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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Jul 30. 2023

글씨 쓰기에 대한 회고

교보 손글씨 대회 도전기


생각해 보면 글씨 쓰기에 대한 인연은 쭉 이어져 왔다.

지금도 글씨로 뭐라도 해 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늘 담겨져 있다.  






 

#1

유치원 시절 재롱잔치에서 가족들의 작품을 전시한 적이 있었다. 아빠는 우리 가족 이름에서 한 자씩 따서 가로세로 약 30센티가 넘는 한자를 붓글씨로 적어 출품했었다. (이 작품(?)은 액자 안에 보물처럼 담겨 지금도 부모님 댁 가장 잘 보이는 곳이 걸려있다.) 그 정도로 아빠는 한글, 한자 모두 그럴싸하게 쓰셨고, 흰 종이 위에 정갈하게 적히는 아빠의 글씨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초등학교 4학년에 서예부에 들어갔고 5학년부터 중학교 3년 내내, 종합하면 약 5년간 반에서 서기 역할을 맡았었다. 당시 학교 글씨 쓰기 대회에서 우수상도 얻었었다.  


이후 수험생, 취준생 시절에는 글씨 쓰기에 관심을 둘 여유가 1도 없었다.



#2

회사에서 운 좋게 인사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주변의 영향을 받아 책을 읽기 시작했고, 기억하고 싶은 문구들을 포스트잍에 적어 사무실 책상 위에 붙여두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총무팀 팀장님이 오더니 조심스레 한 가지 부탁을 하셨다. 사장님께 보내는 명절 선물에 동봉할 카드에 글씨를 좀 써달라는 것이었다. 오다가다 내 글씨를 눈여겨보셨나.

그렇게 사장 퇴임이 있기 전까지 약 7년 간 구정, 추석 때마다 카드 위에 글씨를 썼다. 총무팀에서는 카드와 펜을 매번 주었고, 카드는 가져갔지만, 펜은 내 연필꽂이에 차곡 차곡 채워졌다.

어느 날은 옹기종기 붙어 있는 까만색 펜들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내가 글씨를 잘 쓰는 편인가, 그냥 우리 부문 사람들 중에서 그나마 제일 나으니까 부탁하는 거겠지'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었다.



#3

인사부문에 임원 한 분은 직원들의 모든 생일에 카드를 손수 써서 주셨다. 내용은 물론이고 글씨체가 예술이었다. 지금 떠올려 보면 당시 상무님의 글자는 지금의 캘리그래피, 그러니까 한 자, 한 자가 하나의 작품 같았다.

어느 날 상무님이 내 자리로 오셔서 티켓 두 장을 쥐어 주셨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서예전인데 남편과 함께 와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본인께서 좋아하는 스승님의 전시회라고, 시간 나면 한 번 들러보라고 하셨다. 글씨 참 정갈하게 잘 쓰던데, 멋드러진 글씨들을 보면 더 흥미를 갖게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당시 서예전 관람 후, 전문가들은 역시 달라.라는 생각만 뇌리에 박혔었던 것 같다.



#4

5년 전, 같은 팀 팀원 한 분이 내게 작은 리플릿 하나를 건네었다. 첫 페이지에는 '교보 손글씨 대회' 라고 적혀있었고, 나도 한 번 공모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함께했다. 알고 보니 이 분은 글씨체 연습을 2년 간 해오고 있었고, 필통 안에는 일반펜부터 만년필까지 글씨 쓰기 펜들이 여러 자루 들어있었다. 주변에 앉아 있던 분들도 나가면 될 것 같다며, 부추겼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 나는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을 때였고, 그냥 조금 줄을 잘 맞추어 쓰는 것뿐인데, 손글씨로 뭔가 응모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싶어 가방 뒤쪽에 리플릿을 쑤셔 넣어 두었다.

그렇게 몇 년간 포털사이트에서 보이는 교보문고 손글씨 공모전을 볼 때마다, '그때 그분이 응모하라고 한 적이 있었지.'라고 떠올리고 또 금세 잊곤 했다.





그리고, 2023년.

브런치 작가 지원과 합격, 매일 글쓰기와 책 읽기, 운동하기 등 몇 년 전 과는 사뭇 다른, 작은 도전들을 이어가고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였을까.

아이들과 함께 간 교보문고 카운터에 놓쳐진 교보문고 손글씨 대회 문구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책을 결제하며 한 장 뽑아 책 사이에 잘 꽂아두고, 그날 밤 꼼꼼히 읽어보았다. 그리고 다이어리 달력을 펼쳐 적었다. 7월 3일 예선 응모, 7월 21일 입선 수상자 발표.


약 한 달 동안 펜을 알아보고 쓸 문구도 찾아보았다. 하지만 역시 바쁜 일상에 치여서였을까. 중요도에서 밀렸기 때문이었을까. 연습은 커녕 펜 구입도 하지 않고, 어느새 공모 제출 일주일 전이 되었다. 부랴부랴 교보문고 사이트에 들어가 양식을 다운로드하였다. 가장 손아귀에 잘 잡히고 부드럽게 쓰여지는 펜을 골랐다. 그날부터 일주일 간, 점심시간마다 끼니도 거르며 1인 회의실에 들어가 하루 한 시간씩 연습을 했다. 세 개의 문구들을 차례대로 써보고 가장 예뻐 보이는 것을 골랐다. 그렇게 쓰고, 또 쓰고. 수 십 번, 수 백번 적어댔던 것 같다.


글씨 쓰기 연습의 흔적들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날이 갈수록 퇴행하는 듯했다. 공모전 전날 밤.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수십 장의 연습 종이들을 보고 깨달았다. 손글씨 공모전은, 그냥 잘 쓰는 편이라고, 일주일 연습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모든 글자들이 일정한 크기와 모양이어야 하는데, 그 실력은 쉬이 나오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수상을 바라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깊이 깨우치고는 올해는 시도하는 이 과정을 즐기자고 마음먹었다.






결과는? 당연히 탈락이었다.

부끄럽지만, 입선 수상자 발표 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문자가 오면 침을 꼴깍 삼키며 화면을 들여다보았으나, 택배와 광고 문자가 전부였다.


내년 공모전을 기약하며 글쓰기 연습을 계속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무언가 적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분명하다. 글자를 적어낼 때면 펜에서 나오는 잉크가 그려내는 선에만 집중하게 된다. 마음을 일깨우는 문구를 적어 벽에 붙여놓으면 뿌듯함까지 더해진다. 아마도 뭔가 계속 끄적이긴 할 것 같다.


스탠드 불빛 아래 홀로 앉아 몇 글자 끄적이는 지금,

문득, 내 글씨가 누군가의 마음을 톡톡 두드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본다.




*사진출처 - 교보문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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