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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Jul 13. 2023

여보, 그걸 왜 얼굴에 발라

그거, 사실은...


"로션 다 떨어졌는데, 얼굴에 바를 거 뭐 없어?"

"화장대 위에 있을 거야~ 애들이 안 바르는 거~"


2주 정도 전이었던 것 같다. 설거지와 바닥청소로 분주한 저녁이었다. 남편의 질문에 쳐다보지도 않고 답했었다.





일요일 주말 아침, 유난히 햇살이 내리쬐는 화창한 날이었다. 매주 그렇듯 네 가족이 둘러앉아 전날 배달해 둔 빵을 음미하고 있을 때였다. 남편이 흡족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로션 좋더라. 팔자 주름이 펴지는 것 같아~"

"오, 다행이네. 화장대 위에 있었지?"

"응. 분홍색, 납작한 거."

"분홍색? 흰색 튜브 아니고?"

"응, 납작한 거, 스틱처럼 된 거 있던데? 베이비라고 적혀 있고."

"어? 어? 풉!"


마시던 우유를 뿜고 말았다.

겨울에 쓰던 아이들 칙밤이었다. 사용기한이 훌쩍 지났으며, 지금은 여름에 드러나는 나의 뒤꿈치 각질 제거를 위해 매일 밤 열심히 발려지고 있던 것이었다.


남편이 동그란 눈을 하고 묻는다.


"왜? 왜 그래?"

"어떻게 해~ 여보, 그거, 요새 내가 발에 바르고 있는 건데."

"뭐? 그걸 왜 발에 발라? (경악)"

"그걸, 왜, 얼굴에.. 발라..?"

"아, 어쩐지, 가운데가 자꾸 파여 있더라, 바르는데 턱이랑 광대에 자꾸 덜컥 덜컥 걸리고. 으."


앞에 있는 아이들이 킥킥 대고 웃어대니, 남편의 유머에 발동이 걸린다. 좀 꼬리꼬리한 냄새도 났다, 자꾸 거칠거칠 해 지는 게 이상했다. 등등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오버하기 시작한다.

아, 이 짠함이여.



평소 얼굴에 스킨도 바르지 않던 사람이었다. 마흔 중반 즈음부터, 당기는 피부와 깊어지는 팔자주름을 느꼈는지 로션을 찾기 시작했었다. 내 말이면 즉각 접수하는 그가, 아이 로션이라는 말을 듣고 눈에 띄는 분홍색을 집어 들었던 것이다.







월요일 점심, 회사 근처 올리브영으로 향했다. 화장품 코너로 들어가 이것저것 둘러보다 귀차니즘 남편에게 딱 맞는 로션을 구입했다. 스킨과 로션을 한 번에 바르는 올인원 우루오스. 언젠가 누가 광고한다며 그가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참으로 오랜만에 준비한 깜짝 선물이다. 사무실 책상 위에 있던 리본도 하나 붙여 주었다.


집에가는 길, 가방 밖으로 삐죽 나온 빨간 리본을  바라본다.

화장대에 놓여진 흰색 로션을 발견하고, 아이처럼 신나할 여보를 떠올리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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