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제 일 아닌데요.
억울하게 한 소리 들었을 때
일을 하다 보면, 내가 한 게 아닌데도, 마치 내 잘못인 마냥 한 소리 들을 때가 있다.
여러 부서와 함께 얽혀 일을 하는 경우, 또는 일의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 위의 두 가지 모두에 해당되는 일을 맡고 있는 덕에,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상사로부터 욕, 아니, 잔소리를 듣고 있다.
작년에 ‘조직문화’라는 일을 맡았다. 일에서만큼은 MBTI에서 99% T 유형에 속하는 사람이기에, 직원들의 마인드, 그러니까 정체성을 변화시켜야 하는 이 일이 버겁게만 다가왔다. 게다가, 명확하게 눈에 보이는 인사제도나 복리후생의 개선이 아닌, ‘소통’을 중심으로 추진하라고 하니 심히 환장할 노릇이었다. 매일 뒷걸음치는 다리를 머리로 끌고 가는 모양새로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고나 할까.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찬 듯 다리를 더 무겁게 만든 건, 여기서의 ‘소통’이었다.
우리 회사에는 엄연히 직원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PR부서가 따로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팀장이 세 번이나 바뀐 요주의 부서다. 새로운 팀장에게 조직문화를 위해 소통해야 할 방향과 우리 팀과 협업하는 절차를 설명하였고, 팀장이 바로 충원되지 않을 때는 실무자들에게도 같은 내용을 반복하였다.
여기서 돋보기로 샅샅이 뒤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틈이 존재한다.
그들은 그들의 보고 라인이 있다. 그 상사가 승인 한 대로 일을 진행하면 된다. 상사가 조직문화를 강조하지 않으면 한편에 내동댕이 쳐진다. 팀장 선에서 아무리 협업을 요구한다 해도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팀 간 제대로 된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이다.
글로 풀다 보니 단전 밑에 고요하게 일렁이던 억울함이 명치까지 끌어올라 사설이 너무 길었다.
상사로부터 한 소리 듣고 있는 말들은 대게 이런 류의 것들이다. 한껏 올라간 눈썹과 찌그러진 미간은 세트다.
"요즘 사내 모니터에 송출되는 내용들이, 우리가 추구하는 조직문화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지금 소통되고 있는 내용들이 효용성은 있는 건가요? 확인하셨나요?”
"본사 교육 내용이 사보에 왜 실린 거죠? 현장 직원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예?!"
예?라고 내가 묻고 싶다.
한 공간에 마주하고 앉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황당해하는 동공과 실룩거리는 안면근육이 나의 억울함을 대신해 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메일이나 메신저, 즉 문자로 받으면, ‘헉’ 하고 한대 얻어맞은 부위를 혼자 참아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고민하게 된다. 아쒸, 반박할까?
5년 정도 전이었으면 받아쳤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안다. 대면하지 않는 상황일수록, 즉, 글로만 주고받는 대화일수록 더욱더 참아내야 한다.
아이들에게 화났을 때 주로 사용하는, 감정을 추스르기 위한 424 심호흡을 두세 번 반복한다. (4초 들이쉬고, 2초 참고, 4초 내쉬고) 그리고, 추가 확인해 보겠다. 알아보겠다. 보완하겠다. 와 같은 열린 답변을 적어서 발송.
정말 억울하고, 성과 평가에 영향을 줄 만한 일일 경우에는, 대면할 기회를 찾는다.
상사의 업무량과 컨디션을 최선을 다해 살펴보고 자리로 찾아가거나, 보고할 ‘다른 거리’를 주요 논제로 삼아 미팅 자리를 마련한다. 미팅이 순조롭게 마쳐갈 때 즈음, (혼자) 불편했던 상황에 대해 슬쩍 말을 꺼낸다.
‘저희 팀에서 결정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었습니다. 조율하기가 어렵습니다.’와 같은 감정적이고 단편적인 말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좌뇌를 쭈욱 확장시켜 최대한 논리적이고 객관적이며 정중하게 말해야 한다.
“PR팀에서 본부장의 승인을 받고 이미 촬영과 편집까지 마친 상태에서 직원 안내될 내용을 전달받았습니다. 최근 팀장이 바뀌어 사전 논의를 요청한 바도 있습니다. 향후 조직문화와 관련된 사항은, 상무님께서 말씀 주신 바와 같이 저희와 미리 논의하도록 명확한 절차를 수립하겠습니다. 본부장님께서 PR 팀 임원과 사전 협조 요청을 해 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나의 상황을 전했고, 상사의 의견도 존중했으며, 당신이 있어야 일이 해결된다는 존재감도 심어주었다. 됐다.
사회생활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집단적으로 모여서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공동생활이라고 한다.
입사했을 때 어떤 임원의 강의 첫 마디가 기억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신입사원 여러분께.’
그때는 몰랐다. 이리도 복잡 미묘한 말과 감정들을 현명하게 소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들이 사회생활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을.
아, 그나저나, 왜 이렇게 피로가 몰려오는 걸까.
점심 먹은 지 한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왜 이렇게 허기가 지는 걸까.
아이스 바닐라 라떼 한 잔 들이켜야겠다.
오늘만은 시럽을 맘껏 넣어야 할것만 같다.
*사진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