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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Dec 15. 2023

아이의 달콤한 숨향기


딸깍. 시곗바늘이 숫자 10을 가리킨다. 

타닥. 거실과 부엌의 형광등이 꺼진다. 

밝은 빛을 내는 공간은 단 한 곳, 코잠 방이다.


바닥에 엎드려 책을 들척이던 열 살짜리 한 아이는 작은 미간 사이에 온 힘을 다해 주름을 잡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식탁에 앉아 있던 다른 한 아이도 손에 들고 있던 분홍색 색연필을 내려놓으며 빠알간 작은 입술을 삐죽 내민다. 자신이 그려낸 공주님의 치마에 색을 입혀주려던 차였다. 


아이들은 빛을 따라 터덜 터덜 발걸음을 옮겨 방으로 들어오더니, 금세 하얗고 말간 얼굴에 환한 웃음을 피어낸다. 온전히 엄마 품에 안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다. 






코잠 방에는 흰색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붙어 놓여있다. 침대 아래쪽에는 갖가지 동물 인형들이 올망졸망 줄지어 앉아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듯 하다. 시선을 위로 돌리면 군데군데 해어진 분홍색 애착이불이 삐뚤빼뚤 접혀 있다. 추워진 날씨에 이불로 덮지 못하니 볼에라도 대고 자겠다며 아이들 손으로 접어둔 것이다.


엄마는 두 침대의 가운데에 앉아, 둘째 아이가 들고 온 두 권의 책을 손으로 받아든다. 코잠방의 불을 끄고 수면등을 머리맡으로 옮긴다. 방의 형광등까지 어두워 지고 나니 집안에는 엄마와 아이들을 비추는 노르스름한 따스한 불빛만 남았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아침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새벽부터 나가 일을 하고 돌아왔다. 그래서 매일 밤 이 순간을, 이 충만한 감정을 기다린다. 고요함과 불빛 속에서 아이들을 마음껏 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책을 들고 온 아이는 엄마 어깨와 푹신한 베개 사이에서 꿈틀대다 편안한 자리를 잡는다. 책 읽기보다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또 다른 아이는 엄마의 반대쪽을 향해 휙 하고 돌아 눕는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단단히 삐친 것이다. 엄마는 늘 있던 일이라는 듯 풉 하고 웃는다. 아이를 향해 팔을 뻗어 보드라운 머리칼을 한 번 쓰다듬더니 손을 꼬옥 잡고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엄마에게 기대어 있는 아이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자신의 생각을 쫑알쫑알 거든다. 저 멀리 누워있던 아이도 슬금슬금 엄마 옆으로 와 책을 바라본다. '엄마랑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무서워.'라고 속삭이면서. 

평소 엄마 팔을 감싸고 눕던 아이가, 팔베개를 청하며 파고들기까지 한다.


책을 반 즈음 읽었을까. 어느새 어깨와 팔이 묵직해진다. 

책 읽기를 멈추니 새근새근 일정해진 숨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본다. 눈앞에 작은 아이 둘이 눈을 감고 잠들어 있다. 아이들의 코에서 나오는 따스한 바람이 엄마의 볼을 스친다. 엄마는 묵직해진 아이들의 머리를 조심히 들어 애착 이불 위에 가만해 내려놓는다. 아이의 볼과 이마를 이리저리 쓰다듬어 본다. 보드랍다. 아기 때랑 똑같다.


 


갑자기 아이가 아가일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두 살 정도 즈음이었을까. 아기가 엄마의 품에 안겨 잠들었을 때, 내쉬는 숨이 신기했다. 처음 맡아보는 향이었다. 달콤하면서도 포근했고 따뜻했다. 아기를 돌보느라 노곤해진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듯했다. 자그마한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 숨향기를 맡으며 함께 잠들곤 했었다.

 

어느새 6년이 지났다. 해가 바뀔수록, 아이의 키가 커갈수록 잊혀지고 있던 기억들이었다. 


엄마는 노오란 수면 등 사이로 비치는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잠들 때까지 꼬옥 잡고 있던 아이의 손을 자신의 손바닥 위에 포개어 본다. 그리고 속으로 되뇐다. 



언제 이리 컸을까. 내 아가.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나 으엥 으엥 울던 내 아가. 

매일 품에 안겨 땀이 촉촉해져 잠들던 내 아가. 

엄마랑 헤어지기 싫어 어린이집 앞에서 울고 불고 하던 내 아가. 

엄마 회사가지 말라고 새벽마다 걸어 나와 현관에서 울던 내아가. 

이제는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어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내 아가. 

몸도, 마음도 자라나고 있는 내 아가...



어느새 엄마 눈에는 눈물이 촉촉이 차오른다. 

바르게 키운다고, 공부습관 만든다고, 소리치고 혼내는 자신의 모습들이 스친다. 

엄마의 잔소리가 싫어 쿵쿵대며 방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마음이 보인다. 


이렇게 엄마 품이 그리운 아가인데, 이렇게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러운 아가인데, 숨소리 만으로도 감동이었던 내 아가의 모습을 자꾸 잊고 지내는 건 아니었을까..


엄마는 따뜻한 손으로 아이의 발을 가만히 감싸본다. 밤새 추울까 수면양말을 신긴다. 폭신하고 하얀 이불도 덮어준다. 아이의 볼에, 이마에 입을 맞추고 침대에 몸을 눕힌다. 


눈을 감고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아가일 때의 신비로움을, 소중함을, 감사함을.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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