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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Sep 20. 2023

할머니, 할아버지의 두 손

이리와, 거기있지? 같이가자.


오전 내내 노트북 화면에 눈을 박고 일을 한 후였다.

점심시간에라도 좀 걸어보자 싶어 밖으로 나가 문구점을 향해 발길을 옮기던 중, 저 앞에 다정하게 걸어가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눈에 들어온다.




한 팔십 정도 되셨을까.

두 분 모두 아래로 살짝 굽은 등에, 무릎이 불편하신 지 곧게 펴지 못하시고 좁은 보폭으로 힘겹게 걸음을 옮기신다. 할머니는 염색과 파마코스를 한 지 얼마 안 된 듯한 빠글빠글한 까만 머리를 하고, 천으로 된 까만 가방을 어깨에 메셨다. 검은색 바탕에 화려한 잔꽃무늬가 놓인 셔츠가 정답게 다가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조금 더 거동이 불편하신 듯하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새하얀 셔츠가 마치 한 세트처럼 보인다. 한 손에 농협 그릇세트가 들린 걸 보니, 두 분이 은행에 다녀오시나 보다.


두 분을 멀리서 바라보다, 문득 사이에 놓인 손이 보인다. 굵어진 마디와 깊게 파인 주름으로 가득한 손이 서로를 향해있다. 손바닥을 오므렸다 펼쳤다 하며 서로 닿았다 떨어졌다를 반복한다. 한 동안 손이 닿지 않으면, 할머니가 손바닥을 오므려 본인 쪽으로 오라는 듯 손짓을 한다. 그럼 신기하게도 할아버지가 얼른 할머니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다시 손을 스친다. 분명 손은 아래로 향해있기에 보이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두 분은 아무 말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앞으로 걸어가고 계셨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서로의 손이 두 분의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리 와, 거기 있지? 같이 가자.'라고 말이다. 어쩌면 함께한 세월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의 말들일지도 모르겠다.  


 



짧은 점심시간, 뜻밖의 따수운 장면을 선물 받았다.

자리로 돌아와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다 두 분의 다정한 모습이 떠올라 몇 번이나 미소를 지었는지 모른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 남편 손 한번 잡아줘 봐야겠다.

예전의 애틋함 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월을 함께해 오며 다져온 전우애라도 좀 전해줘야겠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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