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님, 지금 당신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어요.
미생. 그들이 있었다.
잔뜩 찌푸린 얼굴
문을 쾅 닫고 나오는 그의 입모양은 씨발. 욕이다.
통통한 몸에 자그마한 키. 허연 얼굴에 표정은 어둡지만 눈빛만은 반짝이는. 옷과 헤어 모든 게 단정한 그. 첫인상은 그저 어디 현장에서 일하다가 본사에 막 적응하는 중인 직원 같아 보였다.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하지만 잘 안 되는 듯 표정은 늘 어두웠다. 항상 야근에 상사가 저녁 먹으러 가자 하면 네네 따라나서는 모습을 보면 비위를 맞추느라 꽤나 애쓰는 듯도 하다.
그는 조금은 어려운 상사와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2년 정도 흘렀을까.
채용팀에 있던 나는 갑자기 리더십 교육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그 허연 친구와 함께.
부문장의 니즈를 받고 나와 처음 기획안을 작성하는 미팅. 둘이 회의실에 앉아 있는데 고요함, 특히 그의 긴장감이 작은 회의실 안을 꽉 채운다.
어색할 땐 일 얘기가 답이다. 이곳은 회사이니.
"보고서 작성해 본 적 있어요? "
"네, 최근 한두 번이요. "
"그럼 내가 포스트잍에 흐름과 내용을 간략히 적어줄 테니 작성해 볼래요? 오늘 미팅에서는 무슨 내용을 적을지 같이 얘기 나누고요. "
"네, 알겠습니다. "
그렇게 며칠뒤. 그가 고개를 숙이며 내놓은 보고서는 그야말로 형편없었다.
그동안 무언가 억눌려 있고 의기소침해 보였던 터 잘한 걸 찾아 칭찬부터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때 적은 걸 장표에 넣으니 너무 공백이 컸네요. 그래도 최대한 노력은 한 것 같은데,
이럴 땐 대리님이 합쳐봐도 괜찮아요. 직접 보고를 한다는 상황을 떠올리면서요. "
그제야 얼굴에 웃음이 드리운다. 그림자가 거둬지며 가려져 있던 반짝이는 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본인의 생각을 솔직하게 자주 얘기했고, 의논하며 일을 풀어 가는 나의 스타일과도 찰떡이었다. 우리는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차근차근 준비해 갔다.
우리는 한 번의 리젝도 없이 교육설계 계획을 승인받았다. 강사와의 과정개발과 연수원 예약, 안내, 운영, 결과보고까지 모든 것이 일정대로 진행되었다.
내 목적은 임원이 희망하는 방향성을 잘 파악하고 그 친구의 잘하고 싶은 욕망을 일깨워 주는 것이었다.
잘 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실로 대단한 친구였다.
그동안 교육팀에서 잔업무를 하며 곁눈질로 터득한, 그리고 본인이 맡는다면 고쳐서 해보고 싶은 방식들을 쏟아부었다.
현장에서 근무한 이력으로 교육생들과의 소통은 물론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하고 지원했다.
강사님도 우리 사에 맞추어 내용을 풀어내었고 강의력 또한 최고였다.
열정과 책임감으로 교육운영에 몰입하는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눈부셨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부문원 앞에서 큰 박수도 받았다.
우리는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다.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의 발걸음, 표정, 말투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자신감, 뿌듯함이 충만했다.
프로젝트가 끝난 직후 나는 교육팀으로 발령이 났다.
나와 그가 팀장과 팀원이 된 것이다.
새로운 팀을 맡게 되면 처음 하는 것이 있다.
믿을 수 있는 이에게 포지셔닝을 부탁하는 것.
그에게 요청했다.
빙산이 녹고 있다에 나오는 프레드 역할을 해달라고.
주어진 루틴만을 수동적으로 하고 있는 팀, 어떻게 보면 팀원들 스스로 일을 못한다고 치부해 버리고 있는 팀, 이 팀을 변화시키는 주인공이 되어 달라고.
내 의견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으니 나와 팀원 사이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해 달라고.
무엇보다 대리님처럼 밝고 자신 있는 팀으로 만들어 보자고.
그렇게 그와 나는 한 팀에서 일을 시작했고
대단한 프로젝트를 하나 더 맡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팀은 조금씩 밝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 사진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