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빠진 날)
이빨 요정님께,
이빨 요정님.
오늘 저의 두 번째 송곳니가 빠졌어요. 한 달 전부터 앞 뒤로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본격적으로 들썩거리기 시작한 건 지난 주였어요. 지난 주 내내 학교에서 밥 먹다가 빠질까봐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 지 몰라요.
이빨이 어떻게 빠지게 되었는 지 알려 드릴게요.
집에서 저녁을 먹고 치카를 하는데 뚜둑 소리가 나는거에요. 보니까 흔들리던 그 이빨이 앞 뒤로 거의 뉘어질 정도로 들리는 거에요. 물론 피는 났죠. 하지만 별로 무섭거나 두렵거나 그렇진 않았어요. 벌써 앞니 네 개, 아랫 니 세 개, 그러니까, 이번이 여덟번 째 빠지는 거거든요. 엄마한테 가서 보여줬더니, 엄마 역시 아무렇지 않게 '조금 있으면 빠지겠네.' 말하며 거즈를 식탁 위에 올려 두었어요.
오히려 신난 건 쌍둥이 동생이었어요. 그 아이는 이빨이 아직 네 개만 빠졌거든요. 이게 아직도 신기해 보이나 봐요.
사실은요. 처음 윗 앞니를 뺄 때는 엄청 무서웠거든요. 소독약 냄새가 나는 치과에 갔었는데, 거기서 쇠로 된 집게를 입에 넣을 때 그 차가운 느낌도 너무 싫었어요. 세번 째 부터는 밥 먹 다가 툭 빠지기도 했고, 어쩔 땐 제가 손으로 잡아 당겨서 빼기도 했어요.
이번에는요, 쇼파에 앉아서 책을 읽는데 자꾸만 걸리적 거렸어요. 혀로 밀 때 마다 들썩거리는 게 꼭 장난감 같기도 했고요. 또 두두둑 소리가 나길래 손으로 슬쩍 밀어보았는데 혀 위로 이빨이 탁 떨어지는 거 있죠. 엄마한테 말하고 식탁위에 올려놓은 거즈를 물었어요. 아, 물론, 엄마가 해줬죠.
이빨 사이 구멍으로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게 신기했어요. 무엇보다 몇 일 동안 거슬리던 게 쏙 빠져버리니 더 시원했던 것 같아요.
제 손톱 만큼 작은 이빨을 손으로 꼭 쥐고 칫솔에 치약을 묻혀 깨끗이 닦았어요. 이빨요정님이 더러운 이빨은 가져가지 않을 것 같아서요. 배수구로 들어갈 까봐 바가지 안에 넣고 보석처럼 소중히 씻었어요. 그리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연두색 바탕에 주황색 꽃이 그려진 색종이로 꼭꼭 쌌어요.
이빨 요정님에게 드리는 편지도 제가 가장 아끼는 형광 볼펜으로 적었답니다.
요정님, 꼭 와주시기를 바랄게요.
아, 그리고, 이빨을 가져가시고 돈 대신 먹을거나 장난감을 주시기 바랄게요. 동전 보다 선물을 받으면 훨씬 좋을 것 같아요.
참, 이빨 요정님은 진짜로 있나요?
자꾸 엄마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죠.
진짜 오신거면, 여기 동그라미 안에 이름을 써주세요. OOO.
그럼 안녕히 계세요.
(5일 뒤)
이빨 요정님,
이번 주 내내 베개 밑을 몇 번이나 들춰봤는 지 몰라요. 왜 이렇게 안오시는 건가요?
제가 30키로가 넘어서 그런걸까요? 제가 너무 커서 말이에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빨 요정님도 더 어린 아가들을 먼저 찾아갈 것 같아요.
엄마한테 언제부터 이빨이 빠지기 시작하냐고 물어보니, 여섯 살 부터래요.
그럼, 여섯 살 아이들 이빨 먼저 바구니에 담느라 조금 늦게 오시는 거죠?
저는 열 살이니까, 조금 더 기다려 볼게요. 꼭 와주세요. 알겠죠?
안녕히 계세요.
(7일 뒤)
이빨 요정님!
역시, 오실 줄 알았어요. 사실은 잊고 있었는데, 저녁을 먹다가 엄마가 물어보더라고요. 이빨 요정 왔냐고요.
그래서 베개 밑을 보니, 세상에! 제가 좋아하던 젤리곰 모양 머리끈을 주셨네요. 방실방실 웃음이 계속 나왔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편지에 이름이 적혀 있지 않더라고요. 아마도 산타 할아버지 처럼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비밀로 하는거죠? 그 정도는 제가 이해해 드릴게요.
그나저나, 제 쌍둥이 동생 베개 밑에도 머리끈이 놓여 있더라고요?
동생은 자기도 선물을 받고 싶다며, 스티로폼 같은 걸로 이빨 모양을 만들어 넣어뒀는데 혹시 속으신 건가요?
다음부터 진짜 이빨인 지 잘 보고 가져가세요. 아시겠죠?
내일은 주황색, 보라색 곰젤리가 달린 머리끈으로 삐삐머리를 하고 갈거에요.
금요일이라, 아침에 엄마가 집에 있어서 머리를 예쁘게 묶을 수 있거든요. 벌써부터 기대 되요.
이빨 요정님, 보고 싶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첫 니가 빠졌을 때 부터 이빨 요정이 하얗고 깨끗한 이빨을 갖고 선물을 두고 간다고 얘기해 주었었습니다.
처음엔 칫솔을, 그 다음에는 치약을 베개 빝에 두었었구요. 이후에는 저도 좀 귀찮아 져서인지, 백원 짜리 동전을 놓았었답니다.
이번에 거의 오개월 정도 만에 이빨이 빠졌어요. 그런데 세상에, 편지의 수준이 아주 높아져 있지 뭐에요. 빈칸을 적어두고 이름을 적고 가라니 꽤나 당황스러웠습니다. 선물도 구체적으로 주문한 것을 보고 참 고민이 많아졌고요. (물론, 바쁘다는 핑계로 선물을 사지 못한 이유도 있었어요.)
결국 아이는, 자신이 열 살이라, 어린 아이들을 먼저 보고 오느라 늦는다는 결론을 내렸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더랩니다. 서점에 갈 때마다 곰젤리 머리끈을 만지작 거리길래, 그걸 선물로 구입했죠.
선물을 확인한 아이는 이빨 요정의 유무를 따지기 보다는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에 하트모양 입을 하고 마냥 기뻐했답니다.
다음 번 이빨이 빠질 때 즈음, 그때도 이빨요정을 믿을까요?
왠지 그럴 것 같은데요. 그때는 또 어떤 미션을 이빨요정님에게 줄지 벌써 고민이 깊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