일단 그곳을 떠나라고 했다. 우울증은, 마음의 아픔은 언제 어떤 순간에 좋지 않은 행동으로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얼마 뒤, 그를 만났다. 내가 일하는 건물의 회의실 앞에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손을 들고 나에게 인사를 한다. '나 살려고 왔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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