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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Sep 01. 2023

엄마, 사랑해. 고마워

부끄러워서 말로는 잘 못하지만


엄마가 해준 밥이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든든해지는 미역국, 콩과 현미가 가득한 건강밥, 브로콜리, 양파, 당근 등 갖은 야채가 들어간 새우볶음, 청양고추를 넣은 칼칼한 가지볶음, 방금 꺼낸 파김치, 배추김치. 호박전까지.


참으로 오랜만이다.

엄마가 해준 밥을 엄마와 둘이 마주 앉아 먹는 게.


엄마는 딸내미가 반찬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기도 전에, '맛있지?'라고 물으신다. 한 가지라도 안 먹고 있으면, 이것도 맛있다며 그릇을 번갈아가며 딸 앞으로 옮겨 놓는다. 오물오물 먹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마흔 살 다 된 딸자식인데도, 이리도 예뻐 보이는 걸까? 챙겨 주고 싶은 걸까?


둘이 있을 때 하는 얘기는 거기서 거기다.

내 아이들이 했던 순수하고 웃긴 말들, 딸의 남편, 엄마의 남편에 대한 걱정거리들. 그리고, 엄마 아빠 덕분에 잘 다니고 있는 딸의 회사 일 이야기.



최근 맡은 프로젝트에서 좋은 성과가 있었다. 사실, 승진을 하거나, 고과를 잘 받게 되면 그 어디에도 말하지 않는다. 엄마한테만 말한다. 당신이 낳은 딸 이렇게 잘하고 있어요.라고 알리기 위해 더 자세히 전한다. 이번 일 역시 엄마의 딸내미 자랑스러워하라고 약간의 과장을 더해 주절주절 말하다 보니, 엄마 눈빛이 저 옛날로 돌아가는 듯하다. 아마도, 본인이 키운 딸자식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는 게 아닐까.


참 속 많이 썩였다. 중학생 시절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었고, 고등학교와 대학교 입학, 취업까지 뭐 하나 쉽게 지나간 게 없었다. 그 마음을 읽은 딸은 겸연쩍게 웃으며 한 마디 던졌다.



"참, 신기해.. 어렸을 적 그 찌질이가, 어떻게 이런 회사에서 여태까지 잘 다니고 있는지. 그렇지?"

"그러게."


"내가, 엄마 아빠한테 받은 머리는 있었나 봐(엄마 치켜세우기 전략), 안 해서 그렇지. 그땐 왜 그랬을까?"

"그러게.."


"엄마, 그때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렇지, 아빠한테 너 혼날까 봐 말도 못 하고. 그랬지."


"그래도 엄마한테 혼났던 기억은 없는 것 같아."

"그치, 혼내진 않았지."


"아무튼, 엄마 대단햐.... 히히"

"자식 키워보면 안다더니 이제 좀 알겠남?"


"우리 애들은 잘할 거야. 흐흐"

"아직 멀었어. 아직 초등학생인데."






집을 나서며, 두 팔 벌려 엄마를 꼬옥 안았다. '에너지 충전'이라고도 말했다.

건강만 하라는 엄마의 말씀에, 알았다고, 엄마밥 먹고 엄마 냄새까지 안고 가니 일주일 거뜬하게 지낼 것 같다고 답했다.  

빗길 조심히 운전해서 가라는 염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계단을 걸어 1층으로 내려갔다. 미역국과 김장 배추김치가 담긴 봉지를 손에 들고.


엄마는 아마도 내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현관 앞에 서 계실 게 분명하다. 2주, 혹은 3주에 한 번씩은 온다. 그래도 엄마에게는 딸이 집을 나서는 매 순간이 걱정이고, 그리움인가 보다.


결혼해서 가정 꾸리느라, 돈 버느라, 내 자식들 보느라, 정작 엄마는 살뜰하게 챙기지 못했다. 지금도 못하고 있다. 사실, 내 삶의 면만 보느라, 엄마가 보내는 애정을 등 뒤에 가만히 쌓아놓고 있기만 했다.


오늘부터 그 사랑을 하나씩, 하나씩 들춰봐야겠다. 그리고 온전히 느껴봐야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앞 유리창에 토독토독 떨어지는 빗방울을 가만히 바라보다 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엄마, 부끄러워서 말로는 잘 못하지만,

사랑해.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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