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님이 일찍 퇴근하셨다.
그 말은 곧 나도 일찍 퇴근한다는 말이다.
7시 출근 4시 퇴근, 7-4제를 하고 있던 나는, 사실을 고하면 7시 40분에 도착했다. 조금 늦장을 부리기도 했고, 아이들이 깨서 뽀뽀를 백번씩 해줬고, 눈이 와서 고장 차량이 많았고, 눈길이라 속도도 내지 못했다. 쩝. 뭐, 원래 지각에는 이유가 수만 가지지.
출근길 양심껏 5시까지 일하고 가리다 다짐했다. 그랬었었다.
시곗바늘이 북쪽을 가리킬 때 즈음, 양질의 음식으로 배를 두둑하게 채우고 따끈한 차 한잔으로 몸을 데웠다. 자리에 앉아 보고서를 읽다 보니 사무실 히터가 유난히 코끝을 뜨끈하게 간지럽힌다. 감기약까지 더해지니 머리는 가는 목 위에 힘없이 얹어져 간신히 모니터를 향하고 있는데 눈은 근력을 잃었다. 삼백안이다. 창문 밖으로 하늘하늘 흩날리는 눈발이 최면을 거는 듯하다.
그렇게 현실과 꿈의 세계 중간 어딘가에 머물던 나는 바스락바스락 소리에 탁! 하고 정신이 든다.
출처는 나의 상사, 그분의 자리였다. 이건 분명 패딩에 양팔을 끼우는 소리인데. 지익- 노트북 가방 지퍼 닫는 소리인데. 뚜벅뚜벅 발자국 소리가 출입구 쪽을 향해 사라지네.
금세 힘이 돌아온 목과 눈근육으로 얼른 사내 메신저를 본다.
'팀장님들, 오늘은 제가 일이 있어서 일찍 일어납니다.'
예에쑤!
8시간 근무를 채우겠다는 직책자의 양심은 그의 발자국 소리와 함께 보이지 않는 어딘가로 나가버렸다. 완전히 소멸되었다.
4시 퇴근할 수 있겠다는 희망코드를 입력하니, 뇌와 손가락이 순식간에 풀가동을 하기 시작한다. 2시간 동안 미적거리던 일을 30분도 안되어 해치운다. 심지어 내일 할 일까지 더 한다. 럴수럴수 이럴 수가.
4시 01분. 글을 쓸 수첩을 가방에 챙겨 넣고, 신난 두 발을 슬리퍼에서 운동화로 옮겨 넣는다. 가방 지퍼는 닫지 않는다. 동그랗게 말아두었던 패딩은 그대로 팔로 안는다. 그렇게 유유히 아이디카드를 찍고 차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팀원들에게 메신저를 보낸다.
'오늘은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 일찍 일어납니다.'
예에쑤!
팀원들의 마음속 외침이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그렇게 뜻밖의 시간을 얻은 나는 집 앞 최애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하트가 예쁘장하게 얹어진 따뜻한 두유라테와 무화과 스콘이 놓여 있다.
따스한 노란 불빛 아래 비치는 테이블들과 노곤노곤한 재즈 음악 소리 그리고 책. 사람들이 두런두런 감정을 주고받는 말들.
아. 좋다. 우연히 얻은 이 시간이 괜히 더 달콤하다.
이 감정을 놓지 말고 글 하나 끄적거려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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