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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하영 Oct 13. 2021

짧은 인연이 주고간 선물

브람스

지난 회차에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언급했었다.


누군가를 적절한 타이밍에 만나는 건 어떠한 것보다 힘들고 값진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인연이든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매우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지만,

어떠한 인연은 로또 당첨만큼이나 행운적이고, 운명적인 인연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내게도 그러한 인연이 있었다. 어떤 한 장소에서 만난 생각지도 못한 그 친구로 인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의 현재를 선물해준 인연이 있다. 이 친구는 내 아픈 인연이고, 매우 감사하고 귀한 친구이다. 절대 나와 친해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이 친구와는 묘한 끌림으로 계속 연락을 하게 되었고, 그 친구가 소개해 준 또 하나의 인연으로 가지처럼 나의 우연 같은 만남은 계속 뻗어나가 지금의 나의 미래에 큰 방향성을 가지게 되었다. 매우 반짝 거리는 아주 귀한 인연이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그냥 지나치는 우연인 듯한 만남이지만 사실 다시 돌아보면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내 삶에 작은 물결이 되기도, 큰 파도 같은, 아니면 내 여러 만남의 이음새 같은 역할을 해주는 존재들이 있다.


브람스에게 레메니가 그러한 존재였다.

에두아르 레메니 (Eduard Remenyi 1828 – 1898)


1850년 브람스는 레메니를 만났고, 그리고 결국 틀어지게 된 인연이다.

헝가리 출신의 좋은 연주자인 바이올리니스트. 브람스가 막 성장하기 시작할 무렵 얻은 인연.

레메니는 결국 음악적 견해 차이로 브람스와 끝까지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매우 굵직한 선물들을 브람스에게 주고 갔다.

레메니가 안겨준 선물은 요제프 요아힘 Josef Joachim (1831 – 1907)이고,

*요제프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바이올린 음악과 항상 함께 할 것이다.


또 하나의 선물은 헝가리 무곡이다.

21 Hungarian Dances

브람스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대중적으로 문화생활에 대한 기여가 상당했던 시절이다. 부르주아 층이 많이 생겨나고 각 집안에 피아노 한 대 씩 들여놓으며 부유층의 자녀들은 피아노를 대부분 배우고 연주하는 시절이었다. 그런 시기에 둘이서 함께 한 피아노에서 연주하는 Four Hands 연탄곡은 꽤 인기가 컸다.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브람스는 자신의 작품 중 헝가리 무곡에 대한 사랑이 컸다는 이야기가 있다.


헝가리 무곡은 다양한 이슈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레메니와의 소송에 관한 것이다. 헝가리 무곡은 레메니와 브람스가 연주 여행 중에 레메니의 연주를 통해 얻은 영감으로 발췌해 만든 곡이다. 그때 들었던 헝가리의 선율과 리듬을 편곡하여 만들어 낸 이 헝가리 무곡은 상당히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이에 레메니는 이것은 자신의 것을 표절한 것이라고 소송을 걸게 되었다. 레메니의 선율의 아이디어를 따온 것은 맞지만 이것은 헝가리 고유의 민족적 선율이기 때문에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또한 애초에 "편곡"으로 표기를 했기 때문에 이것은 표절 시비에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음악은 사람들이 브람스 곡인지는 몰라도 음악은 매우 많이 들어봤을 것이라 예상한다.  

네 손으로 한 피아노에서 연주하는 Four hands 혹은 연탄곡이라고 부른다.


[헝가리 무곡]은 매우 유혹적이고, 매력적인 곡이다.

어렸을 적에는 이 곡을 친구들과 함께 치는 것을 좋아했다.  신이 나서 잘 치고 싶었지만 리듬과 곡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그 시절에는 생각보다 잘 처지지 않았던 곡이기도 하다. (그저 신나서 쳤었던 기억이...^^;;)

테크닉적으로 뛰어나게 어려운 곡은 아니지만 템포와 악상의 변화가 커서 곡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곡의 맛을 살려 치기가 어려운 곡이다.

선율에는 장식이 많고, 싱코페이션(당겨지는 리듬)이 있어 약박에 강세를 두며, 박자 변화도 자유롭다.


정통적인 “클래식함”보다는 민족적인 특성이 도드라지는 음악이다.

민족 음악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이기도 하다. 자국의 특징을 담아내 각 나라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곡으로 여러 작곡가들은 애국적 마음으로 민족주의적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 나라의 고유의 리듬, 혹은 선율 등을 클래식 음악의 형식에 접목시켜 만들어냈다.


헝가리에서는 19기에 집시들의 음악이 활발했다. 집시의 음악은 유랑생활을 하며 느꼈던 희로애락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으며 애수에 차있고 이국적인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어떤 한 가지의 스타일이라기보다는 그리스, 터키, 유대, 비잔틴, 슬라브, 아랍 등 여러 도시와 민족을 만나며 채집되고 영향받은 요소들을 음악으로 결합하였다. 특히 스페인으로 넘어가서 플라멩코 음악의 탄생에 기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유로움에서 발현한 음악의 리듬과 선율은 절대로! 내 몸을 가만히 두고 들을 수 없다.

발짓과 어깨 짓, 고갯 짓이라도 하며 들어야 하는 곡이다.


집시의 음악

앞서 이야기한 음악적 특징인 템포의 자율적인, 그래서 즉흥적이기까지 보이는 이러한 특징은 집시의 *차르다시의 자유화라고도 불린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이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보다 자유롭게 되어 있다.

*느린 라싼(Lassan)이라고 불리는 부분에 빠른 프리스카(Friska)라고 불리는 부분을 계속하는 춤곡.

실제로 들어보면 음악이 밀당하는 기분이 든다.


이러한 민족적 성격을 담고 있는 춤곡에는 폴란드의 마주르카(mazurka), 보헤미아 지방의 폴카(polka), 미국의 래그타임(ragtime), 남미의 탱고(tango)와 삼바(samba) 등 저마다 개성 있는 형식과 리듬 템포를 가진 춤곡이 있다.


전체적으로 꾸밈음이 매우 많고 약박에 강세가 들어가서 당겨지는 리듬에 흥겨움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 템포를 상당히 유연하게 빠르기 조절을 가지며 자유로움이 느껴지도록 연주해야 한다.

느린 템포는 꽤 우수에 젖어 있으며, 집시의 특유의 애환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악보에는 눈에 띄게 표기가 되진 않았다. 그래서 곡에 대한 이해도가 꽤 중요한 것이다.


또한 피아노도 연탄곡으로 쳤을 때, 퍼스트(건반의 높은 영역)와 세컨드(건반의 낮은 영역)의 합이 매우 중요하다. 둘 중 테크닉의 연습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템포 변화와 악상 변화에 대한 이해가 완벽해야 한다.  


헝가리 무곡 < 총 4집 / 21곡 >

1869년 한 피아노에 두 명이 앉아 함께 연주하는 연탄곡 1집, 2집을 편곡하여 출판
(1집 : 1번 - 5번  l   2집 : 6번 - 10번)
1872년 1집과 2집 직접 피아노 솔로곡으로 편곡
1874년 1번, 3번, 10번 직접 오케스트라 곡으로 편곡
1880년 한 피아노에 두 명이 앉아 함께 연주하는 연탄곡 3집, 4집을 편곡하여 출판
(3집 : 11번 - 16번  l   2집 : 17번 - 21번)
*나머지 18곡은 작곡가 '드보르작' 외 여러 작곡가들이 편곡함. 5번은 마틴 슈멜링에 의해 편곡되었다. 그 외 바이올린과 피아노 버전은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에 의해 편곡됨.
*1889년 브람스 최초 녹음한 곡 : 헝가리 무곡 1번. 녹음 앞부분에는 자신의 육성도 들어가 있음.


요즘 같이 서늘하기도 뜨겁기도 한 날씨의 변화가 잦은, 그래서 더욱이 감정적 변화가 크게 일어나는 가을에 특히 헝가리 무곡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브람스의 특유의 우울감이 도드라지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집시들이 갖는 고유의 마이너 한 감성과 자유로운 행방 감을 느끼고 싶을 때면 헝가리 무곡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

1집과 2집은 레메니와의 영향이 크게 반영되어서 조금 더 헝가리 민요적 요소가 돋보인다. 3집 4집은 브람스의 감성이 조금 더 묻어 개인적으로 민요적 요소보다는 브람스 특유의 마이너 한 감성이 발현되는 것 같다. 개인적인 곡 그중에 몇 곡을 추천해주려고 한다.


오케스트라 버전 : 1번 I 4번 I 6번 I 8번 I 11번 I 16번 I 17번 I 19번

피아노 버전 : 1번 I 7번 I 11번 I 14번 I 16번 I 17번 I 19번

바이올린 편곡 버전 : 4번 I 7번

<5>번 곡은 워낙 유명한 곡이라 헝가리 무곡을 들을 때면 필수적으로 듣는 넘버이다.


1번 곡에서 들어보면 처음 세컨드 (낮은 음역) 시작 후 퍼스트(높은 음역)에서 뭔가 아슬아슬하게 낮은 음역으로 음들이 떨어지는데, 박의 시작이 아닌 중간에 약박에서 시작해 하행하며 템포 변화도 잦다. 그래서인지 이 부분이 참 생각보다 치기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헝가리 무곡 1집 1번

2번도 마찬가지이다. 쿵 - 하고 시작한 후 리듬과 빠르기의 변화는 매우 다양하다. 정말 신기한 건 특히. 2번 음악을 들으면 정말 누군가가 나를 유혹하는 듯하다.

이런 식으로 한 순간이 느리고 빠른 템포의 변화를 갖는 것을 “차르다시”라고 부른다.



6번은 오케스트라 버전으로도 들어보자. 매우 흥겹고 치맛자락을 붙잡고 캉캉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은 즐거운 음악이다. 곡이 끝날 것 같이 느려지다가 순식간에 템포가 확 당겨진다.


헝가리 무곡 2집 6번 오케스트라

3집과 4집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의 영향보다 브람스 스스로의 영감이 더 침투된 듯 음악이 들린다. 1집과 2집만큼의 헝가리 민족적 색보다는 뭔가 브람스적인 애환과 쓸쓸함이 묻어나는 듯하다. 그중에 16번과 17번은 애잔함이 느껴져 개인적으로 헝가리 무곡 중 본인이 좋아하는 작품 번호이다.



16번은 아바도 지휘의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함께 감사해보려고 한다.


https://youtu.be/NS49s57x_fc


결국에는 레메니에게 표절 소송을 당하긴 하지만 브람스가 승소하게 된다. 그 좋았던 시절을 뒤로 하고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지만 어떤 인연과 만남은 다 헤어짐이 있고 또한 짧지만 일생에 큰 영향을 주고 받기도 한다. 브람스의 삶에 큰 수익을 남기고 많은 사람들에게 연주되고 즐거움을 주는 이 음악은 이러한 짧은 인연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 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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