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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Jul 29. 2023

평범한 주부의 주말 아침

어머님들, 다 그러신 거죠? 저만 그런 거 아니죠?


토요일 아침이다.

주말이라고 다른 게 없다. 지금은 매우 매우 즐거운 방학이기 때문이다.


어기적 어기적 방 밖으로 걸어 나와, 네 식구의 아침 거리를 찾아본다. 밥솥을 들여다보니 어제저녁 박박 긁어먹고 남은 밥풀 몇 개만 들러붙어 있다. 휴. 지금 밥을 하면 적어도 40분은 걸릴 거고, 곧 잠나라에서 나올 성장기의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짹짹거리겠지.


요즘 냉동실이 온갖 냉동음식과 재료들로 꽉 채워져 어두컴컴하던데 뭐라도 파먹어 볼까. 하고 문을 열었다. 오, 지난주에 얼려둔 꼬마김밥이 보인다. 그것도 무려 열 줄이나. 돌처럼 꽁꽁 얼은 김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해동 5분. 서걱하게 녹은 물체를 가위로 잘게 잘게 잘라 프라이팬에 올린다. 올리브 오일 조금 둘려 달달 볶아 본다. 음. 좀 뻑뻑하다. 그래도 먹을 만 한데.


곧 출근할 남편 것 부부터 수북하게 퍼낸다. 아침 양이 적은 아이들 건 한 국자 정도만 담는다. 꽃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릇으로 냉동 김밥의 허접함을 덮어본다. 그리고 내 건, 그냥 프라이팬에.






아이들이 거실로 차례차례 나온다. 늘 그렇듯 잘 잤어~? 하고 첫째 아이를 꼭 안아주는데 뜨끈뜨끈 하다. 어제저녁 콧물을 훌쩍거리더니 감기인가. 열을 재어본다. 그럼 그렇지. 엄마라는 사람의 손 체온계는 틀린 적이 없다. 38.5도다.

둘째 아이는 온몸을 긁적인다. 옷을 들춰보니 등 전체가 오돌토돌 올라와 있다. 땀 때문인 지 요즘 아토피가 더 심해지는 듯했는데, 오늘은 부위가 더 넓어졌다. 목, 등, 배를 긁어 대며 징징대기 시작한다.

첫째 아이에게는 약통에 상비해 둔 해열제를 먹였다. 둘째 아이는 화장실로 데려가 물로 씻고 수딩젤을 발라줬다.

드디어 식탁 앞에 앉아 프라이팬에 놓인 나의 김밥 볶음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어 씹어 먹는 찰나. 아이들이 밥투정을 하기 시작한다. 기름 누린내가 나는 것 같다, 단무지가 물컹 거린다, 밥풀은 왜 노란색이냐 등 가지각색의 투덜거림이 이어진다.


아, 이 초록빛이 가득한 여름. 창문 밖에 매미들은 맴맴 노래하고 집 안의 아이들은 잉잉 울어댄다.



고열에 간지러움까지, 입맛이 없을 수도 있겠다 싶어, 냉장고를 다시 들척 거려 본다. 어제 남긴 닭죽이 있다. 작은 냄비에 죽을 덜어내고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데워본다. 맛을 좀 보자. 쩝쩝. 별로다. 소금과 참기름을 더해본다. 음. 좀 먹을만하다. 김과 함께 아이들 앞에 대령시켜 준다.

다행이다. 아이들은 쩝쩝 쫍쫍 잘도 먹는다.


남편은 그사이에 집을 나섰다. 덩그러니 다 식은 프라이팬에 놓인 내 김밥 볶음밥은 꼬들꼬들하다 못해 뻣뻣해져 보인다. 음. 다시 한번 데워보자. 아침부터 생 난리를 쳐서일까. 좀 칼칼하게 먹고 싶다. 그라인더 속에 담긴 통후추를 돌돌 돌려본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



아뿔싸. 너무 힘을 세게 쥔 것이었을까.  

그라인드 뚜껑이 열리면서 통후추가 와장창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밥알 사이사이에 예쁘게 쏙쏙 박혔다. 노안이 시작된 눈을 최대한 크게 뜨고 후추를 골라내 본다. 어떻게든 먹어보겠다고 몇 숟가락 떠보지만 통후추가 어금니에 으작으작 씹힌다.





에잇!

안 먹으련다.

무슨 아침은 아침이냐!



이렇게 애 둘 엄마의 아침은 또다시 스킵이다. 점심도, 저녁도 그러하겠지. 스킵, 스킵, 또 스킵. 랄랄라.

식기건조기에서 최애 투명컵을 꺼내 얼음과 냉수, 그리고 카누를 넣어 휘휘 녹여본다. 빈속에 냉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켜니 세상 시원하다.


식탁에 앉아 닭죽에 김을 올려 뇸뇸 먹고 있는 녀석들을 보며 혼자 생각해 본다. 좀 더 일찍 일어나서 갓 지은 밥을 하지 못한 내가 잘못이다. 그리도 그거라도 먹어주니 어디냐, 고맙다.  


그나저나 너희랑 오늘 하루종일 뒹굴려면, 이 애미도 잘 챙겨 먹긴 해야겠구나.

그런데 뭘, 먹지.

쩝.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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