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부터 말했다.
"내일이 월요일이라니, 정말 충격적이야."라고.
정말 그렇다.
월요일은 학교에 가는 날이 시작된다. 학원과 숙제도 세트로 따라온다. 아침에는 물한 모금도 삼키기 힘든데 밥알을 넣어서 꿀꺽 씹어야 한다. 옷 입기, 양말 신기, 치카하기를 번개처럼 마쳐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싫은 건, 자고 일어났을 때 침대 위에 엄마는 없고 이불만 덩그러니 엉켜있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오늘은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다.
내가 엄마와 아빠 다음으로 좋아하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우리를 돌봐 주기 위해 집에 오신다는 점이다.
학교 수업이 끝났다. 학교에서 즐거운 일이 있었다. 점심에 나의 최애 반찬인 닭강정이 나왔다는 것이다. 동생과 몇 개씩 먹었는지 얘기하면서 집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안아주었다. 말랑말랑한 할머니 뱃살에 얼굴을 푹 파묻으니 '음~ 할머니 냄새 좋아~'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할머니 만의 향긋한 향기를 맡으면 하얀 깃털 속에 누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할아버지가 약속통장인 수학 문제집 풀기와 영어 책 읽기를 마치면 보드게임을 같이 해주신다고 했다. 평소에는 하기 싫어서 책을 읽거나 소파에서 뒹굴거렸었다. 하지만 오늘은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거다. '와, 우리 아가들,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혼자서도 척척 잘하네, 대단하다.'라고 칭찬받을 때면 괜스레 어깨가 더 으쓱 거려 지기 때문이다.
약속통장과 샤워까지 마치고, 할아버지와 할 때 제일 재미있는 숫자 보드게임, 고스톱을 쳤다. 할아버지는 이기면 좀 잘난 척을 해서 얄밉지만, 뿅뿅, 으라차차, 으쌰 와 같은 소리를 내는 모습이 재미있다. 계속 웃는 표정을 지으시니, 나도 같이 웃게 되기도 한다.
즐거웠다. 모든 게 다 좋았다.
할머니가 저녁을 준비하시는 동안 무얼 할까 하다, 빨간 머리 앤 책을 집어 들고 엄마 침대 위로 올라갔다. 푹신한 이불을 몸으로 누르니 엄마 냄새가 포옥하고 났다.
갑자기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엄마를 안고 싶어졌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환하게 웃으며 안아주는 사람이 엄마였으면 좋겠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늘도 즐거웠냐고 물어봐 주면 좋겠다. 3학년 2학기가 되어서 그랬던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식탁 위에는 내가 좋아하는 감이 놓여 있었고, 함께 식탁에 앉아 자랑하고 싶은 일들을 이야기했었다. 내가 말을 마칠 때마다 엄마는 '그랬어? 잘했다.'라고 맞장구쳐 주었고, 나는 하늘을 동동 걸어 다니는 느낌이 들었었다.
엄마가 벗어놓고 간 잠옷을 꼬옥 쥐었다. 코가 간질거려졌다. 눈가랑 눈썹이 뜨거워졌다.
이상하다. 오늘은 학교에서 닭강정도 나오고 할머니도 오시고, 다른 월요일보다 더 행복한 날인데, 엄마가 훨씬 더 많이 보고 싶었다.
띠띠 띠띠띠.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다. 드디어 엄마가 왔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엄마 잠옷을 손에 쥔 채 달려 나갔다. 팔을 팔랑팔랑 거리며 다가가 엄마를 꼬옥 안았다. 엄마 품에 부비부비 하니 마음이 구름처럼 가벼워졌다.
갑자기 신난다. 엄마가 옷을 갈아입고 샤워하고 나올 때까지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렸다. 아까 읽으려고 했던 책장을 넘기면서 문을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문을 열고 나온 엄마는 어두운 곳에서 앉아 있던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왜 여기 앉아 있냐고 묻길래, 엄마가 너무 좋다고 말해버렸다. 배시시 웃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고 지나간다.
또 엄마를 쫓아갔다. 졸졸졸 멍뭉이처럼. 머리를 다 말릴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다 시계를 보니 벌써 여덟 시였다. 속상했다. 이제 두 시간 뒤면 자야 한다.
입이 삐죽 나온 채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아까 울었어."
"응?"
"침대에서 울었어. 엄마 보고 싶어서."
"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냥 갑자기 눈물이 났어."
"에구.."
"엄마랑 하루에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 엄마랑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어."
"..."
엄마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엄마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쏙 들어가 있었다. 울먹이는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조금 뒤, 엄마가 내 양 볼을 쓰다듬더니 말한다.
"그렇지? 엄마도 그래. 시간이 짧은 대신 더 알차게 쓰자. 엄마가 계속 붙어서 얘기도 듣고 책도 읽고 그러자.
다른 거 하나도 안 하고 옆에 찰싹 붙어있을게. 어때?"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엄마랑 계속 붙어 있는다니 최고다. 엄마의 갈색 눈동자에 비친 내 얼굴이 환하게 웃는다. 엄마의 눈도 반달이 되어 함께 웃는다.
나는 엄마랑 같이 있는 게 좋다.
내가 제일 갖고 싶어 하는 핸드폰 열 개 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엄마가 있는 선물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거짓말 아니다. 진짜다.
엄마가 정말 좋다.
엄마는 한 번씩 왜 그렇게 엄마가 좋냐고 묻는다.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 그때마다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냥 내 엄마니까. 나를 낳아줬으니까.라고.
평일에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두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복직할 때부터의 미안함은 7년이 지나도록 작아지기는커녕, 해가 거듭날수록 복리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함께 있는 시간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말하고는 합니다. 맞는 사실인 지 모르겠습니다. 회사에서 일에 치여 피곤한 몸으로 집에 가면 아이들과 양질의 시간을 보내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도 생계를 위해, 내가 나름 잘하고 돈도 벌 수 있는 일을 꾸역꾸역 이어는 가고 있습니다. 버티고 있는 거라고 해야 할까요.
수년이 지났음에도, 아이들은 한 번씩 새벽에 같이 일어나 현관문을 나가는 저를 보며 울먹입니다. 물론, 어떤 날은 '엄마, 회사 안 가?' 하고 저를 먼저 깨울 때도 있지만요^^
매일 밤에 보는데도, 제가 없는 시간 동안 문득문득 저를 보고 싶어 하고, 안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고맙기도, 안쓰럽기도 합니다.
퇴근 후 집에 가면 그리웠덩 마음들을 전하곤 했는데, 그때 아이들이 했던 말과 모습들을 떠올리며 글로 적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쓰다 보니 더 마음이 아려오는 건 당연한 거겠죠?
이른 아침에 도착해 사무실에 앉아 있는 지금, 아직 침대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을 아이들이 푹 잘 자고, 따뜻한 아침도 맛있게 잘 먹고, 씩씩하게 학교로 출발하기를 바라봅니다. 저도 오늘 제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해 내고 칼퇴근할 거예요.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저를 향해 달려오는 두 아이들을 품에 안아줄 거예요. 오늘 웃겼던 일, 자랑스러웠던 일을 쫑알쫑알 이야기하는 아이들 모습을 떠올리니 괜히 웃음이 납니다.
그나저나 오늘 수학 숙제는 좀 덜 어려웠으면 좋겠네요. 그 짧은 시간에 화까지 내면 속상함과 아쉬움이 너무 오래가더라고요. 만약 아이가 좀 징징거리면 꾹 참고 억지로 웃어보렵니다.
*사진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