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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Aug 11. 2023

우리 엄마와 남편의 엄마

며느리를 대하는 자세


남편은 식탁, 나는 그 옆 작은 방 테이블 위.

각자 뭔가를 먹고, 일을 하고 있던 날의 대화다.




나: 이번 주말에 철수 온다네? (나의 남동생, 가명)

남편: 어, 그래? 그럼 다 같이 밥 먹으면 되겠네? 다 오는 거지?(네 살짜리 딸아이 은솔이, 와이프 정이, 철수. 이렇게 세 식구다)

나: 아니, 아마 철수랑 은솔이만 올걸?

남편: 왜? 정이씨는 왜 안 온대?

나: 아, 뭐 개인 약속이 있나 봐, 최근 몇 번 철수 올 때마다 정이는 안 왔었어.

남편: 어머님이 뭐라고 안 하셔?

나: 응? 왜? 그게 어때서?

남편: 아마 뭐라고 하실걸?

나: 전혀.


남편: 그럼, 내가 우리 애들 둘 데리고 우리 엄마집에 다녀와도 돼? 나는, 그러고 싶어도 자기 흉 잡힐까 봐 그렇게 못하는데.

나: 내가 여기서 무슨 대답을 해야 해. 두 시어머니의 생각 차이인거지. 우리 엄마는 괜찮지만, 오빠 엄마는 괜찮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게 흉이 되는거고, 심지어 오빠도 똑같이 생각하니까. 다른 얘기 하자. 대화가 어떻게 이어질 지 오빠도 알잖아..

남편: ...





정이의 시어머니인 우리 엄마와,

나의 시어머니인 남편의 엄마는,

많이 다르다.


정이의 시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자식을 데리고 둘만 왔을 때, 정이는 무슨 일이 있는 지도 묻지도 않으신다. 엄마가 잘 쉬어야 아이도 편안하게 잘 큰다고 매번 말씀하신다. 주중에 회사 다니랴, 애 보랴 힘드니 주말에라도 볼일을 봐야지 않냐라고 하신 적도 있다. 일복이 많은 남편을 둔 덕에 주중엔 아이 하원부터 재우기까지 모든 것을 도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똑 부러지게 잘하고 있다,


나의 시어머니는 나의 남편이 아이 둘을 데리고 셋만 왔을 때, 며느리는 왜 등장하지 않았는지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으실 게 분명하다. 자영업을 하는 남편을 둔 덕에 주중엔 퇴근 후 아이들 잠들 때까지 도맡으며, 주말에도 독박육아를 하는 나의 힘듦을 알아주시기나 할까.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남편도 며느리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시어머니를  찾아가는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그저 입을 닫고만 만다.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왔으니 남편에게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것 자체가 소모적인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누군가의 생각과 말은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 아주 깊게. 어머님의 생각이 남편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듯이.

20대 후반에 결혼해 어느덧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남편의 엄마와 남편의 아내 사이의 간극은 종이 한 겹을 사이에 두고 점점 어두어지기만 하고 있다. 때때로 남편의 엄마로 인해 감정이 힘든 상황이 찾아왔고 그것들이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고 어서 떠나가라고 밀어내어 보면 괜찮아지는 순간이 온다. 싫은 걸 좋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강고한 성격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남편의 엄마인데, 기왕이면 잘 지내면 좋겠는데, 아쉽다. 많이 아쉽다.



내일, 우리 엄마 집에 철수와 그 딸아이 온다.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온  나는 속으로 꾹꾹 세 글자를 새길 것이다.


부럽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그래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정이가 마음속 깊이 부럽다.

정이에게 있는 특유의 살가움과 그걸 온전히 받아주는 시어머니가 부럽다.

극복하기에는 너무 깊어져 버린, 노력해봤자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확실한,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그 따스한 관계가 부럽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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