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라면 대환장 파티

by 리유


“호로록 호로록 짜장라면 먹고 싶다, 컵에 든 거 들고 호로록 호로록, 뇸뇸.”


며칠 전부터 서른여덟 번도 더 들은 소리다. 장화 신은 고양이의 눈을 꿈뻑꿈뻑 대면서 말이다. 게다가 두 녀석이 동시에 손을 모으고 올려다보고 있다. 아, 안 사줄 수가 없다.


평소에 밀가루 소화를 잘 못 시키는 둘째 탓에, 과자, 빵도 가뭄에 콩 나듯 사주던 나였다. 어쩌다 한 번 스스로 할 일을 기똥차게 잘했을 때, 바로 그때, 라면을 사준 적은 딱 두 번 있었다. 그냥 끓여 주지도 않았다. 팔팔 끓는 물에 면을 삶아, 기름과 혹시 모를 방부제 등을 제거하고, 스프는 삼분의 일반 넣었다. 밍밍함과 매콤함의 중간 즈음 어정쩡하게 끼여있는 요상한 맛임에도, 아이들은 천상의 맛이라며 잘도 먹었었다. 아이들은 라면은 원래 이렇게 끓여야 맛있는 줄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컵라면이다. 이 모든 절차를 거칠 틈이 없다. 비닐 뜯기, 뚜껑 열기, 스프 넣기, 물 붓기가 끝이다. 게다가 생방송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 아닌가.

라면을 사줄지 말지, 고뇌의 눈동자를 돌리는 사이, 두 녀석들은 세상 애절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살핀다. 어쩌지.

아, 그러고 보니 주말 내내 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 말은 즉, 다섯 끼를 해치우는 동안 돌밥 돌밥을 반복하는 신세였다는 것이다. 갑자기 무릎과 허리가 좀 찌릿 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음. 머리를 굴려본다.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이 보통 30분이라 하면, 이건 5분이면 끝난다. 오호.


에잇, 먹자. 옷들 입어.라고 외치자. 그제야 맘 졸여하던 아이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핀다. 짜장라면 파티를 시작하자며 춤까지 춘다. 쩝.




띠리링. 편의점 문을 열고 짜장라면을 찾는다. 작은 컵 두 개를 들으니, 큰 컵에 호로록하고 싶단다. 그래, 기왕 먹는 김에 이 순간을 마음껏 누려라. 게다가 2+1이다. 콜.

자기들 얼굴 만한 큰 사발 짜장라면을 하나씩 손에 들고 세상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표정과 켱쾌한 발걸음을 옮겼다.



자. 이제 저녁 준비를 해 볼까.

비닐을 뜯고 뚜껑을 열었다. 헉. 기름에 튀긴 면과 MSG로 가득 찬 스프가 놓여있다. 아이들에게 정말 이걸 다 먹일 것인가. 잠시 내적 갈등이 요동쳤다. 그래도 이제 와서 이 라면파티를 엎을 순 없다. 이 한번 악 물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스프는 하나만 뜯어서 반씩 넣었다. 면들이 짜작짜작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동안 짜장라면의 향기가 침샘을 자극한다.


다됐다.

아이들을 부르려는 찰나, 뚜껑을 열어보니, 세상에, 양이 너무 많다. 이거 정말 다 먹일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엄마인 내가 좀 먹어줘야겠다.

동태를 살펴보니 아이들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럼 10분 이상은 이곳에 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젓가락을 집어 들고 스프와 면을 섞어줬다. 서두르다 보니 짜장소스가 골고루 섞이지 않는다. 아직 덜 익었는지 면도 약간 버석거린다. 괜찮다. 일단 빨리 먹어야 한다.


호로록.

오옷. 완.전.꿀.맛.

그래, 이 맛이야. 내가 잊고 있던 편의점 라면의 맛.

그동안 봉지라면만 먹어서였을까. 컵라면 특유의 고소한 기름 향이 기억 세포를 터뜨려 버렸다. 젓가락이 자꾸 라면을 향한다. 한번, 두 번, 세 번. 혀가 데이는 지도 모르고 무아지경으로 면치기를 해댔다. 빨리 먹느라 몇 번 씹지도 않고 꿀떡꿀떡 삼켰다. 소스가 뭉쳐 있는 곳을 먹으니 더 기가 막힌다. 덜 익은 면이 오히려 더 식감을 높여준다. 게다가 몰래 훔쳐먹는 밥이 더 맛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젓가락과 면을 수없이 움직이던 중, 나만의 짜장라면 파티를 깨는 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짜장라면 다됐어~?’


헉. 큰일이다. 라면을 바라보았다. 반 밖에 안 남았다. 두 개를 반 씩 먹었으니, 짜장라면 하나를 내가 다 먹은 것이다. 마치 젓가락 하나 데지 않은 것처럼 면들을 가운데로 모아 본다. 건더기 스프도 토핑처럼 올려 본다.


‘짜잔~ 다됐지~ 정말 맛있겠다. 그런데 이거 양이 너무 많은데~ 너네 진짜 이거 다 먹을 수 있는거지이~?’


큰 사발 하나씩 손에 든 아이들은 천국의 맛이라며 호로록 호로록 면발을 빨아들인다.

최근 그렇게 신나는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기분이 좋아진 아이들은 엄마는 왜 안 먹냐며 몇 젓가락식 내 입에 가져다 댄다. ‘으응, 엄마 지금 좀 배부르거든’이라는 말은 꿀꺽 삼키고 ‘우와, 정말 꿀맛이다.' 말하며 활짝 웃어 보였다.


진정한 짜장 라면 파티였다. 40년 살면서 제일 맛있었던 라면이었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내가 얼마나 긴장감과 긴박감 속에 이토록 꿀 같은 순간을 경험했는지. 복은 늘 곁에 있다는 말을 진정으로 실감하게 되었다는 것을.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던 중, 뱃골이아이가 나지막이 한 마디를 건넨다.


‘엄마,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 큰 사발인데 왜 이렇게 라면이 적게 들어있어? 조금 더 큰 건 없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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