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의 사무실에 찾아온 알록달록이들

by 리유


유독 바쁜 날이었다.

눈과, 손, 머리를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는 그런 날.


읽어봐야 할 서류들은 한 장, 한 장 책상 위에 쪼로로 쌓여갔다. 아웃룩의 새 메일함 숫자 역시 이에 질세라 올라가고 있었다. 오른쪽 머리가 콕콕 쑤셔오기 시작하는 게 만성 편두통이 오려는 분명했다.


다이어리에 적어놓은 일들을 테트리스처럼 쳐 내려는 계획을 마친 찰나, 나의 상사인 상무님이 부르셨다. 12시까지 자료를 완성해 달라신다. 상무님, 지금 아홉 시인데요. 이거 다른 부서에서 데이터들 받고 분석해서 보고서로 요약까지 하면 적어도 디섯 시간은 더 걸리는데요.라고 말하면, 절대 안 된다. 그냥 시작해야 한다.


눈을 깜빡이는 지, 침을 삼키는지, 숨을 쉬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일에 집중했다. 척추 3번과 4번 사이 디스크가 눌리는 듯한 느낌이 들 때면 허리를 왼쪽 오른쪽으로 들썩거려 주었다. 귀에서 삐 소리가 나면 하관 한번 벌려주고, 눈이 시려우면 인공눈물 몇 방울 떨어 뜨려 주었다.


이런 날은 점심도 먹지 못한다. 아니, 먹지 않는 게 낫다.

뱃속에 들어간 음식들이 턱 하고 위장에 내려와 그대로 굳어버리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느낌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후 1시가 넘어 간신히 보고를 마쳤다. 정수기 앞으로 가 얼음과 냉수를 주르륵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다. 얼음도 으작으작 씹어대니 좀 살 것 같았다. 이가 시릴 거란 건 알지만 당장의 스트레스 타파가 선이었다.


이제부터는 팀원 분들이 문의한 여러 질문에 답을 하고, 다른 부서에서 요청온 미팅들의 일정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나의 뇌 용량이 이미 소진되어 버린 듯했다. 한 글자도 읽고 싶지 않았다. 머리를, 눈을 좀 쉬게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숨 한번 크게 쉬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데, 앞자리에 앉은 차장님이 부르신다.


"팀장님."


속으로 외쳤다. 제발. 오늘은 더 이상 힘들 것 같아요. 내일 얘기하면 안될까요?라고.

그럴 순 없다. 양쪽 볼의 근육을 억지로 위로 끌어올리며 반쯤 감긴 눈으로 '네?'라고 답했다.


그런데, 차장님은 말씀은 하지 않고, 내 앞에 무언가를 내미셨다.

하얀색 작은 종이박스 안에 들어있는 색색깔의 귀염진 녀석들이 눈에 들어온다.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의 송편들이 오동통한 모습을 하고 쪼로록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반달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와, 이게 뭐예요?"

"다른 부문에서 월례회의 하느라 샀는데, 지난번에 우리 팀에서 도와준 게 고맙다고 책상에 놓고 갔어요."


"우와~ 고맙네요. 너무 예뻐요!"

"이것 좀 드시면서 한숨 돌리세요. 점심도 못 드셨잖아요."



순간, 하루 종일 칙칙했던 책상 주위의 공기가, 나의 기분이 화사하게 바뀌었다. 색색깔의 귀요미들, 그리고 작은 마음과 말 한마디 덕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회사는 온통 회색, 검은색, 흰색 등 물건들의 색깔이 무채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들의 표정 또한 그리 다채롭지 않다. 엄청 신나는 일도, 즐거운 일도 드물다.

그래서일까.


예쁜 색의 작은 물건 하나가, 다정한 말 한마디가, 따스한 마음이, 평소 그것들이 가진 것보다 더 큰 힘을 낸다.





빨강과 노랑 사이에 낑겨있는 파스텔 주황색의 송편 하나를 집었다. 한입 베어 물으니 고소한 깨와 달콤한 꿀이 입안을 감싼다. 따뜻한 녹차를 호로록 거리며 곁들이니 금세 행복이라는 단어가 고개를 내민다.


하늘색 송편을 하나 더 집어 입에넣고 우물거리며 생각해 본다.


앞으로는 힘들다고, 어렵다고 쭈그러져있지 말아야겠다.

그때의 공기와 감정을 톡 하도 바꿔줄 아주 작은 걸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누군가 조금 지쳐 보이면 따순 마음이라도 전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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