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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Sep 26. 2023

아빠의 목소리

사랑하는 내 딸아




언제부터인가, 아빠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양쪽 입꼬리가 기분 좋게 살짝 올라간다.

"응, OO아!" 라고 내 이름을 담는 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물론 그 뒤에 이어지는 말들은 여전히 딱딱하고 짧게 이어지지만 말이다.




자라오는 내내, 결혼하기 전까지, 아니, 아이를 낳기 전까지도 나에게 아빠의 목소리는 굵고 낮고 크고 단호했다.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했고, 늘 혼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당시에는 좀 더 다정하고 친근한 아빠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늘 따라다녔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아빠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할아버지 또한 그리 자상한 분은 아니셨다. 시골 동네에서 작은 문방구를 운영하셨는데 손님들에게도 계산할 때만 입을 여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할머니는 더하셨다. 늘 양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고 나오는 대부분의 말들이 뭐 해라, 왜 그랬냐 등의 만족하지 않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빠가 학생일 적에 시험에서 한 개라도 틀리는 날에는 아무 말 없이 회초리 행이었다고 말씀하셨던 같기도 하다. 그 정도로 삼엄한 환경에서 자라오신 것이다.


결혼하고 나서 곧 나와 동생을 낳았고, 그 시절 여느 아버지와 같이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주말 없이 회사로 출근하셨다. 30년 회사 생활을 하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강하고 간결하게 말해야 했을 것이다. 자식을 잘 키워야 겠다는 생각에 더 엄격하게 대한 것일 수도, 다정하게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하셔서 일수도 있다.


어쩌면 어린 나에게 엄한 목소리를 내고, 그날 밤 침대에 누워 후회하셨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내 자식들에게 화를 내고는 이불을 뒤척였던 것처럼 말이다.  





내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내 아빠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OO야~ 할아버지야. 오르르 까꿍." 이라는 말과 함께.


어느새 여덟 살이 된 자신의 손녀들 앞에서는 인자한 미소가 늘 장착되어 있다. 그리고,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친근한 어조로 말을 건넨다. 마치 자신의 딸에게 하지 못했던 것을 대신하듯이.






지금의 나는, 아빠의 그 굵고 낮은 목소리가 좋다.

'OO아.' 라고 내 이름을 부를 때면, '사랑하는 내 딸아.' 라고 말하시는 듯하다. 그 마음이 들린다.



오늘 퇴근길에는 아빠에게 전화 한 번 걸어볼까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젓는다.

'그냥 걸었어.' 류의 전화는 아직 많이, 엄청 많이 어색하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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