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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Dec 01. 2023

엄마들의 내리사랑


퇴근 길,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사랑하는 엄마♡' 라고 적혀있었다.

운전 중이었기에 차가 멈출 때 까지 기다리느라 조금 늦게 전화를 받았다. 이내 엄마의 반가워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야?'

'응, 지금 톨게이트 들어섰어. 5시 50분쯤 도착할 것 같은데?'

'오, 그래? 잘됐다. 그럼 잠깐 집에 들를 수 있어?'

'.. 어? 으..응! 알았어. 집까지 가는데 차 많이 밀리진 않겠지?'



사실 들르기 싫었다.

최근 급격히 늘어난 차량으로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출퇴근 운전으로 도로에서 하루에 4시간씩 보내는 요즘이었다. 허리의 욱신거림은 물론 무릎까지 찌릿거리니 집에 가서 씻고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엄마 오기만을 기다리는 10살짜리 내 아이들을 1분이라도 빨리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밝게 대답했다. 엄마가 자신의 딸에게 먹일 거리를 준비한 게 분명할 테니까.





엄마 집 앞에 차를 주차하고 거울을 들여다봤다. 눈 밑에 번진 마스카라를 집게손가락으로 스윽 닦아내고 입술에 빨간 립밤도 발라주었다. 피곤에 절은 딸의 모습을 보면 또 걱정이 한가득일 테니까 말이다.

현관 앞에 서서 양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고 문을 열었다.


들어서자마자 구수한 수육 냄새가 후각을 감쌌다.

고춧가루가 묻은 고무장갑을 낀 채 복도 쪽으로 걸어 나오시는 걸 보니, 뭔가 버무리고 계셨나 보다. 운전하고 오느라 고생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와서 다행이다 라며 환한 미소로 반기셨다.


김장을 하셨단다. 마침 아빠가 회사에 휴가를 내서 김치 절이고 풀 쑤고 양념 만드는 것까지 함께 하셨단다. 방금 담근 김장 김치를, 갖은 야채 넣고 푸욱 끓인 수육과 함께 딸에게 주고 싶으셨던 거다.

70세의 몸으로 에구 허리야, 에구 무릎아 하시며 두 분이 종일 고생하셨을 걸 생각하니, 집에 들르기 싫어한 잠시의 내 생각을 두더지 망치로 팡팡 두드려 숨겨버리고만 싶었다.


부엌 안쪽으로 들어가니, 된장 푼 물속에서 수육 두 덩이가 펄펄 끓여지고 있었다. 냄새가 어찌나 꼬숩던지, 주린 배가 꿈틀대었다. 그 모습을 눈치채셨던 걸까. 몇 점 썰어볼까? 하시더니 한 덩이를 꺼내 칼로 쓱쓱 자르신다. 딱 열 조각만.

TV를 보고 계신 아빠를 불러 식탁 앞에 셋이 둘러 섰다. 갓 김장김치를 꺼내어 아빠 세 점, 엄마 세 점씩 드시고, 나머지는 죄다 내 입에 넣어주셨다. 나머지는 모두 싸주실 꺼란다. 애들이랑 남편이랑 같이 먹으란다.

엄마 아빠껀 없냐고 물으니, 집에 수육이 이것밖에 없었단다. 당신들은 또 사서 해 먹으면 된다며, 너는 일하고 퇴근해서 언제 이거 삶고 할 시간 있냐고 하시며 말이다.


꿀맛이었다. 고기인데 단 맛이 났다. 하루종일이라고 운전하느라 뭉쳐있던 근육들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

그렇게 엄마의 마음을, 사랑을 양껏 받고 집을 나섰다.

한 손에는 수육을, 한 손에는 김장김치를 가득 들고 계단으로 내려가려는 찰나, 엄마가 현관 앞에서 외치신다.


"넘어질라~ 조심히 내려가~"






다음 날, 회사에서 내가 애정하는 차장님과 마주 앉아 점심을 먹을 때였다.


당신 딸이 면접 본 이야기를 하셨다.

전 날 첫째 딸 입사 면접에 데려다주고 오신다며 휴가까지 내셨었다. 디자인 전공을 한 따님은 면접 전까지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 제출까지 서너 개의 자료를 작성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면접에서는 자료에 대한 질문은 하나도 하지 않았으며, 인신 공격하는 듯한 류의 불쾌한 질문들을 받고 왔다고 한다.

면접을 마치고 따님과 마주 앉아 점심을 먹는데,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는 딸과는 달리, 정작 차장님 본인은 밥 한 톨 넘기기가 힘드셨다고 한다. 몇 주 동안 고생한 딸이 안쓰러워서, 면접자리에서 난감한 질문들을 받고 힘들어했을 딸의 모습이 떠올라 화가 나고 속상해서 말이다.

따님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4시간 동안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고 한다. 그 사이 차장님은 한숨도 못 자고 맘고생 했을 딸이 안쓰러워 몸보신할만한 저녁거리를 만드셨다고 한다.



문득 어제 엄마가 딸을 생각하며 건네준 김장 김치, 먹고 싶은 걸 참으며 내 손에 쥐어준 수육, 계단을 내려갈 때까지 넘어질까 걱정하시는 모습들이 스쳤다.


차장님께 어제 엄마와 있었던 일들을 전하며 말했다.  

"에휴.. 엄마들의 걱정은 정말 끝이 없네요. 언제까지 이렇게 자식 걱정을 하실까요?"


그랬더니 차장님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씀하셨다.

"아마 살아가는 내내 하지 않을까요? "





하하. 맞다. 그럴 것 같다.

우리 엄마가 마흔 살을 갓 넘긴 나를 걱정하시는 것처럼.

차장님이 스무살이 훌쩍 넘은 따님을 걱정하시는 것처럼.

그리고, 내가 열 살짜리 두 딸들을 걱정하는 것처럼.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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