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새벽, 눈이 번쩍 떠졌다.
평소 왼쪽 머리를 두드려 대던 두통도, 팔다리의 우직끈한 근육통도 없.다. 상쾌함 그 자체다.
언제나 그렇듯 핸드폰 화면을 집게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 숫자를 바라본다. 여럼풋이 보이는 숫자 4, 그리고 50. 오, 4시 50분이라니. 출근 준비를 시작하기 전까지 약 40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이 귀중한 나만의 시간에 무엇을 할까. 책을 읽을까, 글을 쓸까, 운동을 할까. 부푼 마음을 안고 선택지를 고르던 중. 아뿔싸. 어제 육아를 위한 이른 퇴근으로, 제쳐두었던 일이 떠올랐다. 머릿속에 동동 떠 다니던 어여쁜 선택지들은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보고서' 세 글자만 또렷하게 남았다.
그래, 일찍 출근해서 밀린 일이나 하자. 무슨 글쓰기고 운동이냐. 그렇게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5시 반을 조금 넘어, 차의 시동을 걸고 회사로 출발. 휴가 시즌인가, 차가 별로 없다. 간혹 졸음운전으로 보이는 큰 트럭들을 요리조리 피해 회사에 도착했다. 6시 30분. 당연히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뚜벅뚜벅 자리로 걸어가 조용히 노트북을 켜고 앉았다.
그런데, 저 멀리서 부스럭 소리가 들린다. 뭐지.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쥐인가. 그럴 리가. 그럼 바퀴벌레인가. 설마. 이곳은 최고의 방역 전문기업인 세스코에서 관리를 하는 곳이란 말이다. 그래도 혹시 나를 위협하는 무언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리 나는 곳을 향해 살금살금 걸어갔다. 순간, 무언가 까만 물체가 스르륵 올라온다.
헉. 상무님이다. 바닥에 떨어진 펜을 줍느라 잠시 허리를 숙이셨나 보다. 그나저나, 상무님이 이 시간에 왜 여기 계시는 거지? 보통 근무시작 시간인 8시 되기 10분 전에 오시는데, 왜 이렇게 일찍 오신 거지?
후다닥 걸어가 상무님께 인사했다.
"상무님, 안녕하세요. 왜 이렇게 일찍 나오셨어요~ (웃음)"
"응, 잠이 안 온다. 요새."
"아, 네, 하하하"
산지 반백년이 지나면 아침잠이 없어진다는데 사실인가 보다. (어쩌면 오늘 나의 눈이 일찍 떠진 것도 나이가 들어서인 것일까)
자리로 걸어 돌아오는 길에 혼자 꿍시렁거렸다. 혼자 조용히 앉아서 밀린 일 좀 집중해서 하려는데, 상무님이 계시면 또 자꾸 부르실 것 아닌가. 아휴. 망했다.
하지만, 금세 내 얼굴엔 미소가 드리워졌다. 으흐흐, 나이스 타이밍이다. 나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7시 출근 4시 퇴근을 하고 있고, 상무님은 매일 8시에 출근하신다. 그럼 어쩌면 내가 7시에 출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셨을 수도 있을 것인데, 7시도 아닌 6시 반도 안되어 출근을 한 것이었다. 누가 관리하지 않아도 매일 일찍 출근하는 신의성실한 직원이라고 생각하실 거 아닌가.
됐다. 상무님께 눈도장 찍었으니 직장인으로서, 부하직원으로서 최고의 신뢰를 쌓은 오늘, 할 일 다 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마음을 품고, 상무님 자리의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살짝 돌려 앉아, 밀린 업무들을 하기 시작했다. 문서 서너 장을 펼쳐 놓고 필요한 정보를 정리하고 업무에 접목시킬 것들을 찾아내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상무님은 나를 전혀 찾지 않으셨다. 그리고, 어제 오후에 1시간 동안 풀리지 않았던 일을 무려 30분 만에 마쳤다. 역시 고요한 아침의 힘은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아침 9시. 깨끗한 정신으로 깔끔하게 정리한 문서를 보고할 시간이다. 상무님의 눈빛이 평소보다 더 유해 보인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나는 너를 무한 신뢰해'라는 문장이 묻어있다. 나만의 너낌적인 너낌일까. 오늘 보고는 왠지 수정사항 없이 바로 승인을 받을 것만 같다.
오늘의 교훈.
직장생활에서는 역시 타이밍 이다.
*사진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