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님은 아름다워

미생, 그들이 있었다.

by 리유


'점심 못 먹었죠? 여기로 와요. 따로 챙겨놨어요'


그녀를 처음 뵈었을 때, 주변의 공기와 빛 향기까지 모든 게 따뜻하고 보드라웠다.

당시 그녀는 교육 연수원 소속 차장님이었고 나는 승진 면접 운영자이자, 둥이를 6개월째 품에 안고 있는 예비 엄마였다.

처음 진행되는 방식의 대규모 면접이라, 무거운 몸과 퉁퉁 부운 발로 면접장 곳곳을 힘겹게 돌아다니던 차였다. 끼니를 거르는 걸 미리 아셨는지, 연수원 직원들 식사를 한곳에 남겨 두셨던 것이다.




그리고, 5년 뒤, 우리는 같은 팀에서 일하게 되었다. 팀장과 팀원으로.

그녀는 나보다 회사를 5년 더 다녔다. 결혼도 빨리 한 덕에 신입사원 뻘의 딸이 두 명이나 있다.

처음에는 나이가 많은 팀원과 함께 일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나는 둘째 치고, 그분은 괜찮으실까.


괜한 우려였다.

그녀는 본인의 마인드를 이미 정하였다. 나이나 경력보다 일이다. 업무가 가장 중요하다. 나의 기준과 같았다.

우리는 철저히 일을 중심으로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며 시간을 보냈다.


유난히 팀 내 공석이 자주 발생했고 그만큼 신입도 자주 들어왔다.

그때마다 그녀가 공석 업무를 자진해서 대행하였고, 새로 온 직원에게 꼼꼼히 인계도 해 주었다.

내 프로젝트가 부여되면, 본인이 루틴 업무를 책임지고 할 테니, 기획 업무에 집중하라고 먼저 궂은일을 맡기도 했다. 팀에 필요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으니 부담 갖지 말고 얘기하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몇 년간 그녀가 해낸 일들을 나열하면 수일이 걸릴 정도다.


아침도 못 먹고 출근해 빈속에 쓰디쓴 커피를 들이붓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본인이 싸 온 떡이나 빵을 조금씩 나눠 주기도 한다.

일이 많아 힘겨워 보일 땐 한 마디씩 던지신다.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라고.


그렇게, 1년, 2년이 흘러 어느덧 함께 일한 지 3년째.

우리는 일도, 마음도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스믈 세 살의 어린 나이에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 특유의 말솜씨와 밝은 자세가 눈에 띄어 사내 강사가 되었다.

강의력을 인정받아 외부 기업 출강도 하고, 몇 년간 본인의 날개를 마음껏 펼치며 경력을 쌓아갔다.

힘든 도전들의 연속이었지만, 가장 자유롭고 즐겁게 일을 해나간 기간이었다.


하지만 연수원이 없어지고, 교육팀에 합류하게 되자 회사에서 떠나야겠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적도 있었다.

다른 자격증을 따야 할지, 아니면 사서를 준비할지 고민도 했었다.

아니, 실제 등록까지 했었다.


본인이 이렇게 지금까지 근무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그저 지금이 감사하다고 말한다.

그만큼 회사에 대한 애정도 상당히 다. 회사가 잘된다면 본인의 야근쯤은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마인드까지 갖추었다.



보통은 경력이 많은 차장이라고 하면, 승진하지 못하고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직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자신의 경력과 노하우로 팀 본연의 업무를 탄탄하게 지켜 나가는 분들이 계신다.

로열티와 근면 성실함은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최고다.


예전 자료가 필요할 때면 폴더를 샅샅이 뒤지고는 '여기 있어요'라고 금세 찾아준다

다른 부서와 마찰이 있을 땐 그간 쌓아둔 감정계좌를 이용해 유들 있게 풀어낸다.

일이 잘 안 되어 분위기가 처질대면 좋은 쪽으로 전환시킨다.

준비하던 교육이 미뤄져 속상해하면, 오히려 준비할 시간을 벌어 잘됐다고 웃는 식이다.

자식뻘 되는 신입사원들이 할 일을 제대로 못 쳐낼 땐 영리하게 한 마디씩 돌려깐다.

'똑바로 해 이것들아' 라는 말도 던지며 군기도 한 번씩 잡는다.

특유의 겸손함과 재치를 겸비한 그녀는 어느 세대와도 잘 어울리는 듯하다.


무엇보다, 내 머리 위 먹구름이 보일 때면 슬쩍 불러 차 한잔 사준다.

그리고, 나를 멋진 사람, 좋은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을 들게 해 준다.



오늘도 유독 어깨가 려앉은 내게 퇴근하며 말을 건넨다.


'주말이 지나면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푹 쉬고 오세요'


정말, 푹 쉬고 나면 괜찮아질 것만 같다.



다음 주 월요일 아침, 그녀가 싱긋 웃으며 나를 반길 것이다.

'안녕하세요, 잘 쉬셨어요?'라고 물으며.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커피를 건네며 서로 좋은 한 주 보내자 응원할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이다.

회사에서 이런 분을 만나다니, 난 정말 축복받았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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