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신애 Sep 28. 2022

언어 덕후의 길

-스위치를 눌러봐!-마지막이 한국어라.

나는 '언어 덕후'이다. 

이런 덕후 종류를 들어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사람이 있다. 

나의 언어 세포에는 스위치가 하나 있는데, 그 스위치가 '달칵'하고 눌리면 그다음부터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영어의 스위치는 눌리는 것이 어렵지가 않았다. 사방에 깔린 것이 영어로 된 드라마, 영화, 책이었으니까. 그 중에  '엘리 맥빌'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변호사인 엘리가 숨도 안 쉬고 떠들어대는 것을 들으며 나는 펜을 들고 공책에 받아적기 시작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그때 '달칵'.


중국어의 경우는 장동건이 나왔던 중국 영화 '무극'을 볼 때 시작되었다.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성우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스위치가 '달칵'. 성우 목소리 들으려고 그 영화를 5번 가서 본 건 비밀. 


일본어는 드라마 보다가 잘생긴 기무라 타쿠야를 따라 하면서 '달칵'. 


프랑스어는 제2 언어로 배울 때는 징글징글했는데, 여행 가서 파리에서 '프랑스어 전공한 한국인 언니'가 말하는 걸 듣고 '달칵'. 프랑스까지가서 프랑스인이 아니고 한국인 언니가 말하는 걸 듣고 켜졌다는 게 더 놀랍지 않은가. 


이제 마지막으로다가 모국어인 한국어의 스위치가 눌린 건 놀랍게도 중국어를 배우면서였다. 중국어를 배우면서 언어의 재미를 느끼다가 외국인은 한국어를 어떻게 느낄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영어교사가 되어서 여기저기 학교, 학원, 복지관을 다니며 가르쳤는데, 재미있게도 내가 더 열심히 하는데 월급은 원어민이 더 많이 받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 억울한 마음을 풀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결론은 내가 원어민이 되는 것이었다. 원어민이 되려면, 한국어를 해야지 머. 그런데 생각보다 한국어는 더욱더 매력적이었다. 외국인 입장에서 보니까 더 재미있다니, 나도 괴짜야. 하지만 이때 켜졌다. 이놈의 스위치. '달칵'.


그래서 '한국어 교사' 시험을 준비했다. 국가에서 반액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대서 시작했는데, 일단 시작하고 느꼈다. 이거, 어렵구나. 그래서 인강을 하루에 3개에서 5개까지 들었다. 운동하면서 듣고, 걸어 다니며 듣고.

근데 강의만 듣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이번에는 수업 시연을 해야 한대서 준비를 했다. 진짜 자신 있게 준비했었다. 나야 영어로도 매번 교안을 썼으니까. 그런데 결과는 교수님께 지적을 배 터지게 받았다. 에효. 교수님은 한 번에 붙는 욕심을 버리라며 한국어 교육과 영어교육은 다르다고 하셨다. 그렇긴 하지만. 


시험을 보러 갔을 때 느꼈다. 이거 다시는 못 보겠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 정말 대단하다. 도시락 싸가져 가서 시험 보는 거 다시는 못 할 거 같다. 눈도 아프고 머리도 빠게 질 거 같고. 애들한테 잔소리하지 말아야지. 실은 나는 이 시험에 도시락 싸가지고 가는 건지도 그 전날 알았다. 그래서 그 날 좀 일찍 나가서 주변 카페에서 샌드위치 사서 들어갔다는. 무슨 시험을 9시에 시작해서 오후 3시에 끝내냐고. 그리고 시험 보고 와서 채점하면서 생각했다. 망했다. 그리고 다시는 못 보겠다.


그런데 오늘 1차를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고 '띠용'했다. 음, 나 이걸로 뭔가 할 일이 있어서 하나님이 붙여주신 건가 봐. 너무 기쁘면서도 2차는 어쩌나 싶다. 어헐. 


이 소식을 받고 나서 나는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다음 달부터는 영어 번역 수업도 있는데. 난 몰라. 이 시험은 또 어찌 준비한다냐.


언어 덕후는 이렇게 살아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