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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Sep 02. 2023

그대 뭘 망설이는가

적재 '그대' 를 듣다가


새벽 5시 50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차로 걸어가는 길, 밤새 내린 비 때문일까. 물에 젖은 나뭇잎과 흙냄새가 온몸을 감싼다. 흙 묻은 신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바작바작 소리를 낸다. 일찍 잠에서 깬 새들이 짹짹 노래를 부른다. 마치 작은 숲 속 공간에 나만 존재하는 듯하다.


딸깍. 차 문을 열고 시동을 켠다. 부르릉. 발로 브레이크를 풀고 드라이브 버튼을 누른다. 내비게이션 화면에 지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엑셀레이터를 살짝 밟으니 차가 앞으로 밀려나간다. 가을과 함께 온 쌀쌀함 때문일까. 뿌예진 앞 유리창을 와이퍼로 쓱 닦아낸다.


갑자기 기타 소리가 울려 퍼진다. 뭐지.

아, 어제 퇴근길에 듣던 음악이 자동 재생 되고 있구나.



적재의 "그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는 꽤 긴 시간 동안 반주가 계속되었다. 잔잔한 기타 소리와 처음 듣는 음률에 귀가 기울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첫 가사.


"그대, 뭘 망설이는가."


와, 좋다.


하고 싶은 건 많지만, 주저하고 있던 내게 망설임이라는 단어가 가만히 내려앉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차들의 옆을 지나며 귓가에 울리는 나긋한 목소리와 잔잔한 기타 소리에 집중해 본다. 반복 재생으로 다섯 번쯤 들었을까. 잘 들리지 않는 가사 한마디가 있었다. 차가 빨간 신호등에 멈추자 얼른 가사 버튼을 눌러본다.  


"하루하루 모든 게 고요하게 이루어질 테니까."


와. 정말 좋다.


전체 가사도 눈으로 담아본다.



그대 뭘 망설이는가

무엇을 위해 매일 눈을 뜨는가

왜 찾아 헤매는가

어디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나

외롭고 긴 긴 밤들도 언젠간 다 지나가

괴롭고 슬픈 날들도 결국엔 다 흘러가

괜한 걱정은 하지 마

오늘만 더 슬퍼질 뿐이야

왜 두려워하는가

누구에게 날 설명하려 하는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도 우린 그곳을 향해 걸어가

누구도 손 내밀어주는 이 하나 없어도 우린 괜찮아

괜한 걱정은 하지 마

오늘을 또 살아갈 뿐이야


하루하루 모든 게 고요하게 이뤄질 테니까.


그대 뭘 망설이는가




하고 싶지만, 그래서 하고 있지만 잘 되지 않는 일, 주변에서 알아주지도 않지만 꾸준히 해 나가는 모습, 의지, 응원까지 담고 있다니.

꼭 책이 아니어도, 이렇게 가사와 그에 어울리는 반주, 그리고 목소리로도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는 가만히 떠올려 본다.

나는 뭘 망설이는 거지. 일단 하면 될 텐데. 하기만 하면 고요하게 이뤄질 텐데.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스무 번은 넘게 들었다. 아마 퇴근길에도 또 들을 것 같다.

회사 주차장에 도착해 차 시동을 끄며 굳게 다짐했다.


적재 콘서트에 꼭 갈 거다.


팬 됐어요. 완전.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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