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는 여덟 살 짜리 두 여자 아이들이 있다.
아홉달 동안 내 뱃속에 함께 있었고, 1분 차이로 세상 밖으로 나왔으며, 여지껏 먹는 것, 듣는 것, 보는것에 대한 환경이 모두 같았다. 아이들이 몸을 움직이고 성격을 드러내기 까지는 전혀 몰랐다. 이 둘이 이토록 다른 모습을 보일 줄은, 그 중 한 녀석이 이리도 뚜렷한 성향을 갖고 있을 줄은.
두 돌이 좀 넘었을 때였을까. 흰색 매트에 스티커를 마음대로 붙여 보라고 했다. 한 녀석은 의식의 흐름대로 방사형으로 이리저리 붙여댔고, 한 녀석은 쪼로로록. 일자로 붙였다. 빈틈 하나 없이.
이 일자로 붙인 녀석이 첫째아이다. 이 녀석의 정확하고 사실적인 것을 선호하는 성향은 유치원 시절부터 드러났다. 어느 가을 날, 나무에서 단풍잎이 떨어지는 걸 바라 보던 중, 둘째 아이는 '하늘에서 빨강 노랑 물감을 뿌리는 것 같아', 라고 말하는 반면, 첫째 아이는, 단풍잎이 몇 개나 떨어지는거지? 세어볼까?' 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지금의 MBTI 로 구분하자면, 사실에 주목하는 T(Thinking)의 성향을 90% 이상 가졌다고 할 수 있겠다.
만 나이가 발표된 날이었다.
학교에서 만나이 계산하는 법을 배우고 왔는 지, 첫째 아이가 갑자기 가족들의 나이를 적어보기 시작한다. 본인은 이제 여덟살이 되었단다. 그리고, 아빠는 마흔 두살, 엄마는 마흔 살. 이라고 중얼거린다.
주방에서 저녁준비를 하던 남편과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신나서 말했다.
나: 와~ 엄마는 아직 마흔살 밖에 안됐네~
남편: 오, 그럼 나는 42살인거야? 우옷!
첫째아이: (정색하며) 그래도 어차피 늙은 건 똑같잖아.
나, 남편: -_-;;
자기 전, 아이의 책상을 정리하던 중, 아이가 끄적여 놓은 종이가 보인다. 가족들의 이름 밑에 나이가 적혀있고, 얼굴도 그려져 있다. 종이 위에 색연필로 그려진 나와 남편 얼굴의 팔자와 이마 주름이 유독 깊어 보인다. 그래, 늙은 것 똑같지. 숫자만 바뀌었다고 더 몸이 젊어진 건 아니지. 되뇌이며 건강을 더 챙겨야 겠다 다짐했던 밤이었다.
또다른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신나는 주말을 즐긴 일요일 밤. 다음 날에 학교를 가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픈 둘째 아이가 징징거리기 시작한다.
둘째: 이잉. 일요일이 더 길었으면 좋겠어.
첫째: ..
둘째: 나 잠 안잘꺼야. 이잉..
첫째: (정색하며) 니가 아무리 그래도 내일은 월요일이야.
둘째, 나: ...
일요일의 끝을 붙잡고 싶던 나조차 시간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둘째 아이의 말에 깊이 공감하던 차였다. 그래봤자 내일 눈뜨면 월요일이라는 첫째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흐물거리는 정신을 똑바로 잡아야 겠다 싶었다. 아쉬워 해 봤자, 더 늦게 자 봤자, 기분만 안좋고 몸은 더 피곤할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신기하다. 순수한 표정과 말들로 어른들의 마음을 몰랑몰랑 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실 그대로를 말하며 어른들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알려주기도 한다. 이래저래 아이들이라는 존재는 묘하게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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