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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하영 Aug 31. 2021

너무 이른 기대란,

브람스

브람스를 디깅하는 시간을 갖기로 결심했다.

브람스 디깅 프로젝트 두둥!

해 놓고,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어떻게 꾸려야 하나 골머리를 앓았다.

‘어떻게 운을 띄워야 하나’도 고민이었지만, 브람스라니.. 내겐 너무 어려운 브람스인데..


갑자기 왜 브람스였을까?

제일 좋아하는 작곡가? 는 아니다. 사람들은 꼭! 제일 좋아하는 작곡가 혹은 곡을 물어본다.

나는 결정 장애자는 아니다. 그렇지만 가장 좋아하는 00은 참 뽑기 어렵다.

클래식 음악은 그의 시간에 비례하는 방대한 양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작곡가마다 아주 다른

색을 가지고 있다. 내 감정은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왔다 갔다 한다. 그때마다 좋아하는 색이 바뀌는 변덕스러운 성격이다. 이럴 땐, 이런 작곡가가 좋고, 저럴 땐 저 작곡가가 좋다. 그래서 그때에 그 순간, 듣고 싶은 음악이 있다.

그때 듣고 싶었던 음악이 브람스였던 것 같다. 한창 브람스 Op.118 no.2 Intermezzo에 빠져 있을 때였다.

음악은 이렇다 저렇다 명확하게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 신기한 건,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음악은 무언가

다 느껴진다는 것이다.


브람스의 색은 매우 깊고 짙은 이끼 같은 색, 어두운 회색, 혹은 깊고 깊은 심연의 색이 떠오른다. 묵직하지만 부드러운, 굵지만 섬세한 표현력이 느껴지는 작곡가이다.

어렸을 때는 브람스 음악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들리지도 않았다. 당최 무슨 음악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클래식 음악의 매력은 작곡가를 알고 들으면 음악이 들린다는 것이다.

이게 어렵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이 부분이 참 매력적이고 즐거운 일이다. 멋진 이런 곡을 만든 인물도 ‘사랑을 하고, 시련을 겪고,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가며 슬럼프 속에 작품들을 만들어가며 살아갔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서 음악이 나왔구나 알게 되면, 조금은 더 이해가 되고 음악이 주는 감정에 동화된다.

보통 브람스 음악은 성숙한, 농익은 음악이라고 이야기되며, 너무 어린 친구들에게는 맞지 않다는 어느 정도의 선입견(?)도 있다. 그냥 편견이야!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정말 브람스 작품은 어렵고, 이해하고 해석하기 쉽지 않다. 그런 브람스의 작품을 만난건 내가 겨우 1학년 때, 소품 곡으로 마주해 레슨을 받게 되었었다. 브람스 랩소디 2번. 그 이후로 브람스를 거의 듣지도 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대학원 때 바이올린 소나타와 가곡을 접하게 되면서 브람스의 음악에 빠지게 되었던 것 같다. 클래식 음악은 어떤 음악이던 참 마음을 울린다. 그런데 브람스는 저 깊은 곳을 움직인다. 건드려지지 않은 바닥을 훑어내는 것 같은 음악이 들린다.


브람스의 색이 떠오르는 색감


아모레 퍼시픽 전시  [주세페 페노네 / 눈꺼풀]
스페이스 K 전시 [헤르난 바스 중 ]
MMCA 전시 [윤형근 / 청다색]
내가 생각하는 브람스 이미지 컬러



어린 브람스의 사정

브람스는 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음악을 작곡했던 옛 시절의 작곡가들은 대게 힘든 일생을 살다가 갔다. 작곡가를 파면서 항상 느끼는 건, 그 뛰어난 작곡가들도 항상 슬럼프를 겪고, 시련을 겪고, 열등감에 힘들어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혹은 자신과는 다른 재능을 가진 작곡가를 뛰어넘기 위해, 그리고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다지고 또 다지며 위대한 음악을 남겼다.

그중 브람스는 정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고, 돈을 벌기 위해 미성년자의 나이 때부터 술집, 사교장 등을 다니며 음악을 연주하고 돈을 벌었다. 제대로 음악 교육을 받지 못한 브람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친구들을 얻을 수 있었기에 지금의 브람스로 남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브람스의 인연
요제프 요아힘Joseph Joachim

뛰어난, 그리고 브람스랑 음악적 성향이 맞는 바이올리니스트와의 만남은 내가 바이올린 소나타 중 손에 꼽게 좋아하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만들 수 있게 된 인연이다. 헝가리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그와 함께 브람스는 여행하며, 헝가리 무곡도 작곡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슈만과 클라라를 만나게 한 장본인이다.


인연이란 정말 중요하다.

누군가를 언제, 어떻게 만나느냐는 삶의 큰 방향을 선도한다. 나 또한 참 여러 인연 덕분에 내 삶에 가지를 뻗어가며 매우 유동적으로 움직이고, 항상 예기치 못한 일들을 마주하며 지금의 내 삶을 살고 있을 수 있었다.

기회는 어느 순간이던 찾아온다. 그때 그저 놀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충분히 그 관계와 상황을 즐길 수 있길 바란다.

브람스는 요아힘보다 먼저 만난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다. 그러나 음악적 성향이 맞지 않는 그와 관계를 지속하지 않았다. 그리고 함께 하게 된 요아힘과는 평생을 함께 하며 서로의 영감이 되어주며 음악을 나눴다.


슈만과 클라라

브람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당시 이미 너무 유명하고 뛰어났던 슈만과 클라라 부부. 사이좋은 이 부부에게 소개된 브람스의 나이는 19살이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기분은 어떨까? 그 벅차오름은 감히 상상조차 안된다. 브람스만 벅차올랐을까?

이미 유명했던 뛰어난 작곡가인 슈만은 이 어린 브람스를 쉽게 볼 수도 혹은 어린 뛰어난 작곡가를 질투를 할 법한데, 그저 감격했다. 아름다운 청년이라 표현했고, 심지어 브람스를 “베토벤을 이을 신예 작곡가의 탄생”이라고도 자신의 [음악 신보]에 글을 실었다. 얼마나 감사하고, 떨리는 일 인가.

그렇지만 브람스에겐 너무 이르고 너무 커다란 기대와 관심이었다. 아직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고 어린 브람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시선이 쏟아졌다. 또한 브람스의 성정은 신중하고, 진중하고, 섬세하며 완벽주의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자신의 작품 중 상당수의 작품을 브람스 스스로 파기했다. 그런 그에게 주변에서는 그를 ‘두고 보자’는 시선들을 받게 되며 브람스는 부담을 안고 살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곡들을 작곡하면서도 교향곡은 20년 만에 작곡을 완성하게 되었다.


너무 이른 기대란

이 일은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자신이 스스로 작품으로 유명해진 게 아니라, 갑작스럽게 외부에서 주는 유명세의 결과는 어마어마했다. 20년 만에 교향곡 1번의 완성이라니. 그러나 그만큼의 부담이 낳은 그의 교향곡은 엄청난 극찬을 받게 되었다.

1번 교향곡 작곡 착수는 22살부터 시작되었다. 교향곡으로 처음 구상했던 곡은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바뀌어 완성이 되었고, 7년이나 지난 1862년에 겨우 1악장이 완성이 된다. 그리고 12년 후인 1874년에 다시 나머지 악장을 본격적으로 작곡에 들어간다. 그로부터 14년 뒤에 1876년 9월에 드디어 전 악장이 완성된다.

22살에 작곡을 시작해 43세에 작곡을 마치고 그 해 11월 초연을 가지게 된다.


베토벤의 그림자에 시달린 브람스, 일찍이 슈만에 의해 너무 큰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은 브람스는 그 부담을 극복해내고 1번 교향곡을 작곡하였고, 이 작품은 좋은 반응을 얻게 된다.

초연 후 당시 뛰어난 지휘자 한스 폰 뷜로는 “우리는 드디어 제 10번 교향곡을 얻었다.”(베토벤이 9번 교향곡 까지 남겼다)라고 극찬하였다. 정말 다행이다. 만약 호평을 받지 못했다면 후에 나오는 나머지 교향곡을 제대로 브람스가 써낼 수 있었을까? 후에 점점 자신의 색이 묻어나며 4번 교향곡에서는 브람스의 특유의 음악적 성격이 빛을 발한다.

1번 교향곡은 브람스의 음악적 특징이 두드러지진 않는다. 베토벤을 상당히 의식한 모습이 비친다. 점점 그의 교향곡이 자신의 색으로 물들어가는 과정에 귀 기울여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특히 1번 4악장은 베토벤 합창 교향곡 중 피날레의 선율이 묻어난다.

나는 오히려 베토벤을 의식하고 쓴 표현을, 그리고 그를 존경하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묻어낸 것 같아 더 감동적인 감상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의 한 부분

Berliner Philharmoniker & Herbert von Karajan

Brahms Symphony No.1 In C Minor, Op.68


1. Un poco sostenuto - Allegro - Meno allegro  

웅장하게 시작하는 1악장이다. 쿵쿵 때리는 팀파니에 맞춰 현악의 멜로디는 긴장감이 서리고, 단호하고, 각오가 보인다. 비장함까지 느껴지는 도입부는 브람스의 긴 고뇌의 세월을 보여주는 듯하다.


2. Andante sostenuto

아름답다. 2악장은 항상 아름답다. 붓점 리듬의 살짝 경쾌한 듯한 발걸음에 현의 멜로디에서 오보에 소리로 넘어가는 부분을 좋아한다. 교향곡의 듣는 재미는 이렇게 악기의 교차로 인해 오는 다양한 색깔을 경험하는 것이다.

포근한 호른과 바이올린의 듀오 같이 주고받는 부분이다.


3. Un poco allegretto e grazioso

붓점의 리듬이 있지만 리듬에서 오는 경쾌함은 크게 가볍지 않고 사뿐한 발걸음으로 느껴진다. 그 위에 파곳의 소리가 꽤 매력적으로 들린다.

 

4. Adagio - Piu Andante - Allegro non troppo, ma con brio - Piu Allegro

맨 처음 등장하는 풀 오케스트라의 화성과 곧이어 아오는 현악의 피치카토는 긴장감을 준다.

3분의 1 지점인 'Piu Andante' 부분부터 호른에서 클라리넷에서 플루트로 차례로 관악기 소리를 쌓아가며, 다시 호른과 현악의 트레몰로로 음악이 채워진다.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 잠시의 쉼을 가지고 베토벤 피날레의 모습이 등장한다.


다 집중해서 듣기에는 긴 음악

교향곡 넘버 하나에는 보통 4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음악을 다 집중해서 잘 들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보통 교향곡 4악장은 짧게는 20,25분 길게는 40~50분 까지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을 발췌하고,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들을 수만 있어도 아마 즐거운 감상이 될 것이다.

나도 교향곡 같은 곡은 흘려듣다가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 나오면 귀가 쫑긋 기울어지며 잠시의 집중력 있는 감상 타임을 갖는다.

교향곡의 감상은 다양한 각 악기로 연주되는 주제의 색을 감상해보는 것이 재밌다. 목관이, 현악이, 금관이 자신의 특성이 묻어나는 소리로 교차되며, 주고 받으며 연주되는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매우 매력적으로 들릴 것이다.

많은 비전공자, 클래식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자신이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갖는다. 그럴 필요 전혀 없다. 모든 음악에는 취향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부분, 아닌 부분이 있다. 클래식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음악을 다 좋아할 수 없고, 다 귀 기울여 들을 수 없으니 편하게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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