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묻어있는 잔잔한 행복들

by 리유

오늘 아침도 여전했다. 괜히 멈칫거려졌다.

아무런 인기척도 없는 거실에 제일 먼저 발을 내딛는 일이.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수건 하나 집어 들고 화장실 불을 켜는 순간. 아이들 방 쪽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닥.

둘째 아이다. 부스스한 머리카락, 통통 부운 눈을 하고는 입을 오물거리며 총총 걸어온다. 출근 준비를 하는 엄마를 보러.

아이는 두 팔로 나를 꼬옥 안으며 말한다. 이불속 온기가 그대로 묻어 있는 채.

'엄마, 회사 잘 갔다 와.'라고.


밤 새 몇 번이나 콜록대던 아이였다. 작고 동그란 이마를 손으로 짚어보았다. 다행히 열은 없다. 춥지 않냐며, 얼른 들어가서 이불 꼭 덥고 자라고 말을 건네고는 외투를 집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엄마가 없다고 새벽녘 작은 인기척에도 잠을 깨는 아이이다. 나의 부스럭거림에 아이가 자다 일어나는 게 늘 안쓰럽고 미안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유난히, 괜히 외로웠던 오늘 아침은 아이가 안아준 그 순간이 힘이 되었던 걸까. 가방을 들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어제보다는, 아까보다는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이 기분 좋게 와닿았다.




바깥으로 나오니 새벽에 내린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 아휴, 출근 운전이 꽤나 힘들겠구나. 하고 바삐 걸음을 재촉하던 찰나, 바닥에 동그랗게 비친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반짝이는 게 아닌가. 고개를 들어 빛이 시작되는 곳으로 올려다보았다.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가로등, 어슴프레 번져있는 불빛들, 그리고 그 안에서 흩날리는 눈송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 예쁘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출근길에 멈춰 서서 위를 바라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앞만 보며 바쁘게 바쁘게 걷기만 했었다. 이렇게 예쁜 것을... 순간, 어제저녁 머릿속을 스쳤던 생각이 떠올랐다.


'조금만 시선을 옮겨도, 생각의 방향만 바꿔도, 행복은 주변에 널려있다. '


사실, 예전부터 몇 번이나 들어왔던 말이다. 하지만 와닿진 않았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정도로만 들렸을 뿐. 그런데, 이제는 조금은, 아주 조금은 제대로 알 것만 같다.


출근하는 엄마를 보겠다며 일어나, 몽땅한 두 팔로 내 몸을 꼭 끌어안던 아이가 있다는 것, 그래서 나의 새벽 출근길을 따스하게 만들어준 것이 그대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어제 아침, 차장님이 주신 고구마와 함께 마시던 따뜻한 커피, 퇴근길 차 안에서 우연히 들었던 연주 음악, 퇴근하고 집에 들어섰을 때 '엄마, 나 오늘 수학 다했어.'라고 뿌듯한 표정을 짓던 아이, 미역국을 끓이고 밥을 지어 네 가족이 둘러앉아 겉절이를 얹어 먹던 저녁, 새로 이사 온 집에 보일러 마스터 했다며 뿌듯해하던 남편, 보들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덮었던 폭신한 이불, 먼저 잠들지 말라며 옆에서 쫑알대던 아이의 목소리지 모두...




요즘 들어 매일의 일상이 무료하게 느껴졌었다. 매일 똑같은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것만 같아 아쉽고 속상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하루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의 하루가 결코 밋밋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가 아니었다. 바지런히 생각하고 움직였다. 잔잔한 행복들, 기쁨, 웃음들이 곳곳에 묻어있었다. 모든 순간들이 소중하고 감사한 거였다. 더 대단한 걸 바라기에, 나의 지금에 만족하지 않기에, 현재가, 오늘이 아쉽고 별거 아닌 것처럼,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오늘 하루는 어제보다 좀 더 알찬 하루가 되었으면 하지만... 또 이놈에 기대치가 높아지는 듯하여 꾹꾹 눌러본다.


괜찮다. 그냥 좀 힘겨울 때엔 가만히 고요히 있어도 괜.찮.다. 주변에 이미 있는 행복을 만끽해 보자. 그래보자.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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