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반지 맞출까?

by 리유

"엄마, 나.. 크리스마스 선물 아직 못 받았잖아.. 그거 반지로 해도 될까아~?"


작년에 딱 한 번이었다. 반지를 갖고 싶다 했었다. 실반지 하나 사줄까 하다가 금세 못 낄 것 같기도 하고, 또 관리도 잘 못할 듯 보였던 터. 다이소에서 비즈 반지 만들기 하나 사주고 대충 퉁쳤었더랬다.


그러나 이번에는 눈빛이 사뭇 진지하다. 자신의 손가락을 들이밀며 이제 엄마랑 둘레도 비슷하다며, 지금 맞추면 몇 년은 낄 수 있을 거라고 객관적인 사실까지 들이밀었다. 친구들도 반지 많이 끼고 다닌다며, 너무너무 부럽다는 눈빛도 날렸다. 마지막 킥은 이거였다.


"엄마, 나 엄마랑 반지 맞추고 싶어~ 똑같은 걸로. 엄마랑 언니랑 이렇게 셋이. 그럼 학교에 가서도 엄마 생각하고, 엄마도 회사에 가서 내 생각하고. 응? 응?"


아... 굳건했던 내 눈빛이 샤랄라 빛나더니 사르르 녹아버렸다. 사주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토요일. 우리 가족은 동네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으로 향했다.

수십 가지의 반지들이 놓인 곳에 천막 아래에 도착하자 '우와, 우와.'를 연발하는 아이들. 생애 첫 액세서리를 고르러 왔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크지도 않은 가판대를 종종걸음으로 왼쪽 오른쪽 바삐 옮기던 아이가 내 귀에 작은 손을 대고 속삭인다. "엄마, 엄마가 좀 골라줘."


녀석. 얼마나 고민이 되었으면.


내 눈에 괜찮아 보이는 걸로 몇 개를 집어주었으나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한다. 격하게 예쁘다는 말은 꺼내지 않은 채. 그러다 갑자기 유레카를 외치듯 말한다. "이거 할래."


내가 골라준 것과는 상반되는 디자인이다. 민무늬 실반지에 은색의 작은 하트 하나가 올라가 있는. 사실, 개인 취향으로 좀 더 여리여리 하면서도 반짝이는 디자인을 들었다 놨다 했었다. 나 또한 반지를 사는 건 십여 년 만이었으니.

아쉬움도 잠시, 호들갑스럽게 아이에게 말했다.


"우와! 그런 반지가 있었구나! 이쁘다아~ 잘 골랐다!! 이뻐, 이뻐!!"


무언가를 고를 때, 심지어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선택할 때에도 수십 번 고민하던 아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 몇 분만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단 번에 말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확.고.하.게.


그렇게 아이 둘 거, 내 거 세 개의 반지를 각자의 손가락에 맞게 고르고는 셋이 손을 마주 대는 사이, 주차를 마치고 올라온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쳇, 내꺼느으으은!!!!!!"


플리마켓을 지나 건물로 들어가는 골목길. 그 거리는 내게 또 하나의 달콤한 추억 사탕이 될 게 분명했다. 따스하게 비추는 봄 햇살, 내 손에 포개진 아이의 작은 손, 반짝이는 은색의 꼬마 하트, 나를 올려다보며 세상을 다 가진 듯 웃음꽃이 만발한 아이. 자기만 반지 안 사줬다며 툴툴대는 남편.



그날 밤, 아이는 몇 번이나 물었다.

"엄마, 이거 손 씻을 때 끼고 있어도 돼?" "엄마, 샤워할 때는?" "엄마, 잘 때는?"


그리고 집에 굴러다니던 종이로 된 반지 케이스를 용케 찾아서는 자신의 반지를 조심스레 넣어 두었다. 자기 전에는 나에게 꼭꼭 다짐을 받으면서.

"엄마, 회사 갈때 꼭 끼고 가야해."라고.





지금 내 왼쪽 검지 손가락에는 은색 하트가 얹어진 작은 실반지가 감싸져 있다. 키보드를 두드릴 때마다 비치는 반짝임이 다이아몬드보다 영롱한. 가만히 보니 여리여리한 반지들보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오늘 반나절 밖에 지나지 않았을 뿐인데, 수십, 수백 번은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만큼 아이를 떠올렸다.


지금, 학교에 간 아이는 반지를 끼고 갔을까. 엄마랑 함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은 포근해졌을까. 엄마를 떠올리며 그 작은 입을 또 쌜룩거리고 있지는 않을까.


퇴근 후 아이와 반지를 마주할 생각에 괜히 기분이 몽글몽글해지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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